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이서후의 컬러풀 아프리카 11

바오밥 나무는 거대한 애드벌룬 같다. 어딘가 공기구멍이 있어 그곳으로 공기를 불어 넣는다. 그러면 불쑥불쑥 가지가 커지면서 나무가 거대한 덩치로 부풀어 오르는 것이다. 나무 둥치를 쓰다듬어 본다. 플라스틱처럼 매끈하고 단단하다. 1000년의 세월을 닳고 닳아 생긴 이 굳은살. 그 단단함 속에 왠지 태고의 속살을 숨기고 있을 것만 같다. 바오밥 나무를 가만히 안는다.

다시 문명으로

오카방고 델타를 떠나는 아침. 폴러들이 모닥불에 물을 끼얹는다. 하얗게 피어오르는 수증기 사이로 아침 햇살이 사선으로 비쳐든다. 짐 정리로 부산한 사람들을 바라보다 문득 허전한 생각이 드는 건 아쉬움인가. 오전 8시. 그리 춥지 않은 공기.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물. 다시 3시간짜리 모코로 여행이 시작된다. 밤새 봉오리를 움츠렸던 연꽃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

폴러도 우리 일행도 한동안 말이 없다. 파란 물빛을 배경으로 물풀들이 태양빛을 받아 연두색, 노란색으로 살아난다. 모코로는 그 사이를 느리게, 느리게 헤치고 나간다. 멀리서 경비행기 소리가 들린다. 모코로는 때로 물길을 따라, 때로 물길을 만들며 나아간다. 이어폰을 끼고 파헬벨의 캐논을 듣는다. 눈이 스르르 감는다. 햇볕의 따듯한 느낌, 얼굴을 스치는 바람 소리, 사각사각 모코로가 수풀을 헤치는 소리, 풍덩 풍덩 폴러가 규칙적으로 장대를 미는 소리. 이대로 이 순간이 영원할 것만 같다.

이틀 전에 떠나온 나루터로 돌아왔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모코로를 내린다. 폴러들과의 안타까운 작별 시간. 다들 이틀 밤을 같이 보낸 정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트럭을 타고 다시 캠프장으로 돌아온다. 포장된 도로와 집과 사람들이 있는 문명 속으로 돌아왔다. 델타를 빠져나와 숙소로 돌아오는 길 다들 들뜬 표정이다. 마치 오랜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오카방고 델타에서 이틀은 마치 여행 속의 여행 같다. 나른하게 낮잠을 자다 일어난 기분이다.

땅에 구멍을 파고 사는 벌잡이새 무리./이서후

점심을 먹은 우리는 곧 짐을 챙겨 캠프장을 떠난다. 굿바이, 오카방고 델타. 오후 2시 20분 검문소가 나타난다. 자세히 보니 검문소가 아니라 검역소 같다. 모두 내려 신발을 소독한다. 전염병을 예방하려는 건가. 다시 트럭을 타고 출발. 가축이 활보하는 보츠와나의 도로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오늘 아침에도 염소 수십 마리가 꽤 오랜 시간에 걸쳐 도로를 가로지르는 걸 봤다. 이제는 도로 위에 뜬금없이 염소, 당나귀, 소 같은 동물들이 나타나도 그저 심드렁하다. 또냐?

오후 3시 20분 멍하니 창밖으로 보는데 순간 기린이 스쳐간다. 봤어? 뭘? 기린! 그러고 있는데 반대편 차장에서, 코끼리다! 소리친다. 어디 어디? 오, 코끼리 세 마리가 보인다. 도로변에 울타리가 없어서 그런가, 보츠와나에서는 가축뿐 아니라 야생 동물도 아무렇게나 튀어나온다.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야생 동물을 발견하는 건 무척 재밌는 일이다.

아주 큰 바오밥나무 중간 둥치./이서후

오후 4시 플래닛 바오밥(Planet Baobab)이란 캠프장 도착. 이곳은 바오밥 나무 군락지다. 오, 바오밥! 아프리카에 와서 꼭 보고 싶은 것 중의 하나였다. 우리는 커다란 바오밥 나무 아래 트럭을 세우고 텐트를 친다. 야영장 곳곳에 바오밥 나무가 가득하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길을 내고, 숙박용 건물도 지었다. 규모는 작지만 독특하고 재밌는 곳이다.

원시의 신성함, 바오밥 나무

텐트를 치고 나서 캠프장에서 가장 큰 바오밥 나무를 찾아간다. 와, 이게 정녕 나무인가. 나무 둘레는 어른 20명이 팔을 벌려 안아야 할 정도다. 나무 아래에는 열매가 떨어져 있다. 커다란 강낭콩이 껍질에 싸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껍질을 까니 열매는 검은색이다. 바오밥 열매는 비타민 C가 풍부하단다. 그래서 더운물을 부어 우려내 마시거나 말려서 커피처럼 타 먹기도 한다.

