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한방 본고장…천왕봉 정기따라 약초향기 '솔솔'

산청은 '지리산 고장'이다. 또 하나 산청군 스스로는 '한방 고장'을 내세운다. 산청은 2013년 9~10월 열리는 '세계전통의약엑스포' 준비에 신경 쓰고 있다. 한의학박물관·허준 및 류의태 동상이 들어서 있는 동의보감촌에는 엑스포를 위한 산약초타운·한방자연휴양림·숙박시설 같은 것이 들어선다.

'한방 고장'을 내세울 수 있는 바탕은 '맑은 물'과 지리산에서 나는 갖가지 '약초' 덕이다. 특히 생초면(生草面)은 지명에 '마르지 아니한 싱싱한 풀이 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산청 사람들은 "마을 촌로들에게는 간단한 진맥과 감기약 정도 스스로 지어 먹는 게 예삿일"이라고 전한다.

그럼에도 산청이 '한방'을 본격적으로 들이민 것은 10년 남짓에 불과하다. 그 출발점은 〈소설 동의보감〉을 바탕으로 한 TV드라마 〈허준〉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다.

드라마에서는 허준(許浚·1539~1615)이 경남 산음, 즉 오늘날 산청에 들어와 '명의' 류의태(柳義泰)를 스승으로 맞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었다. 특히 류의태가 자신 몸을 해부하도록 하는 대목에서 이야기 감동은 극에 달했다.

이를 바탕으로 산청은 허준·류의태를 전면에 내세워 '동의보감 고장' 브랜드화에 애썼다. 금서면 특리에 있는 동의보감촌에는 허준 동상과 류의태 동상이 각각 자리하고 있다. 금서면 화계리에는 류의태가 한약제조에 사용했다는 '류의태 약수터'가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허준이 산청에 들어와 의술 활동을 펼쳤다는 사료적 뒷받침은 되지 않았다. 나아가 류의태라는 인물 자체는 문헌과 기록에 없는 허구라는 것이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드라마에서 산청이 배경이고, 류의태라는 인물이 등장한 까닭은 1960년대 한 논문에 담긴 '설'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신 산청에는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펼쳤다는 실존 인물 유이태(劉以泰 혹은 劉爾泰·1652~1715)가 있다. 허준보다는 약 100여 년 후 인물로 천연두·홍역에 대한 의학서인 〈마진편(痲疹篇)〉을 남겼다. 유이태는 고향 거창을 떠나 산청군 생초면 신연마을로 와서는 돈 밝히지 않고 신분 상관없이 아픈 이들을 돌봤다고 한다.

하필 생초면으로 온 이유는 외가가 있기도 했거니와, 특히 이곳 물과 약초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이태는 한방에 칡을 잘 사용했다고 하는데, 죽어서는 산청군 생초면 갈전리(葛田里)에 묻혔다. '갈전'은 '칡뿌리 밭'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나 오늘날 유이태에 대한 흔적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묘소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정표 하나 없이 거친 산속에 자리하고 있어, 아는 이 아니고서야 찾기 어렵다.

유이태 설화가 담겨있는 찬샘이 약수터. /남석형 기자

신연마을에서 약방으로 사용했다는 곳을 들춰보려면, 이 마을 주민이 "흔적 없어진 지 오래됐다"고 전한다. 그나마 책 읽고 글 쓰던 방이 생초면 송정마을에 있었고, 낚시를 즐긴 곳이 생초면 압수마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유이태가 환자를 낫게 했다는 약수터가 오부면 오전리 도로변에 남아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곳 역시 유이태에 대한 그 어떤 흔적도 두지 않았다.

오늘날 산청에 유이태는 남아있지 않고 이곳과 연관 없는 허준, 그리고 허구 인물 류의태만 드러나 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다.

다른 이야기를 이어보자면 산청에는 유독 오래된 나무가 많다. '매화' 하면 광양을 퍼뜩 떠올리게 되는데, 들여다보면 산청이 전혀 덜하지 않다. '전국 5대 매화' 가운데 세 그루가 산청 땅에 뿌리내리고 있다. 단성면 남사예담촌 하씨 고택에 있는 '원정매'는 670년 넘은 것으로 전해진다.

남사예담촌 하씨 고택에 있는 670년 된 '원정매'. /남석형 기자

한때 벼락을 맞기도 하고, 원줄기가 고사하기도 했지만, 밑동에서 새로운 가지가 뻗어나 여전히 그 향을 잃지 않고 있다. 단성면 운리 단속사지에 있는 '정당매'는 640년 세월을 잇고 있고, 산천재에 남명 조식(曺植·1501~1572) 선생이 직접 심었다는 '남명매'는 450년 세월을 담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인 남사예담촌에는 최소 600년 넘은 감나무, 서로 가지가 교차해 있는 300년 된 회화나무, 220년 된 단풍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신등면 평지리 물산마을에는 '원앙송'이라 불리는 120년 된 소나무 두 그루가 한 몸을 이루며 금실 좋은 부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산청은 지리산을 안은 덕에 대원사계곡·내원사계곡이라는 무릉도원을 선물 받았다. 하지만 지난 시간 속에 큰 상흔이 자리하고 있다. 흔히 '죽었다'는 의미로 곧잘 쓰이는 '골로 갔다'는 말이 삼장면 유평리 대원사계곡을 두고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1950년대 빨치산·토벌대가 이곳 골짜기로 들어가면 너나 할 것 없이 누구 하나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하여 '골로 갔다'고 했다.

내원사계곡 또한 마찬가지 아픔이 담겨있다. 빨치산 마지막 2인으로 남은 이홍이·정순덕은 계속된 저항을 이어갔다. 그러다 1963년 11월 12일 이홍이는 사살, 정순덕은 생포되며 빨치산토벌 작전이 막 내린 곳이 삼장면 내원사계곡이다.

이러한 산청은 오늘날 시천면 지리산빨치산토벌전시관, 금서면 산청·함양사건추모공원을 통해 엇갈린 역사를 담으려 하고 있다.

산청읍 내리에 자리하고 있는 성심원. /권영란 기자

산청읍 내리에는 성심원이 자리하고 있다. 뒤로 웅석봉 자락이, 앞으로 경호강이 흐르는 인적 드문 곳을 찾아 1959년 들어왔다. '한센'에 대한 주홍글씨 속에 오랜 시간 세상과 단절해 있었지만, 이제는 범람 걱정 없는 성심교를 통해 세상과 마주하고 있다. 성심원은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먼 이웃'인 산청 주민을 향해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이 취재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기업 ㈜무학이 후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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