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딴에 제1기 역사체험단] (1) 거창

경남도민일보가 만든 '경남형 예비 사회적 기업'인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가 '제1기 역사체험단'으로 첫 걸음을 내디뎠다. 창원·진주 지역 초·중학생 30명 남짓이 참여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은 영리를 추구하면서도 사회적·공공적 가치 실현을 더 중시한다. '해가 있는 동안에'를 뜻하는 지역말을 상호로 삼은 '해딴에'는 역사·생태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진행하는 한편 경남의 생태·역사·문화 자원을 찾아내고 새롭게 파악해 지역의 가치를 재발견하고자 한다.

8월 25일 제1기 역사체험단의 첫 탐방지는 거창이었다. 지역의 문화·역사를 자연과 더불어 체험하자는 취지에서 시원한 물과 더불어 놀 만한 수승대(搜勝臺)가 있는 고장을 한여름에 찾은 것이다.

거창 문화·역사를 고루 담은 거창박물관에서 대동여지도를 구경하고 있는 아이들./김훤주 기자

이번 거창행에서는 황산마을~수승대~동계 정온 선생 옛집~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거창박물관을 찾았다. 들머리 당산나무가 우람한 황산 마을은 옛날 집과 돌담장이 그대로다. 으뜸 명승지인 수승대는 자연 경관도 빼어나지만 들어선 건물들도 무척 멋지다.

거창 대표 인물인 동계 정온은 곧은 선비의 표상이며 그이 옛집은 영남을 통틀어 가장 잘 보존돼 있고 남부와 북부 지역 가옥 특징을 두루 갖추고 있다.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은 금원산 골짜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바위인 문바위 위쪽 벼랑에 있으며 마지막에 들른 거창박물관은 거창 문화·역사의 특징을 고루 담고 있다.

수승대에서 버스를 내린 체험단은 당산나무를 거쳐 황산 마을로 들어갔다. 거창 신씨가 모여 사는 이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원학고가(猿鶴古家)를 찾았다. 체험단을 이끄는 문화유산답사가 강충관 선생은 신씨 집안에 재산이 많았음을 보여주는 집이라 소개했다.

기다랗게 잘 다듬은 장대석이나 주춧돌 위에 돌로 만들어 올린 기둥자리는 예전 같으면 높은 벼슬아치나 할 수 있었는데, 집을 지은 1920년대는 나라가 망한 뒤였기 때문에 거리낌없이 그리 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솟을대문과 사랑채를 구경한 체험단은 중문을 지나 안채까지 들어갔으며 이어 멋진 소나무가 심긴 다른 사랑채도 찾았다. 들어갈 때는 옛날 돌담길(새로 손질하면서 낱낱의 특징과 재미가 사라진 아쉬움은 있었다.), 나올 때는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실행돼 새로운 기운이 넘치는 벽화거리를 걸었다.

체험단 아이들은 벽화거리를 더 좋아라 했다. 알록달록 색깔이 칠해져 있으니까 돌담장보다는 눈길을 당기는 자극이 세었겠다. 아이들은 곳곳을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고 놀았다.

수승대로 들어가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시냇물을 왼쪽에 두고 오른쪽 구연서원 들머리 관수루에 모여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그러고 나서는 관수루 2층 누각에 올랐다. 체험단은 교재를 갖고 글쓰기를 했다. 황산 마을에서 본 담장과 옛집에 대해 쓰고 자기가 살고 싶은 집 담장을 그렸으며 '수승대' 세 글자로 3행시도 지어봤다.

수승대 징검다리에서 물놀이하며 막바지 여름을 즐기는 모습./김훤주 기자

다들 바닥에 앉거나 누워서 말 그대로 자연 속에서 편하게 보냈다. 강충관 선생은 수승대와 구연암(거북바위)에 대해 일러줬다. 구연서원은 황산마을에 자리잡은 거창 신씨의 조상 요수(樂水) 신권을 모시는 서원으로 정문 관수루(觀水樓)의 관수는 물처럼 낮은 데부터 스며들어 채우는 선비의 자세가 담겨 있다는 말도 했다. 이어 요수정과 거북바위도 구경하고 오는 길에는 불어난 물에 잠겨버린 징검다리를 이리저리 오가며 신나게 물놀이를 했다.

동계 정온 선생이 태어나 살았던 옛집으로 옮겨갔다. 사랑채 두 줄로 낸 겹처마는 북부 가옥의 특징이고 높다랗게 세워진 툇마루는 남부 가옥의 특징이란다.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운 경남 북부 내륙 거창과 어울리는 구조라 한다. 용마루에 빗물받이로 박아넣은 눈썹지붕도 눈길을 끌었다.

사랑채에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쓴 글씨로 만든 忠信堂(충신당) 현판이 달려 있다. 제주도 귀양을 마치고 서울로 가던 길에 추사가 들러 써 준 글씨다. 동계는 추사보다 200년 앞서 제주도 귀양살이를 했다. 동계는 1614~1623년, 추사는 1840~1848년 제주도에서 살았다. 이런 인연으로 추사 글씨가 동계 생가 현판이 됐다.

수승대 구연서원 들머리 관수루 누각에 올라가 함께 공부하고 있다. /김훤주 기자

인조 반정으로 귀양에서 풀려난 동계는 이조참판·대사헌 등을 지냈으며 1636년 병자호란에서 청나라에 항복하기로 하자 자결하려 했으나 죽지는 않았다. 그 뒤 고향으로 돌아와 살다가 1641년 세상을 떠났다. <인조실록> 그 해 6월 21일치에는 '천성이 꾸밈 없고 곧으며 과감히 말하는 큰 절개가 있었다'는 졸기(卒記)가 담겼다.

다음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은 금원산 자연휴양림 들머리에서 800m 정도 올라가 만났다. 세 분 부처는 고려 시대 작품이다. 옛날에는 더 산골이었을 여기에 불상을 새기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만을 위해 기도했는지 아니면 다른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했는지 함께 궁금하다. 길에서는 시원한 물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불상이 있는 데도 조그만 샘으로 물이 넘쳐흘렀다.

마지막으로 들른 거창박물관. 산골이면서도 들이 너른 거창답게 농경 유물이 많았다. 고려 호족의 것인 둔마리 고분에서 나온 벽화도 전시하고 있었는데 당대 벽화로는 대한민국에 하나뿐이라 한다. 또다른 자랑은 고산자 김정호 선생이 발품 들여 만든 대동여지도 진본이다. 모두 펼치면 가로 3m 세로 7m 정도로 크다. 가장 눈에 띈 물건은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 탁본이었다. 현장에서 본 실물은 햇볕이 불상 뒤에서 들어오는 바람에 어두웠다. 탁본은 부처 몸통과 옷의 무늬와 주름과 결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오후 4시 30분, 일행은 버스를 타고 귀갓길을 서둘렀다. 연락 전화 010-2926-3543.

알록달록 색깔이 칠해져 있는 황산마을 벽화 거리에서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다./김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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