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대학 입시제도"

의외였다. 이번 인터뷰에 앞서 고영진(高永珍·1947년 2월 20일생) 경남도교육감에 대한 자료를 찾다 느낀 점이다. 명색이 경남 교육의 최고 책임자이며, 그것도 두 번이나 교육감으로 당선된 사람인데, 그의 인생 스토리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너무 없었다. 몇몇 언론 인터뷰가 있긴 했지만 주로 교육정책이나 현안에 대한 내용에 그쳤다. 인터넷을 아무리 검색해 봐도 선거 때 밝힌 학력 경력 상훈 저서 재산 정도가 알려진 전부였다.

도지사와 함께 경남도민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교육의 수장이라면, 적어도 그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배우고 성장해왔는지, 어떤 철학으로 살아왔는지 정도는 알아야 할 필요가 있고, 기록해둘 가치가 있겠다 싶었다.

아버지는 사회 교사, 아들은 영어 교사

-자료를 좀 찾아봤는데, (교육감 님에 대한) 간단한 프로필 말고는 알려진 정보가 없더군요.

고영진 경남도 교육감./김구연 기자

“사실 우리 교육계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런 게 없죠. 정치하는 사람들이야 그런 스토리텔링을 해야 하지만, 교육계는 좀 다르지.”

-그래서 호구조사부터 해봐야겠습니다. 진주 천전초등학교를 나오셨던데, 원래 태어난 곳은 어딥니까?

“할아버지가 사신 곳은 옛 진양군 금산면 갈전리였는데, 아버지가 교편을 잡으셨기 때문에 칠암동 쪽에 살았어요. 태어나긴 진주에서 태어난 거죠. 천전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은 그 당시 아버지가 진주농고에 근무했거든. 농고 옆에 집이 있었으니까 가까운 천전초교에 간 거죠.”

-지역 명문 진주고등학교를 나오셨는데, 그 당시엔 입학하기도 쉽진 않았죠?

“진주중학교 나오면 진고로 진학하는 게 자연스러웠죠.”

-진주중학교도 시험 쳐서 들어갔나요?

“당시엔 중학교도 시험제였지. 그 때만 해도 진주에서 진중, 진고 가는 것은 그냥 당연한 목표였죠.”

-아버지는 어떤 분이었나요?

“아버지는 원래 동국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셨는데, 사회과목 교사를 하셨죠. 우리가 진고 다닐 때 우리학교에 오셨어. 내가 직접 배우진 않았지만, 내 친구들은 대부분 우리 아버지가 은사죠.”

-집에 어르신 성함이?

“문자, 석자. 고 문 석. 지금 생각하면 참 격세지감인데, 정확하게 아들인 나보다 스물 한 살이 많더라고. 당시엔 대개 스물 한 두 살 때 결혼했고, 내가 장남이니까.”

-당시 어르신이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왔다면 집안이 상당히 부유했을 것 같은데.

“할아버지가 농사를 좀 많이 했지. 당시엔 쌀농사가 부의 원천이었으니까, 연 500석 내지 1000석 정도를 했다니까 부농이었지. 금산면 갈전리 일대에선 우리 논을 밟고 가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니까.”

의병장 고경명·고종후의 후손

-고(高) 씨는 제주도와 전라도 장흥이 본관인데, 진주에도 많나 보죠?

“장흥 고 씨도 원래는 제주 고 씨에서 갈라져 나왔지. 개성 고 씨도 그렇고. 우리는 장흥 고 가지만, 임진왜란 때 고경명 어른이 의병을 일으켰고, 그 아들 고종후 또한 진주성 싸움에서 순절했는데, 그 분들 후손이 경남에 정착한 것이죠.”

-아, 그렇게 된 거군요. 그렇게 대대로 농민으로 사시다가 교육자가 나왔고, 그 아들이 이렇게 교육감까지 된 거로군요.

“아버지가 1925년생이신데, 그 당시 농촌 출신으로 서울까지 대학을 가는 건 드물었는데, 그 시절로선 자식이 교사가 된다는 것은 굉장한 자부심이었죠.”

