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 농업 강소농을 찾아서] (14) 김홍대 산청 백리농원 대표

산청군 오부면 백리농원을 방문한 날은 15호 태풍 볼라벤이 몰아친 바로 다음 날이었다. 과수원 잡초 속으로 봉지를 쓴 배가 마구 떨어져 있었다.

"이곳은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인 지리적인 요소 때문에 태풍이 와도 대부분 큰 피해가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골을 타고 바람이 몰아쳐 이렇게 큰 피해가 발생했네요."

김홍대(52) 대표는 사무실에서만 해도 인터뷰 도중 종종 웃는 얼굴을 보였지만, 과수원에 도착해서는 내내 굳은 얼굴을 펴지 못했다. 말수도 부쩍 줄었다.

농민에게 작물은 1년 내 땀과 정성으로 키운 자식이나 다름없을 텐데, 한여름 폭염과 가뭄을 이겨내고 열매를 맺은 귀한 '자식'이 소비자들에게 "맛있다"는 칭찬도 들어보지 못한 채 늦여름 태풍에 빛을 잃었다.

산청군 오부면 백리농원을 운영하는 김홍대 대표.

김 대표는 15년 정도 농업기술센터에 근무하다 귀농했다. 거창은 사과가 유명한 지역이지만, 김 대표가 담당했던 업무는 배. 과수연구소에 2년간 장기연수를 갔는데, 배 연구 부서에서 근무했다. 그 후 배 기술 교육 등을 여러 곳에서 했다. 경상대에서 '사과'로 석사학위를 받았지만, 김 대표의 운명은 '배'를 선택했다.

"농촌에 기반을 잡고 싶어 1985년 농업기술센터 공무원이 됐습니다. 언젠간 귀농하려는 마음에 1996년 농장 일을 시작했죠. 2000년 공무원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귀농해 농장에 전념했습니다."

군 보건진료소에 근무하는 부인 이애심(50) 씨는 당연히 반대했다.

"선망 직종으로 꼽는 공무원을 그만두고 미래가 불투명한 농사를 짓겠다는데 반대는 당연했죠. 너무나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이 대표는 처음부터 친환경 무농약에 관심이 많았다. 10여 년 전부터 농약을 줄이고 연구했다. 이유를 단순하게 설명했다. 농약 냄새를 맡으면 심한 편두통이 온다는 것. 약을 치고 나면 온종일 일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 독한 농약을 칠 수는 없었다. 자신을 위해서도, 소비자를 위해서도.

하지만, 어려웠다. 아직 완전 무농약 재배는 하지 못하고 있다.

"쌀은 무농약 재배가 가능한데 과수는 참 어렵습니다. 배·사과가 제일 어려운 편입니다. 병을 잡을 방법이 없어요. 친환경 약제로 배에 발생하는 병을 없앨 수가 없습니다. 품종에 문제가 있는 듯해서 병에 강한 품종으로 실험 중입니다. 유기농으로 재배하는 농민이 있는데,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김 대표가 주 품종으로 재배하는 것은 '황금배'. '사과를 닮은 배'라고도 한다. 맛은 뛰어나지만, 병에 약한 것이 흠이라 만풍배·한아름 등 다른 품종을 시험 중이다. 신고배도 일부 있지만, 소비자 선호도는 황금배에 비해 떨어진다.

비료 대신 쓰려고 개발했던 배식초는 향과 맛이 좋아 올 연말 제품화를 계획 중이다.

김 대표는 이 황금배로 '배 식초'를 만든다. 아직 판매는 하지 않는다.

처음 배 식초는 과수원에 비료 대신 주려고 만들었다.

보통 2월까지 가지를 잘라주는 전정을 하고, 무항생제 인증을 받은 소 축사에서 나온 부산물 등으로 퇴비를 준다. 배는 9월부터 수확하며, 그 후 퇴비 대신 '보약'으로 과수원에 배 식초를 뿌린다.

그런데 배 식초의 향기와 맛이 좋았다. 과수원에만 뿌리기엔 아까웠다. 식용으로 시제품을 만들어 봤다. 반응이 좋아 올해 강소농 사업으로 1600만 원을 지원받아 가공·저장고를 만들었다. 김 대표는 올해 말 배 식초 제품화를 계획하고 있다.

