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용호의 '우포늪에 오시면'] (18) 연잎 춤과 매미가 함께하는 우포에서

연잎의 춤을 본 적이 있습니까? 너무나 특이하고 아름답기도 하답니다. 최근 전국을 강타해 큰 피해를 준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아침, 사지포에서 평생 잊히지 않을 광경을 보았답니다.

사지제방 밑에서 수많은 연잎이 마침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치 수많은 무용수가 동시에 즐겁게 춤추는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평소에 사지포에 있는 그 연잎들을 가끔 보아 왔지만 그렇게 색다르게 다가온 적은 없었습니다. 우포에는 본래 없었기에 외래종이니 하면서 자세히 보지 않고 잠시보고 스쳐 지나간 식물이었습니다. 그런데 태풍이라는 자연환경이 또 이렇게 연잎들을 색다른 순수 자연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서 보여주기도 하네요. 우포에 다양한 식물이 많은 것처럼 우포늪에 다양한 날씨에 오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비가 많이 왔거나 이번처럼 태풍이 분 다음 날에 오시면 우포늪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 드릴 것입니다.

우포에서 사랑받는 꽃 중의 하나가 가시연꽃입니다. 아쉽게도 우포를 뒤덮은 가시연꽃은 태풍에 너무도 속수무책으로 당했더군요. 태풍 전까지 그 아름다움과 우포늪을 뒤덮었던 위용을 자랑한 가시연꽃은 너무도 참혹하게 넘어지고 부서져 버린 채로 있었습니다. 자연 앞에 가시연꽃도 어쩔 수 없어 보였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아주 작다고 생각되는 마름과 자라풀 사이에 둘러싸여 있던 가시연꽃은 큰 피해 없이 그대로 있었지만, 가시연꽃끼리만 있던 군락에서나 유달리 튀어나온 곳에 있던 가시연꽃은 다 부서지고 넘어져 있었습니다. 이웃과 함께 살아온 가시연꽃은 덕을 쌓아서인지 옆집의 마름과 자라풀들이 가시연꽃을 지켜주어 태풍에도 끄떡없이 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포늪의 가시연꽃. 이번 태풍에 속수무책 넘어지고 부서졌지만 마름·자라풀에 둘러싸인 가시연은 끄떡없었다. /경남도민일보DB

비가 그치니 우포늪에서도 여름의 대표적인 곤충인 매미의 소리를 듣습니다. 매미 하면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매미를 그냥 여름에 찾아오고 소리만 길게 내는 곤충 중의 하나로만 단순히 생각하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오늘은 매미 소리를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듣지 않고 예술로 승화시킨 분들을 만나 보겠습니다.

중국의 진나라 시인 육운(陸雲·26? ~ 30?)은 매미가 다섯 가지 덕을 가진 존재라 하여 매미의 오덕(五德)을 소개한 분으로 알려졌습니다. 곤충인 매미에게 무슨 덕인가, 하여 알아보니, 매미는 머리에 문(文)이 있어 학문을 안다, 이슬만 먹고사니 맑다(淸), 곡식과 채소를 훔쳐 먹지 않으니 염치가 있으며, 집을 짓지 않고 사니 검소하며, 사는 계절을 지키고 떠나야 할 때를 아니 신의(信)가 있다고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매미는 종류에 따라 짧게는 3년이나 5년에서 길게는 15년까지 애벌레 등으로 땅 밑에서 살다가 2주 정도 지상에서 살아갑니다. 수컷은 암컷을 부르고자 큰소리로 울어 짝을 찾으면서 무척 아쉬운 지상의 시간을 보냅니다. 중국 송나라의 천재 시인 구양수는 매미의 울음소리를 예술로 확장했습니다. 우포늪 인근에서 한학자이자 시인이셨던 청강(晴岡) 하재승(河在丞) 어르신의 유고집인 청강유고집(晴岡遺稿集)에도 매미에 관한 시조가 있어 소개해 드립니다.

매미 소리를 들으며 (聽蟬)

-하재승(河在丞 1900∼1970?)

어제는 동쪽 시냇가 오늘은 이곳에서 소리 내는 매미야

내 너를 사랑하는 것은 도의의 마음과 같이 높고 맑기 때문이야.

위로는 말똥구리와 같이 탐욕하는 더러움을 볼 것이고

아래는 개미가 땅을 파는 비통함과 인내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산천수목 서늘한 곳에서 차가운 이슬을 아침 햇살에 마시고

오전에는 목에서 신선한 공기 바람을 내어 주는데

우리네 사람들은 그 뜻을 알지 못해 소동만 친다네

매미야 즐겁고 슬픈 노래는 자연 속의 음이 아닌가?

매미가 시조에 등장하듯 우리와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모기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 인간을 괴롭히는 대표적인 곤충 중의 하나인 모기가 조선의 유명한 학자이신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1762~1836)께서 쓰신 시조 중의 하나에 나옵니다.

얄미운 모기(憎蚊)

-정약용

모기야 모기야 얄미운 모기야 어찌해서 사람만 보면 침을 흘리느냐

밤으로 다니는 것 도둑 배우는 일이요 제가 무슨 현자(賢者)라고 혈식(血食)을 한단 말이냐?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선생은 생전에 500여 권의 책을 쓰셨다는데 저는 처음 혼자서 그렇게 많이 책을 펴낸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귀양살이 하신 전남 강진에서 제자들을 길러 많은 사람이 협동해 책을 내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한 권 쓰기도 어려운데 특히 지역민들과 협동해서 책을 내셨다니 머리가 숙여지고 더욱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가을에는 우포늪에 오시기 전 시(詩) 한편이라도 준비해 오시기를 바랍니다. 조용하고 마음에 드는 우포늪의 한적한 곳을 골라 시도 읽으면서 마음의 위안을 받아 가시면 좋겠습니다. 혹 운이 좋으시면 사지제방에서 연잎들의 춤을 보시며 흥겨워 함께 춤추고 싶은 생각이 드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천천히 따라 해보시겠어요? 혼자 하시기 뭐하시면 불러주세요. 기쁘게 달려가겠습니다.

/노용호(우포늪관리사업소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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