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개념 정의부터 새로 해야…행정당국 근대유산 보존의지·인식정립 절실

마산 삼광청주 건물에 이어 최근 진해 제황산공원 조성 중 오래된 군 시설이 철거되면서, 창원지역 근대문화유산 보전 문제가 또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지난해 여름 창원시가 마산합포구 장군동 옛 삼광청주 자리에 원룸과 빌라 건축 허가를 내주자, 삼광청주 철거-보전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란이 일었었다. 마을 주민들은 철거를 막기 위한 운동에 나섰지만, 행정당국의 미온적인 태도로 삼광청주 건물은 100년 역사를 뒤로한 채 헐리고 말았다.

시 소유였던 제황산 내 오래된 군 시설의 경우 주변 주민들의 요구와 안전 문제로 철거됐다. 마산 해안도로변에 방치된 쌍용양회 사일로 활용 방안을 두고도 시민사회와 관계 기관(마산지방해양항만청) 간에 이견을 보여 제2, 제3의 삼광청주 논란이 불거질 조짐이다.

이들 사례는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행정당국의 인식과 의지 부족이 원인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더욱 철저하고 객관적인 자료 조사를 통해 문화유산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목록화해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새로운 조사 및 목록화 절실

현재 도내 근대문화유산 현황을 정리한 공식 자료는 지난 2004년 경상남도에서 발간한 <근대 문화유산 목록화 사업보고서>가 유일하다. 이 보고서는 통합창원시 내 근대 문화유산을 101점(옛 창원 9점, 마산 42점, 진해 50점)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보고서가 작성된 이후 1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탓에, 그간 사라진 유산도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삼광청주(마산합포구 장군동)와 유원연료공업(마산합포구 월남동) 등이다.

허정도 박사(창원대 건축학부 초빙교수)는 이를 두고 자신의 블로그에 "당장의 경제적 가치가 없다는 근시안적 시각과 무관심한 행정의 방조 속에 많은 유산이 철거됐다. 이대로 다시 10년이 지난다면, 또 많은 수의 유산이 사라질 것이고 도시 정체성은 점점 희미해져 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 보고서는 19세기 말부터 1960년대까지 만들어진 건조물만 대상으로 삼았다. 이 때문에 마산 해안도로변 쌍용양회 사일로 등 1970년대 이후 지어졌지만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높은 건조물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 역시 새로운 조사 및 목록화가 시급한 이유로 꼽힌다.

다행인 것은 창원시가 지난달 발표한 근대문화유산 관리계획에 '근대문화유산 현황조사 및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통한 기록화'가 포함되어 있는 점이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근대문화유산이 얼마나 더 많이 발굴돼 시민들 앞에 설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창원시 마산해양항만청 옆 쌍용시멘트 공장. /경남도민일보 DB

근대문화유산 인식 정립 활동도 필요

현재 도내에서 진행중인 근대문화유산 보존 관련 움직임은 대부분 '건축물'에만 치우친 경향이 있다. 이는 삼광청주 철거가 근대문화유산 보존운동에 불을 지핀 영향이 크다. 이와 함께 창동예술촌 등 통합창원시 일대에 분 도시재생 바람은 관심 있는 이들로 하여금 근대 건축물을 도시재생 요소의 중요한 한 축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통합창원시 일대가 일제강점시기 근대 개항장으로서 빠르게 근대 도시화된 역사적 연원도 건축물 중심의 사고를 부추기는 데 한몫한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는 근대문화유산 개념의 폭을 넓히는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근대 건조물뿐만 아니라 문학, 음악, 조각, 체육, 신문잡지, 군사, 의료, 공예, 교통(자동차·철도), 전기통신 등 근대 생활·문화 전 영역으로 넓혀나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창원 등 지역에서는 건조물 외에 근대문화유산 보존과 활용에 소극적인 것이 현실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와 관련 "근대문화유산은 꼭 건조물만이 아니라 근·현대시기에 형성된 시설물·문학예술작품·생활문화자산·산업·과학·기술분야·동산문화재·역사유적 등 보존 및 활용을 위한 조치가 특별히 필요한 모든 것을 말한다"고 강조했다.

진해구 제황산공원 입구에 있는 대피소./경남도민일보DB

건조물만 근대문화유산일까?

일각에서는 근대문화유산에 대해 따가운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일제강점기 만들어진 유산의 보전 필요성에 적지 않은 사람이 반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경남지역은 아니지만, 1920년대 지어진 부산 옛 백제병원 건물을 최근 부산시가 매입 추진하기로 한 데 대해 한 시민은 이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일본인들이 만든 병원 건물이 한국인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만들었겠느냐. 일제가 한국인들을 구별짓고, 수탈하고자 만든 대상물을 철거하지 못할망정 시 예산으로 사들인다는 것은 정서상 용납할 수 없다."

이처럼 근대문화유산은 아직 명확한 개념 정의도, 충분한 시민적 공감대도 없이 생색내기식 또는 당위적 필요성 등에 의해 보전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오직 성과 과시에만 급급하니 근대문화유산 보전 계획(창원시)을 밝힌 지 얼마 되지 않아 진해 제황산공원 내 군시설 철거가 진행되고, 시민적 공감대가 약하니 눈앞에서 삼광청주가 무너져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것이다. 행정당국은 물론이고, 근대문화유산을 보전코자 하는 전문가 집단과 시민들의 다양한 노력과 활동이 절실한 시점이다.

철거중인 마산합포구 삼광청주 모습. /경남도민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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