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동·오동동 이야기] 아귀찜 마니아 된 사연

저 세상 사람이 돼버린 형이 있다. 훤칠한 외모와는 딴판으로 성격이 직설적인데다 시니컬했다. 배포도 컸는데 특히 사람에 대한 호오가 분명했다. 신문사 생활 초창기에 동생이 어떻게 지내나 궁금했던지 마산으로 날 찾아왔다. 간만의 형제 상봉이라 그럴듯한 장소가 필요했다. 우린 철들면서부터 함께 약주잔을 기울이던 사이다. 술과 밥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집이 어딘지 궁리하다 마산의 명물 '아귀찜'을 찍었다. 딴에는 지역별미를 선택한 셈이다.

할매아구찜집에서 소주와 같이 먹었는데, 음식 먹는 내내 표정이 마뜩지 않았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이런 걸 음식이라고 파냐"며 힐난조로 말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맵기만 하고 아무 맛도 없는 '콩나물 무침'을 일부러 먹는 이유가 뭐냐고. 그때는 나도 아귀찜에 대해 특별히 애정이 없을 때라 달리 대꾸할 말이 없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억수로 좋아하는데!" 괜히 실실거리며 어색하게 몇 마디 말로 얼버무린 기억이 새롭다.

   

음식이란 같이 먹어주는 사람이 감탄사를 연발해야 사는 사람도 뿌듯해진다. 또 그래야 고장 음식에 대한 자부심도 생긴다. 그런데 모처럼 산다고 산 게 영 타박만 맞았으니, 나도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그후 1년 동안은 아귀찜집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서울에 사시는 장모님이 내려오셨다. 그래도 고장 명물을 대접해야겠는데, 삼겹살과 소주 외에는 아는 게 없어 끙끙거렸다. 그 모습이 딱했던지 한 동료가 "아귀찜집에 가면 되지, 뭘 그리 고민하나?"라고 권유하는 것이었다. "그래! 비록 저번에는 실패했지만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잖아! 서울 사람이니 토속적인 아귀찜에 반할지도 몰라!" 그런 생각에 용감하게 아귀찜집으로 향했다.

"맛이 독특하네!" "조금 맵네" 장모님은 그다지 말씀이 없으셨다. 그래도 기분나쁜 인상은 짓지 않길래 약간 안도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서울로 올라가신 장모님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죄다 "아휴! 그런 걸 무슨 맛으로 먹니?"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에구! 기껏 머리 쓴다는게 그런 음식을! 마누라는 대놓고 핀잔이었다. 연세 많으신 장모님은 20년도 훌쩍 넘긴 당시 경험을 지금도 웃으시며 되새긴다. "구서방! 그걸 뭔 맛으로 먹어? 콩나물만 잔뜩 든 그걸!" 세월이 흘러 추억이 되었기망정이지, 지금 생각해도 그때 경험은 진땀난다. 형과 장모님이 연타석으로 비방(?)을 늘어놓는 바람에 아귀찜은 도대체 상종못할 음식이 되고 말았다. 아예 머릿속에서 아귀찜을 지워버렸다. 그렇게 또 몇 년이 흘렀다.

점심먹자며 회사로 찾아온 지인과 함께 시내로 나갔다. 여름이었는데, 이 사람이 대뜸 "이열치열 아인교?"하며 아귀찜집으로 손을 이끄는 것이었다. 오래된 초가 아귀찜집이었다. 얼떨결에 따라 들어가 막걸리를 주고 받으며 아귀찜을 안주삼아 먹었다. 아! 그런데 이게 예술이었다. 입맛을 확 당기는게 별미중의 별미였다.

그것은 진정한 재발견이었다. 왜 예전엔 이 맛을 느끼지 못했을까? 한번 입이 트이자 그 이후는 일사천리. 지금까지 나 땜에 죽어나간 아귀만 해도 부지기수다. 지인 만남도 아귀찜, 손님 접대도 아귀찜. 위장이 좋지 않아 요즘은 조금 뜸하지만 1년전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서너 번은 아귀찜이었다. 사장으로 취임한 후 전 부서와 돌아가며 회식을 했는데, 회식장소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직원들도 당연히 아귀찜집에 가는 걸로 알고 있을 정도였다. 음식 맛에 자신이 생기다보니 갈까 말까 쭈뼛거리던 건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이젠 멀리서 오는 손님들에게 "마산 별미 몰라요?"라며 대놓고 아귀찜을 들이민다. 장모님 입맛을 닮은 처제와 동서도 그렇게 공략했다. 처음엔 뜨악하게 음식을 대하던 두 사람도 "서울에서는 못보던 맛"이라며 이젠 부러 아귀찜을 찾을 정도다. 단 맵고 짠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조금 담백한 맛을 권한다. 이럴 땐 옛날 우정아구찜 집이 제격이다. 웅숭깊은 맛을 원하는 경남 사람들은 옛날 초가집으로 데려간다. 물론 다른 가게도 모두 훌륭하다.

오동동 아구찜 거리 전경.

아귀찜을 생활화하다 보니 예상하지 않았던 이점도 생겼다. 3만 원 정도면 요리와 밥, 그리고 술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 또 웬만큼 먹으면 2차 가자고 조르는 사람이 별로 없다. 막걸리 덕에 배가 남산만해지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가있는 조카는 아귀찜 하면 늘 아재비가 생각난다고 말한다. 한번씩 귀국할라치면 여지없이 아귀찜 집으로 끌고가는 아재비를 두고, 혹 전생에 아귀와 무슨 큰 인연이 있는 것 아니냐고 농을 걸 정도다. 가끔 나도 헷갈린다. 혹 내 몸에 아귀 DNA가 들어 있는 건 아닌지!

/구주모(경남도민일보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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