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맛집] 창원시 사림동 '토궁'

'보릿고개가 태산보다 높다'는 옛말이 있다. '보릿고개'는 지난가을에 수확한 양식이 바닥나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5~6월께로 식량사정이 매우 어려운 고비를 말한다.

국가 경제도 가정 경제도 어려웠던 1960~70년대에는 이 시기 아사자가 속출할 정도였다. 얼마나 상황이 엄혹했으면 보릿고개를 '태산'보다 높다고 했을까. 이때를 겪어 본 어르신들이야 보릿고개의 처절함을 잘 알테지만, 90년대 이후 젊은이들에게는 먼나라 이야기로 들릴 법하다. 이렇게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보리는 한국인들의 '생존 필수 조건'이었다.

하지만 보리밥은 수분기 없는 까끌까끌한 식감과 먹고난 뒤 이어지는 소화 불량으로 '주식'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더욱이 1980~1990년대 고도 경제성장 이후 국민 모두가 쌀을 주식으로 삼아도 될 만큼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보리는 옛 향수가 그리운 어르신들 추억의 음식이 됐다.

보리가 '참살이'(웰빙) 바람을 타고 '참살이 식품'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중반부터였다. 백미가 당뇨 등 성인 합병증 유발을 촉진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가정마다 보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

이러한 '잡곡 열풍'을 타고 전국 곳곳에 이른바 '보리밥 뷔페'가 생겨났는데,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대신 쌀과 보리밥에 각종 나물 반찬을 넣고 고추장으로 쓱싹 비벼 쌈을 싸 먹는 '보리밥 정식'이 인기를 끌었다. 보리는 이렇게 다시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웰빙나물들이 그릇마다 푸짐하게 담겨 나온 밥상. 주인의 넉넉한 마음 씀씀이가 푸근하게 느껴진다./박일호 기자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 '토궁'. 이 집 역시 참살이 바람을 타고, 창원 내 알아주는 '한식보리밥 전문점'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주요 메뉴는 '보리밥 정식'과 '토궁 정식'이다. 손님들이 많이 찾는다는 토궁 정식을 주문했다.

먼저 한 상을 가득 채운 반찬이 인상적이다. 나물 반찬만 무려 11가지에 달한다. 무채, 박나물, 열무김치, 콩나물, 부추, 취나물, 고구마 줄기, 꼬시래기, 비름나물 등 오색 나물이 그릇마다 푸짐하게 담겼다. 밥에도 넣고 반찬으로 드셔야 하니 많이 드려도 모자라다는 주인의 넉넉한 마음 씀씀이가 푸근하다.

나물들은 하나같이 정성 들여 무쳤다. 특별히 짜지도 싱겁지도 않게 간이 잘 밴 나물들은 밥과 고추장을 넣고 비볐을 때도 나물 고유의 향과 맛이 잘 배어나왔다. 맨입에 먹어도 나물이 가진 아삭아삭한 맛이 살아 있어, 먹는 즐거움을 더한다. 조혜정 사장은 모든 나물 재료를 하루 장사용으로만 준비한다고 말했다.

"새벽 5시에 마산 역전시장 하고, 어시장에 직접 가서 하루 동안 쓸 분량만 사옵니다. 한번은 나물을 재어 두고 써 봤는데 도통 원하는 맛을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부드럽게 삶아진 호박잎에 잘 비벼진 밥과 된장을 올려 쌈을 싸먹는 맛도 일품이다. /박일호 기자

창원에 있으면서 모든 재료를 마산에서 사오는 이유도 궁금하다. "대체로 창원보다 마산지역 전통시장이 물건이 많고 신선도가 뛰어난 편입니다. 이 때문에 먼 길을 마다치 않고 매일 아침이면 마산에 가 재료를 사옵니다." 보통 야채류는 마산 역전시장에서, 생선 등 생물은 어시장에서 사들인다.

상차림에는 나물뿐만 아니라 잡채, 삼겹 수육, 게장, 단호박죽, 샐러드, 부추전, 생선구이 등이 오른다. 특히, 수육과 단호박죽이 눈에 띈다.

수육은 반드시 국산 돼지고기 삼겹살 중에서도 미삼(껍데기가 붙은 삼겹살)을 주로 쓴다. 대개 식당들은 미리 삶아 둔 것을 냉장 보관해 차고 딱딱한 것을 내놓기 마련이다. 반면 토궁 수육은 금방 삶아내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게 눈에 보인다.

입에 넣으면 기름기가 적당히 배어 나와 촉촉한데다, 푹 삶아져 부드럽게 녹아내린다. 감초, 계피, 옻 등 7가지 한방재료가 들어가 구수하면서도 건강한 향미를 풍긴다.

함께 나오는 단호박죽 또한 별미다. 별다른 감미료를 넣지 않고 단호박이 가진 달콤한 맛을 충분히 살렸다. 식사 전 한술 크게 떠 먹으면 달콤함이 입에 가득 배어 입맛이 돈다. 아껴뒀다가 밥을 먹은 후 입가심으로 먹어도 좋다. 단호박죽은 처음 가게를 낼 때부터 반찬으로 손님상에 올랐다. 워낙 인기가 좋아 매번 재주문이 들어왔고 수지 맞추기가 어려웠단다. 그래서 아예 따로 포장 판매를 한다.

밥은 쌀과 더불어 현미, 보리, 차조, 찹쌀을 섞어 쓴다. 처음에는 쌀과 보리를 5대 5 비율로 섞었지만 손님들 성화에 요즘은 잡곡 등으로 비율을 조절해 쓴단다. "쌀과 보리를 5대 5로 하니까 나이드신 분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고요. 식감도 그렇고 소화가 잘 안된다는 점도 그렇지만… 옛날 어려웠던 시절이 생각난다며 서러움을 호소하는 분도 더러 계시고…."

쌀과 함께 여러 잡곡이 들어서인지 밥에서는 달짝지근하면서도 구수한 향취가 그득 배어난다. 여기에 갖은 나물과 함께 고추장을 약간 올려 쓱쓱 비벼 먹는 맛은 그야말로 자연이다.

   

쌈채소는 나물과 함께 계절마다 제철에 맞는 것을 사용한다. 요즘은 가을을 맞아 '삶은 호박잎'이 준비됐다. 부드럽게 삶아진 호박잎에 잘 비벼진 밥과 나물을 올린 후 직접 담근 된장을 올려 쌈을 싸먹는 맛 또한 일품이다. 토궁에는 주로 40대 중반 이후 여성 손님이 많은 편인데, 대부분 제철 쌈 채소로 쌈을 싸먹는 맛에 반해 찾아 오는 손님들이란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자연의 맛도 즐기고, 건강도 지키고 싶다면 꼭 한 번 들르면 좋은 '참살이' 음식점임에 틀림없다.

   

<메뉴 및 위치>

□메뉴: △보리밥 8000원. △토궁 정식 1만 원. △단호박죽 1만 원. △토궁보쌈 소 2만 5000원·중 3만 5000원·대 4만 5000원. △홍어삼합 중 4만 원·대 5만 원. △홍어전 2만 원.

□위치: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 114-18(사림동 GS주유소 옆). 055-266-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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