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동·오동동 이야기] 목발 선생이 작명한 신마산 일식당 '귀거래'

누군들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으랴.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말에서처럼, 하찮은 동물 여우조차도 고향을 그리워한다는데 하물며 인간임에랴. 그래서 정지용도 '고향'이란 시를 썼을 것이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산꿩이 알을 품고/뻐꾸기 제철에 울건만//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머언 항구(港口)로 떠도는 구름//오늘도 뫼끝에 홀로 오르니/흰 점꽃이 인정스레 웃고//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필자가 고향을 언급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마산의 명물 '귀거래' 때문이다. '귀거래'는 신마산 두월동 '깡통집' 맞은편, 럭키사우나 입구 바로 옆에 있는 일식당 이름이다. 60여 년 전 영업을 시작한 '귀거래'. 현재의 방인생 사장은 마산고 22회로 2대째란다.

   

창업주(創業主)인 그의 부친은 함양 수동이 고향이고, '귀거래'가 얼마나 오래된 식당인지는 옛 마산시 식당 영업허가증 번호 1번이 그걸 증명한다. 2호는 서성동의 '삼대초밥'이고, 3호는 신마산의 '함흥집'이란다. 그 때문일까. '귀거래'와 '삼대초밥', '함흥집'을 모르면 마산사람이 아니라는 농언(弄言)도 있음이다.

하고많은 이름 중에서 왜 하필 '귀거래'일까. 필시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같아 어느 날 '귀거래'를 찾는다. 물론 '귀거래' 사장을 잘 아는 사람과 함께. 맥주 몇 병을 시켜놓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귀거래'라는 옥호에는 필시 깊은 사연이 담겨 있겠지요?"

필자와는 초면이나 동행한 사람 때문에 실토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두 사람은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

"나의 선친은 중국 북경에서 요리를 배우셨다고 합디다. 선친이 북경의 어느 식당에서 일을 하시다가, 마산출신 목발(目拔) 김형윤(마산일보 사장을 역임한 당대 마산의 명사(名士). 목발은 그의 호.) 선생을 만나게 되고, 그분의 권유로 마산에 와서 식당을 하게 됐다더군요. '귀거래'란 옥호도 목발 선생께서 지어주셨다고 하더이다. 도연명(陶淵明)의 시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따 왔다고 합디다."

그럼 그렇지, 아무런 곡절도 없이 '귀거래'라는 운치있는 옥호를 사용했을라고.

"단골이 많았겠네요."

"마산의 멋쟁이 샹하이 박(박치덕), 신마산 주먹계의 보스 이장수와 김소웅, 영화배우 문오장과 방성자 등등 많은 분들이 오셨지요. 특히 방성자는 나와 성이 같아서 더더욱 친했고요."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마산에는 카바레가 대유행을 했었다. '귀거래'의 지척에는 그 이름도 유명한 '락희 카바레'가 있었는데, 그곳에 들어가려는 여인들이 '귀거래' 옆에서 옷을 갈아입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하기도 했단다.

   

창동과 함께 마산문화의 쌍벽을 이뤘던 신마산 두월동. '귀거래'와 '깡통집', '신신 음악감상실'(나중에 '카프리'로 바뀜), '모나미 음악감상실', '미화당', 클럽 '다이애나'와 '홀리데이' 등이 그 좁은 지역에 포진하고 있었다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으랴. 그 때문에 마산을 예향이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역만리 북경에서 만난 동족(同族)에게 타국에서 고생하느니 차라리 고향으로 돌아가서 식당을 해 보라며 '귀거래'라는 옥호까지 작명해 준 목발 선생의 혜안(慧眼)이 놀라울 따름이고 그 제안을 받아들인 방인생 사장의 부친도 보통 사람이 아니다. 도연명의 '귀거래사'가 큰 작용을 한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장부(丈夫)의 비장한 각오가 담긴 '귀거래사'의 일부를 보자.

   

자, 돌아가련다/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려는데/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오/이제껏 자신의 존귀한 정신을 천한 육체의 노예로 삼았으나/어찌 슬퍼 탄식하여 홀로 서러워하리/지나간 인생은 후회해도 이미 쓸데없음을 깨달아/장래 인생을 쫓아갈 수 있음을 알았네/실상 내가 인생길을 갈팡질팡한 것은 오래지 않았나니/지금이 바른 삶이요, 어제까지 그릇됨을 알았네….

불후의 명작은 시대를 관통한다. '귀거래사'가 그 단적인 예다. 오늘날 읽어도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지 않는가. 어디 '귀거래사'뿐이랴. 일식당 '귀거래'도 마찬가지다. 지난 60여 년 동안 한결같이 신마산을 지키는 '귀거래'. 그래서 그곳을 '마산의 명물'이라 하고 싶은 것이다.

/이상용(극단 마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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