배 전문가로 재배기술을 농가에 보급하는 공무원이었던 김 대표였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10년 전쯤 불어닥친 태풍으로 "완전히 망했다"고 말할 만큼 큰 손실을 보기도 하고, 저온창고가 고장 나 배가 전부 얼어버린 적도 있었다.

서부 경남 지역 배 농가 15가구가 같이 새로운 기술을 연구·도입하고 정보 교류를 하려고 배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2년 전 각 시군의 추천으로 일본 견학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왕 모였으니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교류하기로 했습니다. 서로 도움이 많이 됩니다. 아무리 개개인이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모르는 것이 많고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또 오래 농사를 짓다 보면 타성이 생겨 부실해지는 일도 있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새로운 정보도 얻고 서로 분발할 힘도 얻습니다."

산청군 배 작목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김 대표의 명함 뒷면에는 '오부친환경영농조합법인 대표이사 김홍대'라는 직함이 찍혀 있다.

김 대표는 친환경 쌀을 판매하는 오부친환경영농조합법인 대표이사도 맡고 있다.

오부친환경영농조합법인은 '산엔청 메뚜기쌀'이라는 브랜드로 친환경 쌀을 판매하고 있다. 과수원 주인이 쌀 판매조합 대표? 김 대표는 쌀 농사는 짓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 일일까.

"백리농원에서 생산되는 배는 대부분 직거래로 판매됩니다. 이를 보고 지역 주민들이 쌀도 소비자들에게 잘 알리고 잘 판매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해 만든 것이 오부친환경영농조합법인입니다. 일종의 봉사활동입니다."

2007년 시작해 2008년 급격히 확대, 법인까지 설립한 조합은 현재 조합원 250명이 있으며, 친환경 고품질 쌀을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추청벼' 단일품종을 생산한다. 처음 벼 재배에 친환경을 도입한 것이 8년쯤 전이었는데, 벌써 마을에는 메뚜기와 반딧불이가 엄청나다. 마치 <웰컴 투 동막골> 영화처럼 장관을 연출한다고 한다.

오부친환경영농조합법인은 쌀 소비량이 적은 도시 소비자를 위해 5㎏, 10㎏짜리 소포장 판매에도 주력하고 있다. 현미의 거친 식감을 좋아하지 않는 소비자를 위해 5분도 쌀도 판매한다. 5분도 쌀은 현미를 5분도 벗긴 것이라 백미에 비해 영양소가 훨씬 많다.

수확한 쌀은 일반 창고가 아닌 저온저장고에 보관해 주문을 받으면 도정해 배송한다.

"2008년에는 1000만 원어치도 못 팔았습니다. 하지만, 지난해는 4억 5000만 원어치를 팔았죠. 그동안 홍보를 위해 매년 소비자 초청 행사도 하고, 안산시 본오1동과 자매결연도 맺는 등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농민도 소비자도 의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배식초 상용화를 위해 강소농 사업비를 지원받아 가공·저장고를 만들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현재 농식품부의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친환경 교육관을 짓고 있다. 교육관이 완공되면 소비자 초청 친환경 교육, 음식 문화 홍보 등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김 대표는 지난해부터 과수원 한쪽에서 대형 화분에 배·감·사과나무를 키우고 있다. 이 과일나무 화분은 내년 산청군에서 개최되는 '2013 산청 세계전통의약엑스포' 시기에 군에 납품할 예정이다. 뿌리 활착에 애를 먹었지만, 내년 전국에서 몰린 관광객이 이 대형 화분을 보고 즐거워할 것을 생각하면 벌써 흥분된다.

<추천 이유>

△강형수 산청군농업기술센터 과수특작담당 = 산청군 배작목회 사무국장으로 있는 김홍대 씨는 농업기술의 선도적 실천과 배움에 대한 강한 의지, 그리고 투철한 사명감과 신념으로 새로운 농업기술을 개발해 작목반에 신기술을 보급하는데 앞장서 왔습니다. 특히 지도공무원 출신으로 뛰어난 재배기술과 풍부한 경영마인드, 유통마케팅 등 현장 노하우와 헌신적인 노력으로 농업 부가가치를 더 창출하는 기대되는 과수농입니다.

※이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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