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공감] 시골 면사무소 주변

시골에서는 면사무소 주변이 최고 번화가다. 길어야 200m 정도 되는 일직선 거리 양옆으로 음식점·빵집·편의점·다방·옷 집 등 이런저런 가게가 들어서 있다.

시골이라고 차량이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길가는 주차된 차량으로 빽빽하다. 가게 앞이다 보니 주차를 하려면 가게 주인 눈치를 제법 봐야 한다. 농협 앞에는 주차 공간이 있는데, 주차 차량 모두 농협 이용자는 아니다. 농협이 아닌 다른 쪽에서 와서 차 빼는 이들이 심심찮게 있다. 농협 청원경찰은 이들과 서로 아는 사이인 듯 한 번 웃고 끝낸다.

약초 파는 시장 앞에는 차량이 뒤엉켜 있다. 편도 1차로인 도로에는 몇몇 차량이 깜빡이를 켜고 정차해 있다. 뒤따르던 차량은 신경질적인 경적을 울린다. 비까지 더해지며 분위기가 아주 어수선하다. 잠시 이어지던 정체가 풀렸지만, 여전히 오가는 차량이 계속 이어진다.

   

약초시장에는 노인들이 좌판 장사를 하고 있다. 지나는 이들에게 눈빛을 보내며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곳 면사무소 주변에는 짜장면집이 한 곳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점심때는 주문 전화가 밀려든다. 방문손님보다는 배달손님이 많다 보니 내부는 아주 작고 어지럽다. 테이블은 달랑 두 개다. 테이블 위에 얹어진 신문은 아직 펴지도 않았지만, 음식물이 묻어있다.

이 짜장면집은 노부부, 그리고 아들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할아버지가 홀과 주문전화를 책임지고, 할머니가 음식을 만든다. 배달은 역시 아들 몫이다. 주문전화가 계속 이어진다. 할아버지는 수화기를 통해 "시간이 좀 걸린다"고 전한다. 주방에 있는 할머니는 뭔가 못마땅한 듯 할아버지를 향해 계속 짜증을 낸다. 할아버지는 이런 할머니를 향해 같이 화를 내며 맞대응한다. 하지만 손님에게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친절함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할머니는 비옷을 입고 배달하고 돌아온 아들을 향해서도 "왜 음식을 미리 해놓지 않았노"라며 고함을 지른다. 할머니는 손님이 있고 없고는 안중에 없이 계속 목소리를 높인다.

   

손님 몇몇이 계속 들어오자, 할아버지는 살림살이가 어지럽게 펼쳐진 방으로 안내한다. 손님이 계산하는 중에는 할아버지와 아들 간 신경전이 펼쳐진다. 할아버지가 "간이 영수증 좀 꺼내라"고 하자 아들은 "비 맞아서 손도 다 젖었고, 바쁜데 아버지가 좀 해라"며 신경질을 낸다.

짜장면집 옆에는 작은 다방이 하나 있다. 여주인이 한가로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 옆에 있는 이용원 간판은 아주 오래된 듯 낡았고, 전화번호 앞자리도 아직 두 자리로 되어 있다. 안에는 손님 두 명을 받을 수 있는 의자가 놓여있지만, 역시 손님이 없다. 주인 할아버지는 신문을 보며 시간을 달랜다.

그 바로 옆 미용실에는 아주머니·할머니 등 손님이 몇 있다. 주인아주머니는 앞에 아무것도 두르지 않고 평상시 차림으로 손님 머리 손질을 한다. 적당한 대화를 섞어가며 살가운 모습을 잃지 않는다.

유명 메이커 빵집도 있다. 안에는 손님들이 제법 많다. 대부분 젊은 여자들이다. 그 속에 할아버지도 있다. 빵 몇 개를 산 할아버지는 계산을 치르고 밖에 나와서는 비닐봉지 안에 든 빵을 한 번 더 확인한다. 얼굴에 가벼운 미소가 번진다.

편의점에는 초등학생들이 유독 눈에 많이 띈다. 방학 기간 학원에 왔다가 각자 부모를 기다리는 아이들이다. 혼자 집에 가는데 어려움 없는 나이지만, 시골이다 보니 차편이 마땅치 않아 부모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이들은 한쪽에 앉아 라면을 먹으며 자기네들만의 소소한 대화를 나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각자 부모들이 와서는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간다.

면사무소 주위에는 소주 한잔할 곳, 호프집, 노래방 같은 유흥업소도 제법 눈에 띈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단란주점·룸살롱 같은 것은 들어서 있지 않다. 한 작은 연쇄점 앞 평상에서는 할아버지 3명이 빗소리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들이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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