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김윤미 애인 만들기’'프로젝트 주인공

‘페이비 추천-이 사람이 궁금하다’ 인터뷰 요청을 하자 수화기 너머로 매우 큰 웃음소리가 한동안 들려온다. 본인에게는 실례겠지만 ‘호탕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법하다. 이 웃음의 의미가 뭔지 몰라 우물쭈물하자 좀 진정(?)한 듯 “아, 죄송합니다”라고 한다. 그렇게 약속 정하고 대면하게 된 경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 김윤미(34) 사무국장은 그에 대한 설명부터 했다. “그때 웃었던 건 너무 당황했기 때문이에요. 도대체 나라는 사람에 대해 왜 궁금해 할까 해서 웃음이 터졌던 겁니다. 사실 인터뷰하기 부담스러워요. 이 지역에 시민사회활동 오래 하신 분이 워낙 많잖아요. 건방져 보일까 봐 걱정이 되네요.”

그는 현재 창원에 완전히 정착했지만, 인연 맺은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서울 살던 7~8년 전부터 영어캠프 관련 일을 하면서 창원을 왔다갔다했다. 그러다 5년 전 주소를 완전히 옮겼다. 그때를 ‘제2 사춘기’라고 표현했다.

“5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주변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상 치르고서는 달랑 가방 두 개 들고 창원에 왔어요. 그냥 서울이 싫어졌어요. 엄마가 계시지만, 내가 굳이 서울에서 살아야 할 이유도 없었고…. 그냥 인생 좀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거에요.”

“경남, 준비됐다” 한 마디에 시작된 인생

경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 김윤미 사무국장./김구연 기자

그렇게 창원에서 영어 관련 일을 하다 송사에 휘말리면서 일도 완전히 그만둬 버렸다. 그리고는 생활비 충당하는 번역 일 정도만 하면서 온전히 1년간 놀았다.

“사람들은 제가 밝고 활동적인 줄만 아는데, 사실 안 그래요. 멍 때리기·가만히 누워있기, 이러는 걸 좋아해요. 그나마 책·공연 보는 것 외엔 별다른 취미도 없어요. 그런데 ‘원순씨를 빌려 드립니다’라는 책을 읽고서는 ‘나도 누군가에 필요한 사람이 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마침 노사관계전문가과정을 듣고 있었고, ‘하자센터’ 사람들과의 교류, 이런 것들이 맞물린 게 지금 일의 시작점이 됐죠.”

서울시가 위탁하고 있는 ‘하자센터’는 사회적기업 등 커뮤니티 비즈니스 지원 일을 하고 있다. 2010년 하반기에 ‘경남형 하자센터’ 구성 논의가 막 일기 시작했는데, 그즈음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
“정부가 사회적기업 육성 간담회를 개최한다기에 저도 한번 가봤죠. 그런데 경남은 제외하고 서울·경기·광주·대구·부산, 5곳만 지원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손들고 일어나 ‘경남에서도 이미 준비되어 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해 버린 겁니다. 사실 회의 세 번 정도 한 게 다였거든요. 그때 어떻게 그런 말을 했는지, 사실 지금도 모르겠어요.”

그리하여 준비하던 이들이 창원대 사회적기업지원센터로 들어갔고, 경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로 사단법인화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사회적기업은 사회적 목적을 우선 꾀하면서 이익을 추구하는 것으로, 창업을 위해서는 일자리 제공·사회서비스 제공·지역사회 공헌 등과 들어맞아야 하며, 민주적 운영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독자적으로는 어렵고 결국 사회적 네트워크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데, 그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이 경남사회경제지원센터다.

지금은 청년사회적기업 14개, 그리고 마을기업 등 관리해야 할 기업이 100개도 넘는다. 센터 식구 11명이 감당하기엔 벅차지만, 그는 사무국장의 씩씩함을 보여준다.

경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 김윤미 사무국장./김구연 기자

“제가 살아오면서 요즘처럼 고맙다는 말 많이 들은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어떨 땐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요. 이 일은 사람과 사람의 일이에요. 나도 힘든 일 있을 때 ‘뭘 도와줄까’라고 물었던 사람이 있었듯, 제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거죠.”

