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 가리키는 '달' 망각한데서 온 유비설화

옛날에 부모를 일찍 여읜 오누이가 농사를 짓고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농사를 하고 산에서 나무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비가 많이 내려 강물이 크게 불어 있었다. 어차피 비에 젖은 옷이기에 두 오뉘는 그대로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런데, 젖은 옷이 착 달라붙은 여동생의 몸매를 본 나이 든 오빠는 갑자기 몸이 후끈 달고 몸 아래의 그것이 솟아올랐다. 참을 수 없었던 오빠는 자칫 동생의 몸을 범할 것 같아 나무를 하던 낫으로 자신의 그것을 잘랐다. 자르고 나서 너무 피를 많이 흘려버린 오빠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를 본 동생은 슬피 울면서 "달래나 보지, 달래나 보지"하며 크게 애통해 하며 슬피 울었다고 한다.

그 후로 이 강을 '달랬던 강'이라 해서 '달래강(달내강)'이 되고, 이것이 한자로 달천 또는 달천강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은 비단 이 고장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와 비슷한 근친상간에 대한 전설은 전국에 한두 곳이 아닐 정도이다.(출처: '달천의 위치 충주 달내강의 전설' / <배우리의 땅이름 기행>)

위의 달래강 전설은 달래고개 지명 설화에 가탁한 유비설화로 여겨집니다. 전국적으로 이런 유의 설화는 곳곳에서 확인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뒤에 만나게 될 경기도 판교에서 서울 서초 사이에 있는 달래고개에 깃든 전설입니다.

이곳의 달래는 달내의 훈차인 월천(月川) 또는 현천(懸川)으로 표기합니다. 이와 같은 표기는 이곳 충주의 달천(達川)과 의미에 있어서는 상통하는 것으로 창원의 달천(達川) 감천(甘川)이 달내를 그리 적은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한자로 어찌 적든 모두 모처에서 북쪽에 있는 내라 그리 적은 것일 뿐인데, 달내가 북쪽의 내라는 의미를 잊게 된 이후에 달래강 전설과 같은 이야기로 윤색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달천나루에서 본 달천 하구. 멀리 금천이 보인다. /최헌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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