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변한다'. 〈조선일보〉가 올해 초부터 연재 중인 '최신 건축 트렌드' 기획기사 제목이다.

예의 숲과 나무가 울창한 산비탈이나 푸른 대지 위에 지어진,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아름답고 쾌적한 집이 많이 등장한다. 주로 건축가들의 집인데, 거의 한 명도 빠짐없이 '자연 그대로'를 삶의 공간에 옮긴, 환경을 배려한 자연친화적 건축을 지향했다고 강조한다.

사실 전원주택은 2000년대 들어 웰빙·귀농 바람이 불면서 만인의 꿈이 된 지 오래이다. 요즘은 단순 노후 대비 차원을 넘어 젊은층의 '이주'도 확산되는 추세이며 각 지방자치단체도 적극 유치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꿈과 낭만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해당 지역 주민이 그들이다. 이를테면 최근 충남 아산시 송악면 주민들은 시가 마을 중심부에 추진 중인 '전원마을 조성사업'에 반발하고 나섰다. 산림훼손과 환경오염, 자연재해, 기존 마을과 부조화 등이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지난 4월 13일 자 〈조선일보〉 '집이 변한다' 기사 일부.

〈조선일보〉 연재 내용을 보면 이는 단지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총 20회 기사가 나가는 동안, 새 이주민들과 마을 주민들의 교감이 자세히 다루어지거나 필요성이 강조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오직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위한 선택이었을 뿐, 마을공동체·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이나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평한 집터를 만들기 위해 거친 산비탈을 인위적으로 깎았다"는 한 건축가의 무용담(?)이 버젓이 소개되기도 한다.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대부분 기존 마을과 동떨어진 한적하고 경치 좋은 곳에 전원주택을 짓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공간이 진짜 너무 좋아서'였다고 믿고 싶다. '괜히 낯선 사람들과 이래저래 엮이기 싫어서'였다는 오해(?)는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진정 자연과 환경을 생각한다면, 멀쩡한 산을 깎고 땅을 파헤치고 나무를 자르는 게 아니라 기존 마을의 빈집 등을 잘 개조해 쓰는 것이 훨씬 더 옳은 방법 아닐까? 고령화와 이농 확산으로 농어촌엔 지금 빈집이 차고 넘친다. 많은 지자체가 '빈집정보센터'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이다. 굳이 '가까스로' 개발을 피한 자연 속까지 '침범'해 자동차 매연과 온갖 쓰레기·배설물을 퍼부을 이유가 없다.

최근 한국을 다녀간 세계적인 석학 슬라보예 지젝은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이란 책에서 "공동선의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한 바 있다. "생태학자들은 '우리는 보다 자연적인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숲 가까이에서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제가 아는 독일의 생태학자는 이러한 경향이 생태학적으로 완전한 재앙이라고 말한다."

상식적으로 봐도 그렇다. '우리 모두'가 자연으로, 더 쾌적한 곳으로 향할 때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자연은 과연 어떤 지경이 될 것인가. 극단적인 상상이지만, 지젝의 말처럼 "사람들이 꽉 들어차서 생태적으로 오염되고 더러워진 도시는 사실상 역설적으로 자연에는 최선"일지도 모른다.

'친환경' '자연친화' '녹색' '에코' 따위의 수식어 몇 글자로 손쉽게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모든 영역이 그렇겠지만 갈수록 총체적이고 폭넓은 사유와 실천이 중요해지고 있고, 생태 윤리 역시 이 관점에서 새롭게 정립되지 않으면 안 된다. 4대강 사업의 취지도 '녹색성장'이었고 원자력에너지의 다른 이름 또한 '친환경 청정에너지'였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