지난해 유럽 연수를 다녀왔는데, 오히려 사회적기업환경에서 우리 경남이 더 낫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유럽에서 사회적기업이 운영하는 식당에 갔는데, 너무 맛없더라고요. 다녀와서는 우리 지역 사회적기업 식당이 훨씬 맛있다고 강조했어요. 사회적기업 환경은 우리 경남지역도 잘 돼 있어요.”

‘가난’ 그리고 ‘학력 콤플렉스’

경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 김윤미 사무국장./김구연 기자

이야기 도중 촬영을 끝낸 김구연 사진기자가 먼저 자리를 뜨자, 김 사무국장은 “이제 좀 편하게 있어야겠네”라며 윗옷을 벗었다. 그러면서 대뜸 “사실 저도 멋 많이 부려요”라고 한다.

“신발·구두가 많을 때는 170개 정도 됐어요. 물론 지금은 100개 정도로 줄었지만…. 지금도 돈 벌면 신발을 사요. 단 5만 원 이상 넘는 건 절대 사지 않습니다. 오래된 운동화는 12년 된 것도 있고, 구멍 난 옷도 버리지는 않고 집에서 입고 그래요.”

멋을 부리면서도 사치와는 확실히 선을 긋는 것이다. 이는 좀 더 오래전 이야기들과 연결고리가 있다. ‘가난’ ‘학력 콤플렉스’ 같은 단어가 튀어나온다.

“고향이 충남 당진인데, 어릴 때 집에서 농사도 짓고, 4만 마리 정도 키우는 양계장도 했어요. 그때는 차가 두 대나 되고, 피아노도 있는 잘 사는 집이었어요. 그런데 아버지 사업이 부도나면서 어렵게 됐죠. 컨테이너에서 일곱 식구가 살기도 했어요.”

‘가난’은 ‘학력 콤플렉스’로 연결됐다.

“저는 전문대학을 나왔어요. 그리고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미용과를 다녔죠. 원래는 학교 선생님이 꿈이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부모님이 대학은 못 보낸다고 했어요. 그런데 미용실 하던 어머니 친구 분이 ‘대학 졸업하면 자리 알아봐 주겠다’고 바람도 넣고, 장학금도 준다 해서 미용과로 가게 됐어요. 대학 면접 보러 갔을 때는 ‘엄마가 가라 해서 왔다’고 말했는데, 그래도 붙었어요.”

여기에 20살 이후 더해지는 기억이 있다.

“예전 남자친구 부모님이 절 너무 싫어했어요. 가난과 학력 때문이죠. 드라마에서 부모가 자기 자식 떼 놓으려 하는 거 있잖아요. 그중에서 얼굴에 물 뿌리고, 돈 내미는 것, 그 두 개 빼고는 다 경험했죠. 식구들과 밥 먹는데 망신도 당했고, 회사로 찾아오기도 했고….”

경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 김윤미 사무국장./김구연 기자

물론 지금도 ‘4년제 대학 안 나온 사람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해’라는 분위기가 있다. 그래도 이제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학력 콤플렉스’에서 많이 벗어났다. 센터 일로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김용기 창원대 교수가 한날은 “그걸 극복하지 못하면 어딜 가서도 헤어나오기 어렵다”는 조언을 해 주었다. 이에 한양대 사이버대학 교육학과 공부를 시작했고, 마침내 올해 학사 학위를 받는다.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는 석·박사도 고려할 생각이다.

과거 기억이 지금까지 영향 끼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다름 아닌 ‘닭’이다. 지금 그는 닭·달걀은 절대 먹지 않는다. 양계장 하던 탓에 초등학교~고등학교 시절을 줄곧 닭과 함께 보냈는데, 지금 닭을 보면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예민했던 사춘기 시절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달걀 먹으면 닭똥 냄새가 나요. 어릴 적 그 기억이 그렇게 싫은 거죠. 요즘 주변에서 귀농 얘기 꺼내는 사람들 정말 싫어요.”

