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의 상상과 연상은 우리들에게 시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예술에서도 현실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은 시적 감흥을 불러일으키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마그리트의 그림이 낯설면서도 낯익은 것은, 우리가 이상해 하면서도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은 상식을 파괴하면서도 시적 감흥을 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이유야 있겠지만 요즘 대선정국이 그렇다. 상식을 파괴하는 풍광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군사정권의 딸과 스스로 폐족임을 자처했던 지난 정권의 비서실장, 그리고 컴퓨터 바이러스 잡는 백신 연구소를 운영했던 대학 교수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풍광이 생경하지만 현실이 되고 있다. 미술에서는 이런 상황의 병치를 '데페이즈망(depaysement)'이라고 한다.

데페이즈망은 전치, 전위법 등으로 번역되는데, 나라나 정든 고장을 떠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어떤 대상을 일상적인 환경에서 떼어내 이질적인 환경에 놓음으로써 기이하고 낯선 상황을 연출하는 것, 그래서 물체끼리 기이한 만남을 현출시키는 예술 기법이다.

예를 들면 미술에서는 손목이 팔에서 떨어져 공중에 둥둥 떠 있거나, 혹은 나무줄기에 붙어 있는 것과 같은 장면, 경이와 신비에 가득 찬, 꿈속에서만 볼 수 있는 화면 등이 그렇다. 초현실주의에 의하면 이런 그림은 보는 사람의 마음 속 깊이 잠재해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해방시킬 수 있다. 그래서 초현실주의자들은 파격과 일탈, 그리고 기존 맥락에서 벗어난 재조합을 통해 일상과 현실 너머의 시적 감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상황의 병치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기존 정치 맥락에서 벗어난 재조합은 어떻게 봐야하는가!

내게는 아직도 어떤 이로부터는 박정희 대통령이, 또 어떤 이로부터는 노무현 대통령이 보인다. 그리고 또 어떤 이한테서는 바이러스 백신이 보인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나름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 이미지는 대부분 고정적이다. 고정된 이미지는 고정관념보다 더 무섭다고 하는데도 나는 상식적이지 않은 이런 풍광이 즐겁다. 국민의 몫으로 던져져 있는 일탈의 자업자득인 정치가 나는 고소하기까지 하다.

5년 전에는 상상이야 했겠는가! 창의적인 예술인들조차 상상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일상과 현실에서 일탈한 정치는 불과 몇 달을 남겨두지 않고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마치 로트레아몽(19세기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시인)의 '말도로르의 노래(les chants de maldoror)'에 등장하는 해부대 위의 재봉틀과 우산처럼 생경하게도.

/황무현(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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