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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이 만난 사람-김오영 도의회 의장

[피플파워] 경남 대표 지역정치인이 된 레슬링 선수

김주완 편집국장 wan@idomin.com 입력 : 2012-08-15 15:28:48 수     노출 : 2012-08-15 15:28:00 수

그는 활달한 사람이다. 말투에는 자신감이 넘친다. 술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이야기하는 걸 즐긴다. 점잔 빼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한정식이나 일식집보단 마산 통술집을 더 좋아한다. 맥주잔에 얼음을 채워 소주를 붓고 홍초를 약간 섞은 ‘홍초소주’를 직접 제조해 마신다.

경남도의회 김오영(58·새누리당) 의장 이야기다. 도의회 의장은 도지사와 함께 경남을 대표하는 위상을 갖는다. 각종 의전에서도 동급의 예우를 받는다. 5급 비서실장과 6급 수행비서, 운전기사가 배속되고, 3000cc급 관용차가 제공되며 월 420만 원(연 5040만 원)의 업무추진비를 받는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알아봐야 할 이유다.

김오영 의장을 만난 것은 7월 9일. 경남도의회 원 구성을 놓고 새누리당과 민주개혁연대 간 마찰이 계속되고 있던 날이었다. 게다가 몇몇 의원은 김오영 의장에 대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까지 법원에 내놓은 상태였다. 따라서 최악의 경우 이날 인터뷰가 책이 나올 때쯤에는 ‘가장 짧은 임기를 수행한 경남도의회 의장’에 대한 인터뷰가 될 수도 있었다. 아무려면 어떤가? 그 또한 경남의 역사가 아닌가.

-민주개혁연대 소속 일부 의원들이 ‘의장 직무정지 가처분’을 냈는데.

“개의치 않습니다. 법원에서 판단하겠죠.”

-그래도 섭섭하진 않나요?

“섭섭하죠.”(웃음…잠시 뜸을 들인 후) 원 구성만 놓고 싸워야 하는데, 왜 다른 걸 갖고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그는 “새누리당 소속이지만 의장으로서 공정하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잘 조율하여 의회 본연의 기능을 회복토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오영 경남도의회 의장./박일호 기자  

20여 년 풀뿌리 현장 지킨 마산 토박이

그는 1991년 부활된 지방의회 의원 선거에서 마산시의원으로 당선된 후 20여 년간 지방정치인의 길을 걸어왔다. 1995년 재선, 98년 3선 시의원과 부의장을 거쳐 2002년 김호일 국회의원의 의원직 박탈로 치러진 8·8국회의원 재선거에 도전했으나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했다.

이후 4년의 절치부심 끝에 2006년 지방선거에서 마산시장 후보로 공천 신청을 했으나, 다시 도의원 후보로 급선회, 마산 2선거구 한나라당 도의원으로 당선됐다. 이어 2010년 지방선거에서 도의원으로 재선, 전반기 도의회에서 새누리당 의원대표로 활약했으며 이번에 후반기 의장으로 당선됐다.

이처럼 20년이 넘는 세월을 지방정치 현장에서 살아온 그였지만, 그의 인생 출발점은 엉뚱하게도 정치와 전혀 무관한 레슬링 선수였다. 따라서 이 인터뷰는 ‘경남도의회 의장이 된 레슬링 선수’의 이야기다.

그는 1954년 9월 20일(음 8월 12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덕동동에서 5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4대 위 선조 때부터 거제 칠천도에서 덕동으로 옮겨와 살아왔으니 마산 토박이라 할 만하다.

그가 레슬링을 시작한 건 창신공고(현 창신고)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그 때 막 창신공고 레슬링부가 창단하면서 자연스레 합류하게 된 것. 선수생활은 대학(인천전문대)을 거쳐 군 생활까지 이어졌다. 대학은 특기생으로 다녔고, 군에서는 전국체전 경기도 대표로 뛰었다.

제대 후에는 삼진중학교에서 레슬링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서중학교와 창원남고, 경상고 학생 중에도 레슬링 제자가 있다. 1985년에는 경남체육고등학교가 개교하면서 초대 레슬링 코치로 가게 됐다.

   
  김오영 경남도의회 의장과 김주완 편집장./박일호 기자  

“당시 운동부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체고에서 코치 생활하는 게 로망이었지요. 하지만 당시 코치 월급이라는 게 형편없었어요. 거기서 근무한지 2년이 채 안 돼 결혼을 하게 됐는데, 결혼 직전에 보니 재산이 딱 80만 원이더군요. 축의금으로 겨우 전세방을 얻었는데, 가족이 생겼으니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아는 선배가 운영하는 의류점에서 영업을 맡았다. 적성에 맞았는지 매출이 쑥쑥 올랐고, 2~3년 뒤에는 여성 의류 대리점을 낼 정도가 됐다.