바오밥은 원주민 말로 ‘upside-down tree’라고도 불린다. 거꾸로 나무? 그러고 보니 줄기 모양 자체가 거꾸로 세운 나무뿌리처럼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다른 나무도 그렇지 않은가? 보통 가지의 뻗어나간 모양을 보면 뿌리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아주 큰 바오밥나무./이서후

뭐 어쨌든 바오밥이 식물계의 공룡인 것은 틀림없다. 최고 수령 2000년 이상, 최고 높이 30m, 줄기 최고 지금 11m, 줄기가 머금을 수 있는 물의 양 최고 12만ℓ. 나무에서는 원시의 힘이 그대로 느껴진다. 신령스러움이 우러난다. 그러서인가, 줄루족 전설에 아주 어린 바오밥 나무를 보면 꿈이 실현된다는 말이 있다.

저녁을 먹고 둘러앉아 모닥불을 쬔다. 시간이 지나 불꽃이 약해지자 하나 둘 자기네 텐트로 사라진다. 드디어 혼자, 남았다. 타닥타닥 잔 불이 이는 모닥불 옆에 서서 하늘을 바라본다. 별은 여전히 그득하다. 달이 차오른다.

다음 날 오전 7시 30분 캠프장 출발. 트럭은 쵸베(Chobe) 국립공원으로 향한다. 나미비아의 에토샤 국립공원, 보츠와나의 오카방고 델타와 쵸베 국립공원은 모두 비슷한 위도에 있다. 국경이 없고 그래서 울타리가 없던 시절, 동물들은 에토샤에서 델타로, 델타에서 쵸베로 자유롭게 이동했다. 동물들에겐 대륙이 통째로 그들의 영토였을 것이다. 그때의 사자는 지금보다 더욱 먼 곳을 바라봤으리라. 더욱 깊은 눈빛을 하고 있었으리라.

오전 10시 45분 트럭은 넓고 넓은 해바라기밭을 지난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거란다. 해바라기밭은 지평선까지 이어진다. 활짝 핀 해바라기들이 환하고 싱그럽다. 12시 15분 쵸베 강 근처 캠프장 도착. 깔끔한 곳이다. 바로 옆으로 강물이 흐른다. 거대한 도마뱀이 흘끗 우리를 보고는 어슬렁어슬렁 사라진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쉰 우리는 유람선을 타러 갔다. 선셋 크루즈(Sunset Cruise)란다. 노을 유람선? 강변을 따라가며 동물을 관찰하는 일종의 사파리다. 돌아오는 길에는 물론 멋진 노을을 감상하게 되지만. 5분 정도 걸려 선착장에 도착. 승객은 우리를 포함 50명 이상이다. 배 운전자 겸 가이드는 나키란 이름의 흑인 남성이다.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 같다. 사람들을 앞에 두고 설명할 때 무척 쑥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부르릉 소리를 내며 배가 출발한다. 하얀 물거품이 엔진이 만든 물결을 따라 멀어져 간다. 승객들은 각자 가져온 간식을 먹고 있다. 다들 조금은 들뜬 분위기다. 아직 동물은 보이지 않는다. 강변에는 별장 같은 건물들이 늘어섰다. 모두 관광용으로 만든 숙소다. 유람선이 ‘루루 아일랜드’를 지난다. 물길이 갈라지는 이곳은 4개 나라의 국경이 만나는 장소란다. 지도 상으로 보건대 아마도 앙골라, 잠비아, 짐바브웨, 보츠와나일 것이다.

코끼리들의 행진

나키가 마이크를 잡고 설명을 시작한다. 쵸베강은 일 년 내내 수량이 많아 주변에 동물이 많이 살아요. 그는 강 주변에 동물이 보일 때마다 배를 멈추고 이런저런 설명을 한다. 어, 하마가 나타났다! 움직임이 없어서 그런가, 진짜 같지 않고 마치 박물관에 전시된 박제 같다.

나뭇잎을 먹는 코끼리./이서후

코끼리는 수영을 잘하죠. 나키가 설명한다. 코로 물을 뿌리며 햇살이 강한 오후 한때를 강가에서 보내지요. 어, 악어다! 역시 전혀 움직임이 없다. 동물들이 모두 늘어져 있는 건 한낮 더위 탓인가. 한참 강을 거슬러 올라갔지만 그다지 인상적인 장면은 없다. 승객들도 슬슬 실망하는 분위기. 나키도 안타까운지 코끼리가 자주 나오는 기슭에 배를 대고 한참을 기다린다. 그러다가 엇! 숲 속에서 어슬렁어슬렁 코끼리가 걸어 나온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열 마리, 스무 마리…, 우와 끝이 없다! 엄청난 무리다!

코끼리 무리는 크게 세 덩어리로 나뉘었는데 한 덩어리가 한가족인 것 같다. 그러니까 이건 세 가족이 뭉친 무리다. 코끼리의 등장에 놀랐을까. 근처 모래사장에 누워 있던 하마 두 마리가 슬쩍 일어나더니 역시 어슬렁어슬렁 물속으로 들어간다. 수면 아래로 사라진 하마들은 잠시 후 푸 하고 콧방귀를 뀌며 나타난다. 사람들이 웃는다. 코끼리를 실컷 구경한 배는 반환점을 돌아 출발한 곳으로 돌아간다. 석양은 발치까지 길게 늘어졌다. 사람들이 이 석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대기 바쁘다.

