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게 이런 곳] 산청 남사예담촌

산청 단성면에서 시천면으로 가면 길가에 죽 늘어선 흙담을 지나치게 된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로 지정된 '남사예담촌'은 지리산 청학동처럼 어디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마을이 아니다. 그렇다고 용인 민속촌, 안동 하회마을처럼 일부러 만들거나 재단장한 마을도 아니다. 그저 차를 타고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능청스럽게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다.

이 마을이 특별한 것은 잘 보존된 옛 집, 그리고 집은 물론 마을 전체를 둘러싼 담이다. 돌을 쌓고 그 사이를 흙으로 메운 담 높이는 어깨 정도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담을 보고 최근에 관광 목적으로 새로 지은 게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하지만, 이 마을에 사는 향토사학자 손성모(81) 선생은 자신이 어렸을 적, 그리고 훨씬 이전부터 있던 담벼락이라고 전한다. 마을 한쪽 정자에서 만난 손 선생은 소박하게 아름다운 마을보다 마음이 고운 이곳 사람들 심성을 먼저 전했다.

"이곳 사람들이 참 순박해요. 옛날 도지사가 초임 군수·경찰서장을 임명할 때 첫 발령지로 주로 산청을 정했지요. 사람들이 큰 사고 칠 일이 없으니 임기 동안 무탈할 것이라는 배려지요."

/박민국 기자

670년 된 매화나무가 있다는 한 고택을 들어설 때도 마찬가지였다. 큰 대문을 밀었을 때 움직이지 않아 잠긴 줄 알았던 대문은, 문에 달린 쪽문을 안으로 밀자 자연스럽게 열렸다.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매화나무를 둘러보는 사이 집안에서 나온 주인 할머니는 낯선 손님에게 집에 담긴 매력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매화나무가 언제부터 자랐고, 죽어가는 나무를 어떻게 살리고 있으며, 여기 걸린 현판은 대원군이 쓴 것이며, 진짜는 박물관에 있다는 등. 마루 한쪽을 내주며 푸는 이야기는 정겹게 이어진다.손 선생 말은 마을을 조금만 거닐면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이곳 사람들은 대문을 따로 걸어두지 않는다. 관광객들이 지나치다 마당으로 슬쩍 들어가서 둘러보더라도 이를 경계하지 않는다. 오히려 먼 길 왔다며 마을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는 수고도 마다치 않는다.

집을 나오면 다시 담으로 이어지는 골목이다. 이 골목을 걸으니 다시 어느 집 앞마당에 닿는다. 골목이 곧 마당이 된 셈이다. 그 끝은 다시 다른 길과 통하는 대문이다. 집과 집 또는 집 안과 바깥 사이 경계를 두고자 쌓는 게 담이라면, 남사예담촌에서 담은 그 기능이 사뭇 다르다. 여기 담은 집과 골목, 마당을 애써 구분하지 않는다. 오히려 안을 바깥에 내주고 밖을 안으로 당기는 장치 역할을 한다. 이 담을 통해 남사예담촌은 마을 전체가 집 한 채처럼 보인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각자 집은 또 저마다 공간을 갖는다. 이처럼 공간이 유기적으로 흐르며 어울리는 모습이 이 마을을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치켜세우는 가장 큰 이유인 듯하다. 손성모 선생은 여기에 이 마을이 품은 상서로운 기운이 훌륭한 인물을 낳았다고 거든다.

"여기 마을은 작지만, 옛날부터 진주에서 열린 과거시험에 합격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어요. 이쪽 주변 산과 마을에 서린 기운이 좋은지 예부터 인재가 많았던 마을입니다."

/박민국 기자

손 선생은 많은 인물 중에서 면우 곽종석(1846~1919)을 으뜸으로 꼽았다. 일제강점기 유림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유학자다. 그 유명한 '파리장서' 기초를 책임진 인물이기도 하다.

손성모 선생은 "단성면에 곧 '유림 독립운동기념관'이 들어서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일제강점기 유림이 펼친 활약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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