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8년 차인 박 씨 부부는 몇 달 전부터 하루에 10㎞씩 걷고 있다.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비교적 가벼운 옷차림으로 손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라 시작했는데 의외로 효과 만점이다. 나날이 가벼워지는 몸도 몸이지만 걷는 동안 부부 사이의 대화도 부쩍 늘어났다.

내친 김에 지난 주말에는 근처 산을 찾았다가 엄청 당황했다. 수많은 등산객들 사이에서 평소처럼 트레이닝복에 러닝화를 신고 있던 부부는 이방인이 분명했다. 화려한 컬러와 세련된 디자인,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찍혀있는 유명 상표에 주눅든 것이다. 등산객 모두가 자신들만 바라본다는 환각에 빠진 부부는 이내 산을 내려와 아웃도어 매장으로 향했다. 하나 매장에서 또 한번 절망했다. 기능성 재킷 하나 값이 어지간한 유명 브랜드 정장 한벌 값과 맞먹었다. 결국 박 씨 부부는 평소와 다름없이 집 근처 산책 코스만 열심히 왕복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3년 전부터 일본에서는 '야마걸' 열풍이 불었다. 야마(山)라는 일본어에 젊은 여성을 뜻하는 걸(girl)이 결합된 합성어다. 젊은 여성들이 등산복을 일상 생활에서 코디하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때문에 산을 찾는 젊은 여성이 늘기는 했지만, 이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등산이 아니라 패션 그 자체라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에 비해 한국의 아웃도어 열풍은 사뭇 다른 측면이 있다. 일본과 달리 한국은 중년 남성과 여성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등산에서 시작된 패션이 이제는 일상으로까지 확장되는 추세를 보인다.

한 백화점 아웃도어 매장에서 판매원이 고객을 맞고 있다. /뉴시스

사정이 이러니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했다. 2007년 1조 원 규모였던 아웃도어 시장이 올해는 5조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패션업계에서는 한 해 매출이 5000억 원이 넘으면 메가 브랜드라 부른다. 2009년까지 국내에서 메가 브랜드는 제일모직의 '빈폴'이 유일했다. 그것도 삼성이 업계 진출 20년 만에 달성한 성과다. 하지만 이후 노스페이스, 코오롱스포츠, K2코리아 등 아웃도어 전문업체가 연이어 매출 5000억 원을 달성했다. 백화점에서는 여성복을 제치고 '매출의 꽃'으로 등극했다. 이 모든 것이 불황임에도 아줌마·아저씨들이 지갑을 선뜻 열었기 때문이다.

특정 사회현상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중년의 아웃도어 열풍만큼은 긍정적인 면에 조금 더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철없는 자식들이 브랜드를 좇느라 부모 등골 파먹는 것과 고생해서 번 돈으로 자신을 위해 약간의 사치를 부리는 것은 분명 다르다.

필요 이상의 고기능성과 가격 거품 등 비판도 만만찮지만 중년의 아웃도어 열풍에는 나름 의미있는 구석이 많아 보인다. 우선 가족과 자식들 뒷바라지로 변변한 옷 한번 입어보지 못했던 우리의 어머니·아버지가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추구한다는 사실 자체가 반갑다.

소위 '옷빨'이 받기 위해서는 몸매가 따라줘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자기관리에도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덕분에 각종 성인병이 줄어들면 사회적 비용이 절약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에 유행했던 골프웨어에 비해 아웃도어는 '나도 한번쯤은'이라고 생각해 볼 정도로 위화감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다만, 경조사 등까지 아웃도어를 입고 참석하시거나, 몸에 꽉 끼는 사이클용 복장, 클라이밍 팬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만큼은 자제해 주시길 당부하는 바이다. 아무리 봐도 이건 좀 민망한 시추에이션이다.

/박상현(맛 칼럼니스트)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