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렇게 결혼했어요] 박재옥·김송희 부부

남자는 초등학교 때 단짝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 집에 놀러 가니 두 살 아래 여동생이 보였다. 예쁘고 똘똘하다 싶었다. 하지만 수줍어서 짓궂게 장난치는 사이로까지는 발전하지 못했다. 그래도 친구 집 놀러 가면 예쁜 여동생 얼굴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친구 집에 자주 발걸음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인 것 같기도 하다.

여자는 오빠 단짝이 집에 놀러 오는 것을 봤지만, 그냥 오빠 친구이기에 인사 정도만 했다. 그래도 집에 오는 것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남자와 여자는 그렇게 어릴 적부터 알고 지냈지만, 그렇다고 친근한 것도 아닌 데면데면한 사이로 시간을 보냈다.

둘 다 스무 살 이후가 되어서는 얼굴을 보지 못 하며 잊고 지냈다. 그러다 남자가 26살, 여자가 24살 되던 때 수년 만에 재회했다. 남자의 친구이자 여자의 오빠는 태권도 체육관을 했는데, 둘 다 거기에 들렀다가 우연히 만나게 됐다.

   

남자는 꼬맹이가 참 예쁘게 자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 체육관에서 이런저런 일을 돕는 모습도 참 야무지게 보였다. 이성으로 호감이 가기까지 했다.

여자는 코흘리개 오빠가 듬직한 남자로 변해 있음에 살짝 호기심이 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다시 세월은 2년이 흘렀다. 남자는 한때 만나던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단짝 친구를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남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네 여동생이라도 소개해 줘라"고 했다.

아무리 단짝에게라도 여동생만은 연결해 주지 않을성싶은데, 이 친구는 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단둘이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둘은 그렇게 남자 대 여자로 처음 만났다. 어릴 적부터 15년 가까이 알고 지낸 사이지만 남자 대 여자로 만나니 참 어색했다. 하지만 설렘도 함께 자리했다. 특히, 여자는 '이 오빠 말솜씨가 이렇게 좋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남자가 새롭게 보였다.

서로가 이 자리에 나왔다는 것은 이미 둘 다 이성으로 관심이 있다는 의미였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일주일 후 둘은 본격적인 교제에 들어갔다. 그게 2010년 6월경이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잘 맞추는 성격이었고, 남자는 여자를 배려하는 성격이었다. 연애하면서 소소한 다툼 같은 것도 거의 없었다.

교제 시작 이후 몇 달 지나지 않아 둘 집안에서 자연스레 결혼 얘기가 나왔다. 남자의 단짝이 둘 사이를 모르지 않기에 여자 집안에 모든 얘기가 전해져 있었다.

남자는 명절 때 여자 집에 자연스럽게 인사드리러 갔다. 어른들은 당연히 결혼을 전제하고 있었다. 언제쯤 결혼하는 게 좋겠다는 말씀까지 하셨다.

사실 남자는 여자에게 프러포즈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미 결혼 준비에 들어가며 그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그렇게 2011년 4월 결혼식을 올렸다.

남자는 멋진 프러포즈 한번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함을 안고 있다. 여자도 한 번씩 섭섭함을 토로한다. 2012년 5월에 공주님이 태어났고, 얼마 전 백일 잔치를 했다. 남자는 아이 돌 때 아내를 위한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결혼 전 하지 못한 프러포즈를 대신하기 위한 이벤트다.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비밀로 하고 싶다. 그때까지는 프러포즈 받지 못한 아내 투정을 감내해야 할 것 같다.

새까맣고 코흘리개였던 남자 박재옥(31)·여자 김송희(29), 지금 이렇게 한이불 덮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다. 알게 된 지 20년 됐지만, 그래도 아직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남자는 둘 사이를 이어준 단짝에게 참 고맙다. 하지만, '형님'이라고 말하는 게 여전히 어색하다. 물론 둘만 있을 때는 '이 녀석, 저 녀석'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말이다.

결혼 기사를 매주 월요일 6면에 게재하고 있습니다.

사연을 알리고 싶은 분은 이승환 기자(010 3593 5214)에게 연락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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