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397세대(30대이면서 90년대에 대학을 나온 70년대생)를 앞세워 1990년대를 회고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인기다. 〈건축학개론〉 〈신사의 품격〉 〈응답하라 1997〉 등이 그 주인공이다.

〈신사의 품격〉에 나오는 신사들은 1972년생이다. 이들은 소위 압구정에서 잉태된 '오렌지족'으로 청담동에 정착한 '꽃중년'들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들은 트렌드를 선도하고 일상도 연애도 직업도 세련되기 그지없다. 〈건축학개론〉 두 주인공은 96학번이다. 그나마 남녀 간의 사랑에 애틋함과 간절함이 남아 있던 시대를 그림으로써, 90년대의 향수와 추억을 자극했다. 덕분에 멜로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웠다. 〈응답하라 1997〉은 부산을 배경으로 97년 당시 고교생들의 일상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까데기, 까리뽕삼, 니주구리풀빵' 등 당시 유행했던 비속어가 거침없이 등장할 정도로 사실적이다. 이에 힘입어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고 있다.

동시대를 살아왔던 입장에서 이들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순간순간 타임슬립을 경험한다. 당시 유행했던 패션이나 당대를 풍미했던 주옥 같은 가요들을 듣고 있노라면 절로 추억에 빠져든다. '삐~' 하는 PC통신의 연결음이 들릴 때는 조건반사처럼 안도감이 들 정도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한 장면.

하지만 그때뿐이다. 영화나 드라마가 보여주는 90년대는 뷔페식당의 상차림 같이 그럴듯한 것들의 나열일 뿐이다. 그래서 허전하다.

이 세대는 냉전의 해체로 인한 탈이념화와 시장자유주의가 낳은 개방의 혜택을 마음껏 만끽했으며, PC통신과 인터넷으로 이어진 정보통신 혁명의 주체이자 수혜자들이었다. 그러나 386세대의 화려한 영웅담에 눌려 주눅이 들어 있었고, 세대 간 혹은 세대 내의 계급적 위화감을 실감했으며,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의 시련을 온 몸으로 겪어야 했다. 국가의 위기가 가족의 해체를 불러오는 현실을 목도하며 트라우마를 겪었고, 풍요와 빈곤이 교차하는 시대 속에서 실업자·비정규직·신용불량자가 양산되었다.

영화와 드라마는 이러한 명암에서 밝은 것만 강조할 뿐 어두운 부분은 애써 외면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30대가 소비시장을 주도하는 계층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백화점, 대형마트 등 주요 소비시장에서 397세대가 40대를 제치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함으로써 소비시장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문화는 철저히 자본에 종속된다. 90년대를 추억하는 것은 30대의 감성을 자극함으로써 더 많은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지난 시대에 대한 성찰은 없고 판타지만 난무할 따름이다. 덕분에 우리 기억 속의 90년대는 점점 왜곡되어 간다.

90년대를 그린 영화나 드라마가 허전한 것은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스로 선택한 삶이냐 아니냐에 따라 가치와 만족도는 달라진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추억마저도 선택적으로 보여주는 현실은 그래서 재미없다.

아름답기에 추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추억으로 남았기에 아름답게 기억되는 것이다. 보여주는 90년대보다는 내가 살아 온 90년대를 돌아보자. 비록 장동건만큼 폼나지는 않겠지만, 내가 선택한 삶이고 내가 주인공이기에 드라마보다 훨씬 흥미진진할 것이다.

/박상현(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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