-아버지가 반성종고(현 진주외국어고등학교) 설립자셨죠?

“사실상 설립하셨죠. 당시 다른 분이 설립한 후 1년 정도 지나 굉장히 어려울 때 인수받아 할아버지 집과 전답을 다 털어 넣었으니 사실상 설립자죠. 반성중학교 교감을 하고 계실 때였는데, 그 옆에 설립된 반성종고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걸 보고 그걸 인수한 거죠. 그 때 내가 고등학생 때였는데, 학교 짓는다고 재산 다 털어 넣고 우린 전세 살았어요.”

-지금 진주외고는 고영실 교장이던데.

“내 친동생이지. 내가 원래 6남 1녀의 장남인데, 아우 두 명이 성인이 되어서 아까운 나이에 죽었죠.”

-교육자의 길을 택한 건 아버지의 영향이었겠죠?

“사실 내 고등학교 때 꿈은 정치인이었어요. 교사가 된다는 것은 생각도 안 했지. 역사에 나오는 정치가가 되고 싶었죠. 그래도 교육감이 되었으니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희열을 느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결국 선거를 통해 교육감까지 되셨으니 사실상 꿈을 이룬 거네요. 그런데, 1965년에 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0년에 경남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셨는데, 그 사이에는 뭘 하셨나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에서 공과대학을 다니다가 적성에 안 맞아 중퇴를 하고 아버지 농장에서 일을 좀 했지. 그 후 아버지 권유로 교사가 되기 위해 사범대를 다시 진학한 거죠.”

김주완 편집장과 고영진 교육감./김구연 기자

-영어 교사를 약 6년간 하셨는데, 지금도 영어 잘 하시나요?

“허허. 오랫동안 안 하다 보니…. 말하는 건 잘 안 되지만, 듣는 건 좀 되는 정도?”

-부인 이임선 여사와 결혼은 어떻게?

“내가 교사 생활할 때 RCY(청소년적십자) 지도교사를 했는데, 집사람도 그 때 진주시내 여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그 지도교사를 했어요. 그래서 만나서 같이 다니다가….”

-결혼한 후에도 두 분이 다 맞벌이를 하신 건가요?

“집사람은 진주시내 고등학교에 있다가 지금 한국국제대의 전신인 진주여전이 설립되면서 무용학과로 스카우트되어 갔죠. 상명대학 출신인데, 거기서 무용을 전공했으니까. 거기 간 지도 벌써 30여년이나 됐네. 올해는 학교 생긴 후 처음으로 1년간 안식년을 받아 쉬고 있어요.”

-1남 1녀를 두셨는데, 둘 다 출가했나요?

“둘 다 서울에 있는데, 아들은 결혼했지만, 딸은 아직…. 나이도 제법 됐는데….”

여기까지 호구조사가 끝났다. 반성종고 영어 교사로 있던 그는 1986년 교감 직무대리를 맡았다. 교장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본격적인 학교 경영에 뛰어들어 1993년에는 교장이 됐다. 그 후 경남교육연구원 자료제작부장을 거쳐 삼가고등학교와 명신고등학교 교장, 경남교육청 교육정보화과장, 진주교육청 교육장, 진주중앙고등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며 행정경험을 쌓은 후 2003년 경남도교육감(13대)에 당선된다.

고영진 경남도 교육감 인터뷰 전경./김구연 기자

국제대 총장 시절에는 월급 전액 기부

그러나 주민 직선으로 치러진 2007년 12월 교육감 선거(14대)에서 당시 권정호 후보에게 밀려 낙선한 그는 한국국제대 하충식 이사장의 방문을 받았다. 하충식 이사장은 그의 진주고 후배다.

“선거 떨어지고 난 뒷날이었지. 대뜸 진주국제대 총장을 맡아 달라는 거야. 불 난 집에 부채질하는 거냐며 거절했어요. 집사람이 거기 교수로 있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그랬는데 계속 포기하지 않고 설득하더라고. 그래서 ‘아, 이것도 교육인데’ 하는 마음에 거기 가서 2년을 근무했죠. 대신 2년 동안 월급은 전액 발전기금으로 반환했어요. 그렇게 사심없이 하니까 교직원들도 잘 따라주더군요.”

