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공감] 유치원 운동회

유치원에서 따로 빌린 체육관으로 아이와 부모가 모여든다. 아이와 부모는 같은 색 티셔츠를 입었다. 검은색을 입은 가족과 흰색을 입은 가족이 서로 다른 편임을 확인한다. 5~7세 어린이들이 체육관 가운데로 모이고 부모들은 팀에 맞춰 관중석에 앉는다. 유치원 원장이 개회를 선언하자 아이들과 어른들 목소리가 뒤섞여 환호한다.

교사도 강조하고 아이들도 배웠고 부모들도 알고 있을 '경쟁보다 중요한 화합'.

하지만, 막상 게임이 시작되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상대보다 부지런을 떨었다. 아이나 부모나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긴 상대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소리는 우리 팀이 이길 때 훨씬 컸다. 이런 어쩔 수 없는 경쟁을 사회자는 시합과 응원, 장기자랑을 섞어가며 조정한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띄우면서 전체 점수를 한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 게 사회자 역할이다.

   

어쩌면 처음, 많아 봐야 두 번 정도 아이들 운동회에 참여하는 부모들이다. 아이 동작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멀리서 가까이서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카메라가 아니더라도 스마트폰이 있다. 사진과 동영상 기능을 분주하게 바꾸며 부모는 아이를 쫓아다닌다. 아빠가 시합에 참가하면 장비는 엄마에게 넘어갔고, 엄마가 경기장에 들어가면 장비는 다시 아빠에게 돌아왔다.

진행요원이 빨간색 고깔과 파란색 고깔을 경기장에 세웠다. 자기 고깔은 세우고 상대 고깔을 눕혀서 결국 세운 고깔이 많은 쪽이 이기는 경기다. 시작하기가 무섭게 아이들이 달려드는데, 그 짧은 시간에도 남자·여자 아이 특징 한 면이 드러난다. 남자 아이는 걸리는 고깔마다 넘어뜨리려고 휘젓는 반면, 여자 아이들은 눈앞에 넘어진 고깔을 세우는 쪽에 더 공을 들였다.

점심때가 되자 가족들은 체육관 밖, 적당한 그늘서 자리를 편다. 새벽부터 준비한 도시락을 펴며 아이들에게 끊임없는 칭찬세례를 퍼붓는다.

"넘어졌는데도 울지 않아서 잘했어. 용감한데."

"너 정말 빠르게 잘 달리더라."

"어쩌면 그렇게 힘이 세니? 공을 그렇게 멀리 던질 줄 몰랐다."

   

뭔가 아쉬움이 남았던 아이들도 쏟아지는 칭찬에 금방 으쓱해진다. 음식도 먹고 칭찬도 먹으며 아이들은 오후 경기를 기다린다.

경기장 가운데 긴 줄이 놓인다. 검은색·흰색 티셔츠를 입은 아이들이 양쪽으로 갈려 굵은 줄을 힘껏 움켜쥔다. '영차! 영차!'. 흰색 옷을 입은 5세 아이들이 이긴다. 젖먹던 힘은 이럴 때 짜내는 듯하다. 곧 6세 시합이 이어진다. 시작을 알리는 호각소리가 울리자마자 순식간에 검은색 옷을 입은 아이들이 흰색 옷을 입은 아이들 쪽으로 끌려간다. 전체 점수 균형을 맞춰야 하는 진행요원은 갑자기 한쪽으로 쏠리는 줄을 보고 뒤늦게 검은색 쪽으로 줄을 당겨 본다. 끌려오던 줄이 잠깐 멈칫하자 흰색 옷을 입은 아이들이 더욱 기를 쓰고 줄을 당기며 결국 승리를 챙긴다.

"아이고, 저쪽은 이유식을 좋은 거 먹고 컸나?"

진행요원 넉살에 주변 부모들이 크게 웃는다.

이어달리기에서는 한 경기마다 꼭 나오는 사고가 어김없이 생겼다. 몸보다 마음이 세 걸음 정도 앞섰던 엄마는 길게 미끄러지며 넘어졌고 승부는 거기서 결정됐다. 엄마 얼굴에서는 아픔보다 부끄러움이 더 크게 드러났다.

마지막 경기를 마치자 점수는 가까스로 한쪽이 조금 이기는 결과가 나왔다. 그렇지만, 대부분 그 점수에 아무 의미를 두지 않고 넘어갔다. 부모와 아이가 마무리 체조를 하며 운동회 일정은 마무리됐다.

   

운동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한 것은 전문 사회자였다. 즐거운 분위기도 만들어야 했지만, 질서도 유지해야 했다. 한쪽으로 승부가 쏠리지 않도록 조정하면서 나름대로 긴장도 유지해야 했다.

사회자를 거든 진행요원은 4명이었다. 게임 도구를 끊임없이 설치했고, 게임 요령도 시범을 보여야 했다. 아이들, 부모와 보조를 맞추며 게임 중간에 일어나는 갖가지 상황에 대처해야 했다. 그렇게 하루 행사를 치러내면서 이들이 받는 대가는 얼마인지 제대로 가늠하기 어렵다. 그리고 언제부터 아이들 운동회를 전문 기획사가 도맡아 진행했는지도 새삼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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