한때 ‘홍대클럽 죽순이’였다

그의 이미지는 좀 강한 편이다. 이 점에 대해 스스로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는 ‘뭐 저런 얘가 다 있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말투도 좀 세고 하니…. 저도 한때는 천천히 예쁘게 말하는 걸 해 봤죠. 서울에 있는 동안 10년 동안 커피 타는 일도 하면서 그런 생활을 했죠. 그런데 너무 피곤해요. 이제는 그렇게 가식적으로 살지 않겠다고 나 스스로 정한 거죠.”

그는 사람에 대한 애착을 별로 두지 않는다고 한다. 스스로 ‘사람 관계가 심플하다’고 한다. 함께하면 좋고, 소중하다는 건 알지만, 죽을 때까지 인연을 맺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단다. ‘본인이 줄 수 있는 게 없어 상대방에게 기대하는 것도 없다’로 귀결된다. 결혼에 대해서도 지금은 좀 부정적이다.

“남자 쪽에서 혼수·예단 제대로 갖춰오라고 하면 1억 원도 넘어요. 우리 같은 사람이 한 달에 100만 원을 10년 동안 모아야 하는 돈이에요. 그걸 한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써야 한다는 거죠. 역으로 빚을 갚아가야 하는 것이기도 해요. 차라리 나를 위해 쓰는 게 낫죠. 물론 그러다 뿅 하는 사람 만나면 결혼할 수도 있는 거지만….”

집에 한번 들인 건 잘 버리는 법이 없어 혼자 사는 아파트는 살림살이로 가득하다. 센터 식구들이 놀러 와서는 “남자만 있으면 되겠네”라고 하면 “내가 연애 말고는 다 잘 한다”며 자랑인지 아닌지, 구분 어렵게 만든다.

경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 김윤미 사무국장./김구연 기자

페이스북 창원시그룹에서는 한때 ‘김윤미 애인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김윤미와 ○○이 잘 어울리겠다’는 내용의 댓글이 100여 개 달리기도 했다. 물론 깊이 있는 프로젝트는 아니었기에 실속은 없었다.

그는 페이스북 창원시그룹에 한때 글도 많이 올리고 했는데, 요즘은 뜸한 편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공간에서 정치 관련 얘기가 나오면 조용히 발길을 끊는 편이란다. 그러다 정치 얘기가 잠잠해 질 무렵이면 다시 찾고, 그러길 반복한다.

사실 그는 놀길 좋아한다. 서울 있을 때는 ‘홍대클럽 죽순이’였다고 한다. 이와 관련한 좀 엉뚱한 기억이 있다.

“2002년 대통령선거일에도 클럽에 갔는데, 노무현 대통령 당선됐다며 골든벨이 울렸어요. 골든벨이 뭔지 모르세요? 그때까지 먹은 술값을 받지 않는다는 거죠. 그리고 주인이 술도 한 병씩 돌렸죠. 그런데 창원 오니 대학가에도 클럽이 없다는 것에 놀랐어요. 클럽이 없어 대신 태어나 처음으로 나이트클럽에 가 봤는데, 그 분위기가 너무 웃기더라고요.”

남을 밟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서울이라는 공간과 달리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창원이 좋단다.

“집에서 조금만 걸으면 공원이 있고, 또 버스 타고 조금만 가면 바다가 나오고…. 창원이라는 도시가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현재로서는 계속 여기서 살아야 할 것 같네요.”

이 사람, 김윤미.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어떤 열정으로 살고 있을 지 매우 궁금하게 한다.

“30살 때 누가 제 꿈을 물었을 때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타운을 만들어 같이 살고 싶다’고 말했었죠. 그런데 4년 지난 지금 좋은 사람들과 뭔가를 만들어가고 있으니 꿈대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경남형 하자센터’를 꼭 만들어 온전히 사회적기업만을 위한 공간을 두고 싶어요. 이 글 보시는 누군가가 정책적으로 해 주면 좋겠지만, 뭐….”

‘사회적기업만을 위한 공간을 두고 싶다’고 말할 때 상상에 젖은 김 사무국장 얼굴은 황홀한 표정이었다. 앞으로 계획에서 한 가지 덧붙인다.

“10년 후에는 요트 타고 전 세계 여행하기? 이렇게 인생을 재미있게 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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