2년간 국제대 총장으로 재직하면서도 교육감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그는 2위 권정호 후보와 3위 박종훈 후보를 제치고 다시 교육감 자리를 탈환했다.

-학교 경영과 교육 행정을 오래 해오시면서 특별히 터득한 비결이 있다면?

“교직은 말이죠. 봉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해요. 그런 마음이 아니면 실패합니다. 내가 좀 피곤하고 어려워도 봉사하는 마음으로 이겨내야 하죠.”

-<경남의 산>이라는 책을 내셨던데, 등산을 즐기시나 보죠?

“등산이 내 건강의 원천이죠. 요즘은 무릎 연골이 안 좋아서 높은 산은 못 다니지만, 정병산 둘레길 정도는 다니죠. (책장에 있는 사진을 가리키며) 저 사진이 일본 다테야마 북알프스 정상인데 3190미터죠. 2007년도에 다녀왔는데, 등산은 거의 광적으로 다녔어요.”

고영진 경남도 교육감 북알프스 등산 사진./김구연 기자

-골프는 안 하시나요? 다른 운동은?

“골프는 이제 좀 배우고 있는 중이죠. 그 외엔 헬스클럽에서 자전거를 탄다든지 그 정도….”

-등산 외에 특별히 재미있어 하는 일은 없나요?

“글 쓰는 걸 좋아했어요. 수필문학회 활동도 했고, 정목일 씨와 함께 활동하면서 등단까지 했는데, 요즘은 바빠서 전혀 못쓰고 있죠. 그 외에는 사람들 만나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술도 좋아하시죠?

“선출직이다 보니 자주 마실 일이 많지만 폭음은 안 해요. 주량이 소주 두 병 정돈데, 술자리가 많아도 적당히 조절을 해요. 많이 마시는 것 같아도 딱 내 주량을 조절해요. 그래야 다음날 일어날 수 있으니.”

기획단계에서 성과와 문제점을 미리 챙긴다

-몇 시에 일어나시나요?

“밤 10시~11시쯤 자고 새벽 4시엔 일어나죠.”

-아침형 인간이군요. 교육감이 너무 부지런하면 아랫사람들이 좀 피곤할 텐데요. 교육감으로서 본인은 어떤 인간형인가요?

“내가 바라는 바, 내가 목표하는 바가 마음 속에는 있지만 말을 잘 안 하는 스타일이랄까. 신문사도 마찬가지겠지만, 모든 일은 기획단계에서 세 가지를 염두에 둬야 합니다. 첫째 목표하는 성과가 뭔지를 분명히 해야 하고, 둘째 예상되는 문제점이 뭔가를 확실히 알아야 하고, 셋째 그 일을 어떻게 홍보할 것인가 하는 전략을 가져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이런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끊임없이 토론하고 대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지금 교육청 정책을 고영진이 다 결정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모두 토론을 통해서 결정하죠. 모든 일은 그걸 추진하는 사람들이 기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하고 토론을 통해 의사결정이 이뤄져야 그 일이 잘 되는 거죠. 나는 회의에서 절대 내 생각부터 먼저 말하지 않는 스타일이죠.”

고영진 경남도 교육감./김구연 기자

-인생의 좌우명이나 신조는 뭔가요?

“자율과 책임, 봉사하는 자세를 많이 강조하죠.”

-좀 심심한데요.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의 경우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 같은 그럴듯한 좌우명을 갖고 있는데요. 자율 책임 봉사라는 건 좀 심심하지 않나요?

“(웃음) 나는 정치인이라기보다 교육자이니까. 굳이 한자성어로 이야기하라면 난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말을 좋아해요. 교사는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학부모와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고, 그렇게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면 이해 못할 일이 없죠.”

-교육감이 생각하실 때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뭐라고 보시나요?

