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바람난 주말] (34) 문학이 흐르는 길을 따라

계절은 쉽사리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제법 서늘하지만 맹렬했던 여름은 더디게 가고 있다. 여름 끝자락, 태풍 소식에 마음이 무겁다.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비도 발걸음을 머뭇거리게 한다. 이런 때는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여진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태풍 피해 소식도 쉽사리 발을 뗄 수 없는 이유다.

마땅히 갈 곳도, 가야 할 곳도 떠오르지 않는다. 때마침 한국관광공사는 '문학이 흐르는 길을 따라'를 주제로 9월에 가볼 만한 5개 지역을 선정했다. 창원 마산합포구, 전북 부안 신석정문학관, 경기 양평 황순원문학관, 강원 정선 몰운대, 경북 칠곡 구상문학관 등이다. 이 중 창원 마산합포구 문학여행길이 선정돼 눈길을 끈다.

9월의 시작, 독서의 계절이라 불리는 가을과도 딱 맞아떨어지니 아이와 함께 가볍게 떠나보기로 했다.

◇시작은 창원시립 마산문학관부터 = 문인들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문학 기행. 말은 거창하지만 그 시작은 마산합포구 창원시립 마산문학관(노산북 8길, 49-1)이다.

펜모양 안내판이 인상적인 문학관 입구.

우선 마산합포구는 고운 최치원이 월영대 앞바다의 아름다움에 반해 이곳에 머물며 후학을 양성했다는 곳이다. 이후 고려·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문장가의 순례지가 됐다. 이곳에 자리한 창원시립 마산문학관은 마산 문학의 흐름을 한눈에 엿볼 수 있다.

문학관 앞마당에는 앉아 쉬어가기 좋은 정자가 하나 놓여 있다. 그곳에 올라서면 '그리운 남쪽바다, 그 파란 물'했던 바로 가고파, 마산 앞바다는 물론 마산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다닥다닥 모여든 주택가 한가운데 문학관을 중심으로 짙은 초록의 우거진 나무숲 사이에 서 있는 기분이 좋다. 정자에 아이와 아무렇게나 앉아 바람을 맞으며 마침 들고 온 책 몇 권을 읽었다.큰 도로를 따라가다 구불구불 골목길로 접어든다. 가다가 마주 오는 차라도 있을라치면 한참을 조율해야 할 듯한 골목이다. 옛 마산의 정취가 한껏 느껴진다. 이런 곳에 문학관이 있을까? 의구심이 들 때쯤 펜 모양으로 솟은 안내판이 보인다. 문학관 앞마당에는 창원시를 연고로 둔 시인들의 문학비가 서 있다.

소박하다. 그래서 마산문학의 흐름을 한눈에 살펴보기엔 부담이 없다. 결핵 문학, 민주 문학, 공단 문학, 바다 문학 등으로 나뉘어 있다. 이중 국립마산결핵요양소(현 국립마산병원)에 머무르던 작가들의 활동을 보여주는 결핵 문학에 눈길이 간다. 창원이 결핵 요양과 치료의 도시였고, 이런 덕분에 나도향, 임화, 지하련, 권환, 이영도, 구상, 김상옥, 김남조, 김지하 등 적지 않은 문학인이 병을 다스리며 창원에서 체험을 문학작품으로 남겼다.오래된 책이 주는 독특한 향기가 있다. 문학관으로 들어서니 한동안 잊고 있었던 책 냄새가 느껴지면서 정신이 번쩍 든다. 그동안 책을 너무 멀리했구나. 이 가을, 책이 주는 독특한 향기에 빠져보리라 생각한다.

문학관에 전시된 각종 자료들.

전시관에서 시인의 친필 원고도 만날 수 있다. 꾹꾹 눌러쓴 시어들이 빛바랜 200자 원고지에 고스란히 담겨 세월을 묶어두고 있다.

시 낭송 감상 코너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 헤드폰을 끼고 잠시 감상에도 젖어보고, 아이는 터치 스크린으로 창원의 문학가들을 하나하나 눌러본다.

마산 문학의 자취가 잘 정리된 문학관 내부.
원고지 모양이 눈에 띄는 문학관 내부.

◇문학비를 찾아 = 마산합포구가 문학여행길로 선정된 데는 곳곳에 문학비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곳은 용마산 산호공원. 공원 입구의 울창한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문학비가 늘어선 '시의 거리'가 시작된다.

여름의 끝에 선 나무들은 이루 말할 것 없는 선명한 푸름을 내뿜고 있다. 곳곳에 놓인 시비도 감상하고 숲길을 산책하다 보면 복잡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

천상병 시인의 〈새〉 문학비가 놓인 월영동 만날공원은 무학산 등산로가 시작되는 곳이니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산호공원 대신 만날공원을 택해도 좋겠다. 편도 3.6km 구간으로 정상까지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문학여행 당일 코스 = 창원시립 마산문학관→용마산 산호공원→마산박물관→문신미술관→마산음악관→마산조각공원. 문의 055-225-7191(창원시립 마산문학관), 055-225-3695(창원시청 관광진흥과).창원시립 마산박물관도 빼놓을 수 없다. 박물관 앞마당에는 최치원이 머무르던 월영대를 찾아 시를 남긴 문장가들의 시비가 있다. 고려시대 정지상, 김극기, 안축 등과 조선시대 서거정, 이황, 정문부 등 당대의 문사 13명이 남긴 시다.

시비를 찬찬히 읽어보는 아이.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