조선산업 남긴 상처, 공룡 덕에 명성 찾았네

창원시 진북면에서 동진교를 넘으면 맨 먼저 고성군 동해면(東海面)이 펼쳐놓은 바다와 맞닥뜨리게 된다. 고성이 벼농사하기 좋은 땅만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해안 바다까지 끼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다. 그 바다는 맑은 청색을 뿜고 있어 보고 있노라면 눈이 시리다. 수평선만 보인다면 밋밋할까 걱정했는지 섬들이 알아서 보기 좋게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고성군 '동해'는 강원도 '동해'와 비교해도 뒤처짐이 없다.

차 몰고 온 이들이라면 잠시 멈춰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운전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흘려가며 볼만도 하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뽑힌 해안로가 동진교에서부터 10km가량 펼쳐진다. 이 길이 끝나더라도 아쉬울 틈은 없다. 양촌 삼거리에서 왼쪽 거류면 방향으로, 오른쪽 동해면사무소 쪽으로 향해도 바다는 떨어지지 않는다.

맑은 청색을 뿜고 있는 고성군 동해면 바다./박민국 기자

하지만 눈맛만 생각한다면 여기저기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조선소는 조금 불편하다. 그 옛날 고성군은 저수지 많은 덕에 가뭄 걱정 없이 벼농사할 수 있었고, 바다에서 나는 것까지 보탤 수 있어 보릿고개 걱정은 크지 않았다 한다. 하지만 근래에 와서는 이 지역 전체를 먹여 살릴 뭔가가 필요했는데, 마땅치 않았던가 보다. 1980년대 들어 화력발전소가 하이면 덕호리에 들어섰지만 '고성' 아닌 '삼천포'라는 이름을 달았다. 오늘날 '한국남동발전 삼천포화력본부'다.

2000년대 들어 눈 돌린 것이 조선산업이었다. 조선산업특구 얘기가 나오면서 조용했던 농·어촌 마을도 심란했다. 연락 뜸하던 자식들이 뛴 땅값 보고 찾아들어서는 자기네들끼리 다툼하는 모습도 종종 있었다 한다. 2007년 동해면 일대가 조선산업특구로 지정됐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조선산업 불황이 찾아와 지금은 놀고 있는 땅도 적지 않다한다. 애초 인구 증가 기대가 컸던 듯한데 신통치 않아 보인다. 행정에서 목표를 지나치게 부풀리는 측면이 있다손 치더라도, 10만 명으로 잡았던 목표와 6만 명이 채 못 되는 현실은 큰 괴리가 있다. 이미 2002년 동진교가 놓이면서 창원시 진동면까지 차로 20~25분이면 갈 수 있고, 소 키우던 아이들이 용접 기술 배워서는 오히려 다른 공단으로 빠져나간다는 데서도 설명이 가능하다. 처음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이들은 지금 '애물단지'라는 말을 스스럼 없이 하며 애석함을 드러낸다.

고성으로 밀려오는 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을 찾으면 문수암(文殊庵)이 기다리고 있다. 무이산(549m) 정상 아래 자리하고 있는 이곳에서 한려수도를 마음껏 담을 수 있다. 문수암은 신라시대(688년) 때 의상(義湘·625~702)이 창건했는데, 암자는 1959년 사라 태풍 때 무너져 이후 현대식으로 다시 세워졌다.

전두환(81) 전 대통령이 직에서 물러나고 나서 유배지로 강원도 인제군 백담사를 택했는데, 이곳 문수암도 그 물망에 올랐다고 한다. 이는 심복이기도 한 허문도(72) 전 국토통일원 장관이 이곳 고성 출신이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문수암을 비롯해 옥천사(玉泉寺)·계승사(桂承寺)·운흥사(雲興寺)와 같이 고성에서 이름난 절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이 가운데 계승사는 상상하기도 벅찬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1억 년 전 백악기 퇴적구조(천연기념물 제475호)로 찰랑거리는 물결이 암반에 남긴 '물결무늬', 그리고 '빗방울 자국' '가장 덩치 큰 공룡 발자국'이 또렷하다.

이곳뿐만 아니라 상족암 같은 곳을 비롯한 해안 곳곳에는 기이한 암반이 펼쳐져 있다.

더불어 '공룡 발자국'은 고성군 온 곳에 찍혀있다. 1982년 하이면 덕명리 해안에서 국내 처음으로 공룡발자국이 발견되었는데, 처음에는 긴가민가 했다 한다. 주변에 발자국 형상이 너무 많다 보니 믿기지 않았을 법도 하다. 이후 고성군에서는 지역 축제를 디딤돌 삼아 2006년 세계공룡엑스포를 열면서 브랜드화했다. '고성'이라는 지명은 강원도에도 있어 헷갈리는 이들이 많다. 예전에는 어디 가서 '고성 사람'이라 하면 '통일전망대 있는 곳'이라고 반응하던 이들이 많았다 하는데, 이제는 '공룡'이라고 퍼뜩 알아챈다 하니, 지역 브랜드화가 야물게 된 듯하다.

시간을 조금 옮겨보면 대표적인 '소가야(小加耶)' 흔적인 송학동고분군이 고성읍 고성박물관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6세기 전반 축조된 소가야 왕릉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신라·백제·가야·일본 형식이 스며든 여러 토기가 나왔다. 주변 여러국가와 교류했음을 짐작게 한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떠나 군 중심가에 자리해 몇 안 되는 소가야 숨결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이곳 사람들 복이다.

고성에는 개인이 일군 수목원 몇이 자리하며 휴식같은 친구가 되어준다. 동해면 내산리 좌부천 마을에 자리한 '소담수목원'은 40여 년 간 객지생활하고 돌아온 이가 고향에 내준 선물이다. 거류면 은월리에 자리한 만화방초(萬花芳草)는 17년 전부터 차밭·야생화를 일군 또 다른 누군가 정성이 스며있는 곳이다. 한때 '비밀정원'이라 불렸지만, 지금은 미리 연락 후 약간의 입장료만 내면 700여 종 야생화밭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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