“그래도 세계적으로 볼 때는 문제점이 적은 나라라고 봐요. 오바마도 한국 교육을 본받으라 하잖아요. 그래도 문제를 꼽자면, 입시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봐요. 입시제도를 확 바꿔서 아이들이 자기 적성에 맞춰서 진로를 개척하는 사회가 되어야죠.”

-말하자면 모든 학생이 대학입시에 ‘몰빵’하여 서울대나 연고대를 목표로 삼고, 그들이 모두 판검사나 의사, 공무원, 대기업 사원이 되기를 바라는 이런 상황이 문제라는 거죠?

“그렇지.”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대학 입시제도

-그렇다면 자기의 소질이나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아갈 수 있는 교육이 초중고등학교 안에서 이뤄져야 할텐데.

“중학교까진 공통기본과정을 거의 획일적으로 배우더라도, 적어도 고등학교부터는 확실히 자신의 진로에 맞춰가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데, 모든 학생과 학부모들이 입시에만 몰두하고 있는 게 문제죠. 이게 사교육 문제라든지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어요.”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특기적성교육이나 진로탐색교육을 통해 어느 정도는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느 정도는 해소가 되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해도 (입시제도 때문에) 결국은 대학이 주 포인트가 되고 말아요. 심지어 창원기계공고의 경우 특수목적고등학교인데, 거기도 70~80%가 대학에 진학하고 있어요. 그것도 공업계가 아닌 대학에…. 지금 그런 걸 타파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하고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입시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죠.”

-구체적으로 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꾸자는 건지 복안이 있나요?

“참 복잡한데, 대학입시를 대학 자율에 맡겨야죠. 요즘 입학사정관제도 있지만, 결정적으로는 획일적인 수능 점수와 내신 성적에 맞춰서 지원을 하는 시스템이죠. 그래서 자율에 맡기면 대학 특성에 따라서 국어만 치는 대학도 있을 것이고, 영어만 보는 데도 있을 것이고, 면접만 보는 대학도 있어야 하죠.”

-대학평준화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나요?

“우리 사회가 고도화하면 자연스럽게 평준화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인위적으로는 불가능해요.”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그건 현실성이 없다고 봐요. 프랑스에서 해갖고 실패한 것이고, 가령 예를 들어 열댓 개 대학을 모두 서울대로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평준화가 될 것이라고 보는 건 순진한 생각이지.”

-저도 아들이 하나 있는데요. 저는 아들에게 서울로 가려면 서울대나 서울시립대를 가고, 그렇지 않으면 경상대나 창원대를 가라고 세뇌하고 있는데, 이런 교육관은 어떤가요?

“그건 아주 잘못된 생각이죠. (웃음) 왜 잘못됐냐면, 어느 대학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가장 잘 할 수 있는 학과를 찾으라고 해야지. 취직이 잘 된다고 해서 그걸 택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분야를 택해야 한다고 말해야지.”

-현재 한국사회에서 공부를 잘 해가지고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은 전국 1~2%가 되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거죠.

“진짜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은 교수가 되어야지. 판검사는 공부하는 직업이 아니라 응용하는 직업이죠.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생을 보낼 수 있어야지. 그런 분야에서 세계적인 위인도 나올 수 있는 거고….”

큰 틀만 제시하고 세세한 부분은 자율에 맡긴다

-교육청 현관에 ‘꿈을 키우는 학교’라는 슬로건이 걸려 있던데, 그게 각자의 적성을 찾아주는 교육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바로 그거죠. 그런데, 미성년자인 아이들은 자기 적성이 뭔지, 자기 소질이 뭔지 아직 모를 수 있기 때문에 그 꿈을 찾아주는 역할을 학교가 해야 한다는 거죠. ‘함께하는 교육’이란 슬로건도 함께 내걸었는데, 이제 학교 안에서만 교육하는 게 아니라 모든 도민과 지역사회가 함께 하는 교육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두 슬로건은 내가 국제대 총장으로 있을 때 다시 교육감으로 돌아가면 내걸어야 겠다 하고 생각해둔 겁니다. 그 이전에 13대 교육감 때에는 ‘신뢰받는 학교, 감동 주는 교육’이었죠.”