“당시 논노라는 여성복 메이커가 있었는데, 그 대리점을 했죠. 장사가 잘 되어서 돈을 좀 벌었어요. 나중엔 창동 코아제과에서 삼성생명 사이에 빌딩을 하나 통째로 얻어 1층은 의류점, 2층은 아내가 하는 홈패션, 3층은 수입가구 전문점을 했어요.”

백찬기 의원 권유로 마산시의회 입성

한창 돈 버는 재미에 빠져 있을 무렵 지방의회가 부활됐다. 1991년이었다. 덕동에 살고 있던 형이 당시 백찬기 국회의원을 돕고 있었는데, 백 의원이 형의 출마를 권유했고, 형은 막내를 추천했다.

“내 37년 생애에서 가장 높은 사람의 전화를 받았죠. 당사에 한 번 오라고 하데요. 처음으로 정당 사무실에 가봤습니다. 백 의원이 마산시의원에 출마해봐라 하더군요. 그 얘길 듣고 고향 친구들 20여 명을 불러 모았습니다. 현동초등학교 동기들이었죠. 어떻게 하면 좋겠냐. 해보자. 그 길로 용달하는 놈은 한 달 보름동안 용달 세우고, 택시 하는 놈은 택시 세우고 선거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현동에서 오랜 지역유지였던 분들이 경쟁 후보로 나왔는데, 서른일곱 살짜리 시의원이 된 겁니다. 그 때 당선자의 평균 연령이 56.7세인가 됐는데, 그 중에 제가 최연소 의원이 된 거죠.”

그렇게 해서 입문한 지방정치였다. 시의원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마산 최초로 맹인들을 위한 점자 블록을 도입한 것, 그리고 푸른색으로 통일되어 있던 청소차량의 색상과 디자인을 전국 최초로 바꾼 일이다.

   
  김오영 경남도의회 의장./박일호 기자  

“일본에서 점자 블록을 보고 와서 제가 처음으로 제안을 했죠. 옛 마산시청 건너 소방서 앞에 제일 먼저 점자블록을 깔았고, 그게 이제는 시내 전역으로 일반화했죠. 두 번째는 청소차량 디자인인데, 당시만 해도 조달청에서 나오는 청소차량은 전부 진한 녹색이었어요. 새마을운동을 상징하는 색이었다는데, 청소차일수록 더 깔끔한 색상과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경남대에 차량 디자인 용역을 줘서 괭이갈매기를 그려 넣고 색깔도 빨강 파랑으로 패션화를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획기적인 발상 전환이었죠.”

3선 시의원 거쳐 재선 도의원으로

2002년 6·13지방선거와 김호일 국회의원의 당선 무효로 비롯된 8·8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으나 공천 탈락이라는 쓴잔을 마시게 된다.

“그 때 지역의 모 유력한 국회의원의 권유가 있었어요. 에이~ 그냥 밝히죠. 당시 강삼재 사무총장이 ‘너 국회의원 생각 없느냐’고 물었어요. 여당 사무총장이 그러는데 당연히 공천 받을 줄 알았죠. 그런데 강 총장이 좀 있다가 총장직에서 물러나버린 겁니다. 그 직후 재선거가 치러졌는데 김정부 씨가 공천을 받았죠.”

4년 동안 백수로 있으면서 절치부심하다 2006년 지방선거 때는 마산시장 후보에 도전했다가 급히 도의원 후보로 방향을 틀어 당선됐다.

   
  김오영 경남도의회 의장./박일호 기자  

“당시 황철곤 시장 시절이었는데, 현 시장은 공천이 어렵다는 소문이 많았죠. 그래서 마산시장에 공천 신청을 했는데 황 시장이 다시 공천을 받게 된 거죠. 포기 상태였는데 당에서 제의가 온 겁니다. 도의원으로 바꿔 출마할 의향이 없냐는 거죠. 당시 지역에 열 몇 명이 도의원 공천 신청을 했는데, 도당 공천심사위원회에서 적격자가 없다며 재공모를 했고, 급히 공천 서류를 바꿔 제출하는 해프닝 끝에 도의원을 하게 된 거죠.”

-한나라당, 아니 지금 새누리당이 체질에 맞나요?

“91년부터 정당 활동을 해왔는데, 개인적으로 잘 맞습니다. 남북관계도 그렇고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니까.”

-국회의 경우, 의장이 되면 탈당하고 무소속이 되는데, 도의회 의장은 당적을 유지하잖아요. 도의회도 국회처럼 하는 게 맞지 않나요?

“제 입장에서 의장 당적을 없애자고 말하기는 좀 부자연스럽죠. 언젠가 자연스럽게 논의가 이뤄질 수도 있겠죠.”

-의장으로서 어떤 의회를 만들고 싶은지. 그저 그런 역대 의장 중 한 명으로 남고 싶진 않을 것 같은데.