개코 원숭이 어미와 새끼./이서후
노을 지는 강변./이서후

저녁을 먹고 샤드웰이 일행을 소집한다. 내일이면 짐바브웨에 도착한다. 이번 여행의 종착지다. 샤드웰은 짐바브웨 출신이다. 그는 짐바브웨는 아주 안전한 나라라고 설명한다. 독재가 시작되기 전에는 잘 나가는 나라였단다. 지금의 남아프리카공화국처럼 한때 모든 아프리카 공산품을 짐바브웨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다음 날. 새벽에 쵸베 국립공원으로 게임 드라이브(차를 타고 동물 구경하는 일)를 떠난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느지막이 일어나 느긋하게 아침을 먹는다. 그러고는 태평스럽게 앉아 햇볕을 쬔다. 오전 9시가 조금 넘어서야 사람들이 돌아온다. 사자도 표범도 못 봤단다. 근데 경치는 죽이더라고.

짐바브웨 국경./이서후

오전 11시. 짐바브웨 국경을 넘는다. 여행 마지막 숙소가 있는 빅토리아 폴에 도착. 짐을 풀고 앞마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전통 의상은 입은 남자들이 나타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짐바브웨를 대표하는 쇼나 부족이란다. 정말 열심히 하기는 한데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다. 한둘씩 밥을 먹고 앞마당을 떠나자 이번에는 뒷마당으로 와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그 모습이 애처로워 팁으로 2달러를 준다.

빅토리아 폭포

오후 1시 30분. 우리는 빅토리아 폭포로 간다. 이 여행의 마지막 구경거리다. 도중에 누군가가 말한다. 숙소에서 짐을 푸는데 옷가지에서 캠핑 냄새가 나지 뭐예요. 사실 여행 첫날 텐트에서 자고 나서 바로 아, 이런 거 더는 못하겠다 싶었는데 결국 캠핑을 사랑하게 돼버렸어요. 지금은 집에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냥 오늘 저녁에 다들 한 번씩 안고 작별인사를 해야겠죠? 그 말에 듣고 우리는 쓸쓸한 표정으로 웃는다.

빅토리아 폭포./이서후

빅토리아폭포는 나이아가라폭포, 이구아수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다. 나이아가라가 미국과 캐나다를 가르고, 이구아수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경계다. 빅토리아의 물살은 짐바브웨에서 잠비아로 떨어진다.

매표소를 지나도 바로 폭포가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 거대한 물소리는 이미 충분히 압도적이다. 오, 폭포! 너비 1500m, 낙폭 최대 150m. 몸을 숙여 물이 떨어지는 곳을 내려다본다. 깊이가 보이지 않는 수렁. 자칫하다가는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다. 폭포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물안개는 인공위성에서도 보인다고 한다. 그 물안개는 폭포 위로 멋진 무지개를 만든다. 그리고는 바로 비가 되어 떨어진다. 그래서 폭포에 가까이 가면 억수처럼 소나기가 쏟아진다. 비옷을 입은 그대로 속옷까지 젖어 버렸다.

캐나다에서 온 사진가 론 아저씨에게 빅토리아 폭포와 나이아가라 폭포 중 어느 게 낫느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그래도 나이아가라가 더 낫다고 한다. 빅토리아가 더 넓기는 하지만 높이에서 나이아가라의 웅장함을 따라올 수 없단다. 우리는 오후 내내 물안개가 만든 무지개를 따라다녔다.

빅토리아 폭포의 물안개./이서후
빅토리아 폭포 물안개가 만들어낸 무지개./이서후

저녁은 빅토리아 폴 시내 큰 식당을 예약했다. 완전 뷔페식인데 개인당 20달러다. 음식을 먹는 동안 쇼나 부족 복장을 한 이들이 전통 무용과 노래를 선보인다. 공연이 한 번 끝나면 손님들에게 시디를 판다. 식사를 끝날 즈음 나는 사람들의 향해 말한다. 자 모두 주목! 오늘 우리는 샤드웰과 케이티를 위해 뭔가를 준비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모은 작은 선물입니다.

선물은 여행 내내 우리를 잘 보살펴 준 샤드웰과 케이티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준비한 약간의 수고비다. 먼저 우리의 캡틴, 안내자 그리고 훌륭한 운전사이자 멋진 친구 샤드월. 고마워요. 다음, 케이티, 당신이 해 준 요리를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우리의 주방장이자 좋은 친구. 고마워요. 환호성과 손뼉 소리가 식당에 왁자하다. 샤드웰이 이 환호에 답한다. 나는 이 그룹을 절대 못 잊을 겁니다. 당신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에요.

여행이 끝나간다. 여행이 끝나, 간다.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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