-꿈을 키우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구체적인 프로젝트는 어떤 게 있나요?

“경남에 960개의 학교가 있는데, 각 지역과 학교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교육청은 큰 방향만 제시하고, 구체적인 방안은 학교에서 자율과 책임에 따라 실행하도록 합니다.”

-책 읽는 학교, 노래하는 학교, 운동하는 학교도 구체적인 지침 같은 건 없는 겁니까?

“그것도 획일적인 교육청의 방침에 따라 학교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학교의 특성에 따라 어떤 학교는 아침에 등교하면 1교시를 좀 늦게 하더라도 30분쯤 책을 읽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 어떤 학교는 틈틈이 독후감 발표대회를 하는 곳도 있고, 그런 사례는 있지만 모든 학교가 똑 같은 방식으로 하라고 지시하진 않죠.”

-체벌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체벌을 해선 안 된다는 게 기본 입장이죠. 그러나 그걸 규정화하여 굳이 체벌 금지를 외칠 필요도 없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교사도 전문직인데, 전문직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알아서 하도록 해야죠.”

고영진 경남도 교육감./김구연 기자

-일반 시민들에겐 관심 없을지 모르지만, 교원 업무 경감 문제에 대해 교사들이 아우성인데, 대책을 갖고 계시나요?

“교사들이 체감할 수 있는 업무 경감을 하려면 초중고 교사의 시스템을 대학교수처럼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게 바뀌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합니다. 또한 국가의 시스템이나 예산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교육청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 폭력 문제가 생기면 그것과 관련한 업무가 엄청나게 많이 생깁니다. 그러나 특별한 대책이 없습니다. 다만 그나마 공문서 감축이라든지 이런 것은 노력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데, 학교 비정규직도 많지 않습니까?

“많지요. 그러나 이건 국가 예산이 수반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교육감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교육감이 그 말을 하는 것은 거짓말이거나 월권행위죠.”

-아까 입시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고도 하셨는데, 교육부 장관이 되면 가능하지 않나요?

“대통령이 장관을 신뢰하여 밀어주고 관련 위원회를 만들어 충분히 의논하면 가능하다고 보죠.”

교육감 이후, 더 이상 큰 욕심은 없다

-청소년기에 이미 정치에 관심이 많으셨다는데, 추후 교육부 장관이라든지 또 다른 선출직에 대한 생각은?

고영진 경남도 교육감./김구연 기자

“나이도 있고 능력도 비천한데, 교육감 마치면 이제 고향에 가서 편하게 살아야지. 임기 마치면 경남도민일보에 글도 한 번씩 쓰고 그래야죠.(웃음)”

-항간에는 끊임없이 도지사 출마설도 나오고 있는데.

“허허. 오늘 김 국장이 왔으니 이번 기회에 확실히 밝힙니다. 어떤 경우에도 교육감 임기에 충실하겠습니다. 지사님도 떠나셨는데, 교육감까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고, 내가 그런 능력도 안 되고, 교육에 올인해서 아이들 잘 키우는데 모든 힘을 바칠 겁니다.”

-아직 교육감 임기가 많이 남으셨지만, 차기 교육감 출마에 대한 생각은?

“현재로서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내년 중반기나 되면 내 생각을 정리해서 은퇴를 하는 쪽으로 정리되면 그렇게 할 것이고, 현재로서는 그만두는 쪽으로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왜요?

“다른 사람은 한 번도 못했는데, 나는 두 번이나 하고 있으니…. 허허.”

의외로 쿨하고 솔직했다. 예민한 사안에도 정치적 수사로 얼버무리거나 피하지 않았다. 보수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실주의자에 가까워 보였다.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대학 입시제도를 꼽는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그 해결방안으로 학생 선발을 대학 자율에 맡긴다는 건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현실적인 방안을 놓고 더 토론해보면 이야기가 통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