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제자와 함께 집에 있는 오래된 음반들을 정리할 때다. 오래된 LP며, 구석에 있던 카세트 테이프, 최근에 산 CD 그리고 음악 관련 비디오·서적까지….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시작한 일이 몇시간이 지나서야 마무리되었다. 각 음반에 담긴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할 즈음, 갑자기 제자로부터 한 가지 질문을 받고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질문은 간단했다. 내가 갖고 있는 음반·서적 등 음악 관련 자료의 전체 가격이 어느 정도나 되냐는 것이다. 요즘은 이런 음악자료를 사는 친구들이 거의 없다고 했다.

우리가 즐겨 다니는 커피숍 등 여러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공장소를 생각해보자. 어디서든지 수많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얼마 되지 않는 월정액제인 스트리밍 서비스나, 인터넷으로 다운받은 MP3로 음악을 틀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 한 작곡가가 칼럼에서 던진 말이 생각이 났다. "요즘 가요의 유통기한은 요구르트보다 짧아요." 지나가는 소리로 한 것이었지만, 요즘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현실을 한마디로 요약한 뼈 있는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적은 비용으로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서비스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공급자나 제작자 입장에서는 좋은 품질의 음반을 만들어도 투자한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제작자들은 품질보다는 '다작'으로 승부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왔다.

또한 소비자들의 경우, 월 정액제 같은 서비스에 길들여져 유통사가 제공하는 음악을 수동적으로 듣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만약 예전처럼 한 곡당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면 소비자는 마음에 드는 곡을 신중히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적은 돈으로 수많은 곡을 즐길 수 있다 보니 곡에 대한 애착이나 곡을 선택하려는 노력은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정액제 서비스에 의존하는 음원 순위는 하루가 멀다 변하고 있고, 히트곡조차도 순위에 머무르는 시간이 유류제품 유통기한보다 짧아진 것이다.

월정액제 서비스를 비롯한 여러 저작권 관련 문제가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요즘 한류를 비롯해 우리나라 음악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언론에서도 심심찮게 달라진 위상을 보도한다. 하지만 진정한 문화강국은 그들이 가진 고유한 문화 콘텐츠의 소중함을 이해하고, 이를 즐기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 줄 아는 사람이 많아질 때 비로소 이룰 수 있다.

음악을 처음 시작하면서 용돈을 털어 산 LP 한 장을 소중히 가슴에 품고 집으로 와,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음악을 들으며 마냥 기뻤던 추억을 떠올렸다.

/전욱용(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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