“당연하죠. 우선 저는 도의원 재정사업비를 20억으로 올리겠다 이런 공약은 사기라고 봅니다. 예전에는 그런 공약을 낸 의장 후보도 있었어요. 그게 된다고 칩시다. 하지만 잘못된 거잖아요. 우선 저는 도의회의 직렬도부터 바꿀 겁니다. 의장 부의장은 의원들보다 위에 있는 게 아니잖아요. 수직관계가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의원들 이름 위에 의장 이름을 적어넣는 게 아니라 맨 아래에 넣도록 할 겁니다. 그리고 의회 사무처장 임명동의제와 사무처 직원 공모제를 할 겁니다.”

임명동의제·인사청문회 도입하겠다

-그게 뭐죠?

“의회 사무처장은 109명 사무처 직원의 장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자리죠. 그래서 의장이 결정권을 갖고 있긴 하지만, 결정하기 이전에 사무처장 후보는 본회의장에서 임명동의 절차를 거치려 합니다. 제가 스스로 동의안을 만들어 본회의에 제출하고, 의원 표결에 부칠 예정입니다. 과반을 얻지 못하면 부결되는 거죠. 사실 이건 다른 효과도 있습니다. 사무처장이면 2급인데, 3급에서 2급으로 승진하면 도의회 사무처장을 거쳐야 합니다. 따라서 현재 국·실장들 중에도 언젠가는 사무처장으로 올 수 있습니다. 임명동의 절차가 있으면 그걸 생각해서라도 의회와 집행부 사이에서 균형적인 사고를 갖고 업무에 임하게 되겠죠. 집행부 간부의 의회 경시 풍조도 예방하는 효과가 있을 겁니다.”

-사무처 직원 공모제는요?

“집행부 공무원 중에도 의회 근무 희망자 많습니다. 그런데 집행부가 유능한 공무원들을 자기들이 활용하고 싶으니 의회 발령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인터넷으로 공모를 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몇 배수가 공모를 했습니다. ‘내가 잘 모르니 사무처장께서 유능한 분 선별해라,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지십시오’라고 말해뒀습니다. 일주일만에 공약 하나 실천했어요.”(웃음)

-김두관 도지사 취임 후 경남도 출자출연기관장에 대해서도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있었잖아요. 이젠 김 지사가 사퇴했는데, 새 도지사에게도 그걸 요구할 건가요?

“당연히 요구할 겁니다. 저는 우선 새누리당 후보가 확정되면 출자출연기관장 인사청문회 제도를 공약으로 제시하라고 요구할 겁니다. 그게 도지사에게도 덕이 됩니다. 예를 들어 선거를 치르고 나면 전문성과 관계없이 한 자리 달라는 공신들이 많을 텐데, 그런 제도가 있으면 도지사가 ‘청문회 통과할 자신 있느냐’며 그런 사람들을 물리칠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습니다. 도지사가 기관장을 내정하면, 확정짓기 이전에 도의회에 출석시켜 위원회별로 청문회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도의회는 청문회 결과를 의견으로 제출하고, 도지사는 그걸 감안하여 임명할지 말지를 결정하면 됩니다. 그런 장치가 있어야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뽑을 수 있습니다.”

   
  김오영 경남도의회 의장./박일호 기자  

-정치 입문 21년 만에 의장까지 되셨는데, 이게 마지막 꿈은 아니죠?

“2년 뒤 다시 지방선거가 도래하는데, 기회가 된다면 지자체장으로 나가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창원시장이죠. 3개시가 통합했지만 아직 정서적 통합이 안 되고 있습니다. 통합의 철학은 저비용 고효율, 그리고 균형발전인데 이 세 가지가 실현되기 위해선 3개 시민의 정서적 통합이 가장 큰 과제입니다. 심지어 시의원간, 공무원간에도 정서적 통합이 안 되고 있어요. 그걸 해결해나가는 게 단체장의 몫이죠. 리더십에 따라 요원할 수도 있고 빨리 이뤄질 수도 있습니다. 그 역할을 제대로 해보고 싶은 거죠.”

그는 아직 ‘오프더레코드’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김두관 지사 사퇴 후 권한대행을 맡은 임채호 행정부지사에게 집무실을 도지사실로 옮기라고 권유할 생각이라는 말도 했다. 6개월이라도 제대로 하려면 아예 도지사실을 차고앉아야 일이 된다는 것이다.

인터뷰 내용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사무처장 임명동의 투표’와 ‘출자출연기관장 인사청문회’였다. 과연 6개월 후 새누리당 도지사가 되더라도 관철시킬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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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 김주완 기자
  • 편집국장을 거쳐 현재 이사/출판미디어국장을 맡고 있습니다. 월간 <피플파워> 간행과 각종 출판사업, 그리고 인터넷을 비롯한 뉴미디어 업무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