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바람난 주말] (32) 기차타고 해운대 가기

숙제를 안 한 기분이었다. 연일 이어지는 불볕더위에도 해수욕장을 애써 외면했다. 가보지 않아도 예측 가능한 '물 반 사람 반'일 요즘 같은 때, 해수욕장을 찾는 건 말 그대로 '고생바가지'일 것 같은 두려움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나온다.

아이만 아니었다면 절대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투덜댔지만 성수기에 해수욕장을 찾는다는 설렘에 살짝 들떴다.

이왕 가볼 해수욕장이라면 나조차도 온전히 자유롭고 싶다. 운전에 대한 부담에서도, 바쁘게 쫓기는 시간에서도. 느릿느릿 여유를 즐기며 떠나고 싶었다. 그래, 기차 타고 해운대로 가보자.

창원과 마산에서 하루 '딱' 한번 해운대까지 기차가 다닌다. 오전 8시30분 마산역을 출발해 5분 뒤엔 창원역, 그리고 오전 8시43분 창원 중앙역을 지나 10여 번의 정차 끝에 오전 10시 12분 해운대역에 도착하는 무궁화호.

창원에서 하루 딱 한번 해운대로 가는 기차가 있다. 여행을 떠나는 이들로 열차 플랫폼은 들뜬 기운이 가득하다.

돌아오는 기차도 딱 한 번이다. 오후 6시 7분. 이 기차에 몸을 실으면 오후 7시 40분께 창원에 도착할 수 있다.

이른 아침, 서둘러 기차역으로 향했다. 요금은 어른은 5500원, 아이는 나이에 따라 유동적이다. 아이는 1400원 요금을 내고 함께 플랫폼에 올랐다.

아이는 길게 뻗은 레일을 바라보며 기차를 탄다는 기대에 잠시도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한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대며 기차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느리다. 창 밖으로 스치는 배경들이 선명하게 곁을 스쳐간다. 10분 남짓으로 정차하고 달리기를 반복한다. 기차 안에는 사람들이 부산하게 오간다.

영화에서나 봄 직한 단출한 해운대역에 도착했다.

소금기를 잔뜩 머금은 세찬 바람을 맞이하니 부산에 도착한 것이 실감이 났다. 해운대 역에서 길을 따라 5분 정도 도심 속을 걷다 보면 마법처럼 금세 바다가 펼쳐진다.

백사장 길이가 1.5km, 폭 30~50m, 면적 5만 8400㎡. 성수기의 해운대는 탁 트인 모래사장이 아니라 촘촘히 박혀 있는 파라솔이 먼저 우리를 반긴다. 다른 계절의 해운대와는 다르다. 젊음과 자유가 몸으로 느껴진다. 해운대 바다는 웅장하고 활기가 넘친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시야가 탁 트인 바다와 하늘에 잔뜩 피어 있는 구름이 저 먼 곳 어딘가에서 맞닿아 장관이다. 거대한 파도가 힘차게 몰려온다.

우산을 펴면 해가 나오고 우산을 접으면 비가 내리는 변덕스런 날씨다.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하지만 사람들은 파도에 몸을 맡기고 함성을 질러댄다. 여행 다니기엔 불편한 날씨지만 해수욕장에서 즐기기엔 강한 햇볕도 없고 비에 젖어도 상관없는 이런 날씨가 제격이다.

피서객들이 가득한 해운대. 아이들이 모래 장난에 푹 빠져 있다.

파라솔을 대여하려면 6500원을 내야 한다. 우산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바람 때문에 파라솔을 대여했다. 돗자리를 깔고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은 이내 모래의 촉감에 푹 빠졌다. 해운대 해수욕장의 백사장 모래는 까칠까칠하고 깨끗해 몸에 묻으면 잘 떨어지는 특징이 있다. 모래는 춘천 하천강변으로부터 유입된 모래와 조개껍데기가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을 거쳐 다듬어졌단다.

파도가 높다. 백사장 곳곳에 우뚝 솟은 자리에 안전요원이 연방 망원경을 끼고 주위를 살핀다. 조금이라도 멀리 나간 피서객이 있으면 호루라기로 경고한다. 이색 풍경에다 힘차게 몰아치는 파도의 기운에 아이들이 흠뻑 젖었다.

수영복(남자 2000원, 여성 3000원)은 대여할 수 있고, 샤워는 5분에 1000원이다.

해수욕장 입구에 있는 부산 아쿠아리움과 해변작은도서관은 북적이는 백사장에서 벗어나 아이들과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다. 밤이 되면 해운대는 화려한 조명으로 또 한번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선 아이와 함께 깊은 잠에 빠졌다.

오는 31일 폐장한다. 문의 051-749-5700(관광안내소).

해운대역. 5분 정도 걸으면 마법처럼 금세 바다에 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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