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안역~숭선참 1.5km 위치…10·30리 노표 기록만 있어

원평리 미륵댕이 미륵부처 옆에는 충주시에서 보호수로 지정 관리하는 오래된 시무나무가 있습니다. 수령은 360살 정도이고, 앞에는 제단이 설치되어 있어 마을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는 당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시무나무는 이정목(里程木)으로서 20리마다 심었다 하여 '스무나무'라 하던 것이 시무나무로 불렸다고 하는데, 그 어원을 상고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정목의 식재와 관련한 기사는 <세종실록> 23년(1441) 8월 29일에 병조에서 각도의 역로 이수(里數)를 다시 측량하도록 요청한 기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새로 만든 보수척(步數尺)으로 이를 측량하여 30리마다 하나의 푯말을 세우되, 토석(土石)을 모아 놓든가, 수목을 심어서 표지하게 하소서'라 한 것이 그 내용입니다. 위의 기록처럼 30리마다 만든 노표 시설을 대후(大)라 하고, 여기에 심은 나무를 후수(樹)라 하는데 그 수종을 명기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단종실록> 1년(1453) 5월 12일 기사에 열수(列樹)란 이름으로 길가에 소나무 잣나무 밤나무 느티나무 버드나무 등을 가로수로 심게 했다는 기록이 있어 참조할 만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시무나무를 이르는 우(樞)는 보이지 않습니다.

미륵댕이 미륵불과 시무나무.

시무나무가 이정목이나 정자나무로 심어졌을 가능성은 방랑시인 김병연이 '시무나무 아래서(이십수하:二十樹下) 서러운 객이(삼십객:三十客) 망할 마을에서(사십촌중:四十村中) 쉰밥을 먹네(오십반:五十飯)'라 한 시를 통해 짐작해 볼 정도입니다. 이 시에 시무나무가 이십수(二十樹)란 이름으로 나타난 예를 찾을 수 있지만 그것은 정식 명칭이 아니라 훈차일 뿐입니다. 또한 이 나무를 십리목(十里木)이라고 하여 오리목(五里木)과 더불어 이정목으로 식재되었을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정목 구실을 하고 있는 시무나무가 보고된 바 없고, 성황림으로 조성되거나 당목으로 받들어지는 사례만 더러 보입니다.

이곳 미륵댕이 시무나무는 가까운 용안역과 숭선참의 가운데에 위치하며 그 거리는 약 1.5㎞ 정도여서 이정목의 식재 간격인 오리 또는 십리와는 어긋나 있습니다. 이것은 이정목으로 심어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 충청도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나무노래에 "십리절반 오리나무 열의 갑절 스무나무"라 했고, 양주소놀이굿의 말뚝타령에는 "십리 밖에 시무나무 십리 안에 오리나무"라 한 데서 이 나무를 거리목 또는 이정목으로 볼 여지가 있으므로 앞으로 더 따져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전통 역제에서는 10리마다 소후(小)를 만들고 30리마다 역을 두는 것을 대체적인 원칙으로 하였는데, 이 어원설에 무게를 둔다면 그 사이에 이런 나무를 심은 사례가 추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시무나무는 느릅나무 가운데 재질이 가장 단단해서 수레바퀴의 축을 만드는 데 쓰여 축유(軸楡)라 한다고도 하니 어쨌든 전통시대의 교통과 관련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최헌섭(두류문화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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