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맛집] 마산합포구 상남동 미진대복

혀에 착 감겼다. 얇은 생선 한 점이 혀로 녹아들기 시작했다. ‘뭔 맛이지?’ 맛을 느끼고 싶었지만 얇은 생선 한 점은 부끄러운 듯 금세 사라져버렸다. 다시 한 점을 들었다. 혀를 지나 이 사이로 부드럽게 씹히기 시작했다.

분명히 하얀 접시와 합체가 될 정도로 얇게 썰린 생선 한 점이었다. 그런데 쫄깃쫄깃하니 씹으면 씹을수록 살이 부풀어 올라 아랫니와 윗니 사이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통 뭔 맛인지 모르겠다.

고개를 갸우뚱하자 “폰즈 소스(유자 식초)에 곁들여 먹어봐요. 원래 복어회가 아무 맛이 안 나. 복어회 맛은 아는 사람만 알지”라고 한 남자가 조언을 한다.

“네”라고 대답은 했건만 사실 폰즈 소스에 찍어 먹어도 모르겠다. “허허(웃음). 복어회 맛은 복어회 맛이지. 한두 번 먹어봐서 아나. 계속 먹다 보면 맛을 알게 돼요.”

복어 신출내기인 기자에게 다그치듯 계속 먹어보라고 권하는 정승일 미진대복 사장. 그는 65살로 1968년에 조리사 자격증을 따고 1989년 창원시 마산합포구 상남동 230-15번지에 복집을 차렸다.

복어회/김구연 기자

지금이야 ‘스타 셰프’라 하며 아이돌 스타 못지않게 인기를 누리를 조리사가 많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정말 요리가 하고 싶어서 칼을 쥐는 것보다는 ‘가난해서’, ‘공부를 못해서’, 칼을 쥐어야 했다. 정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밥도 주고 잠도 재워준다니까 음식점에 들어갔죠. 물론 허드렛일도 하고 곁눈질로 요리도 배우고…. 지금이야 조리사하면 인정해주고 대우도 해주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죠.”

말끔하게 생긴 얼굴 덕분에 홀에서 서빙도 곧잘 했다. 손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면서 성격도 유들유들해지고 없던 붙임성까지 생겼다.

복어회/김구연 기자

“1960년대 마산서 제일 유명한 일식집이 이학초밥이었는데, 거기 사장 아들이 1971년 불종거리로 음식점을 옮겼어요. 거기서 일하다가 1979년 코아양과 뒤 미진초밥 사장이 됐죠. 그땐 참사람이 많았어요. 얼마 안 돼 상남동에 ‘미진대복’을 차렸죠.”

장사가 잘됐다. 종업원도 4명이나 됐다. 쉴 틈도 없이 복어를 손질하고 또 손질했다. 1970년대 조성됐던 마산자유무역지역 덕분에 일본인이 많이 왔고 특히 고위층 인사들이 즐겨 찾았다. 그들은 미진대복만의 맛과 친절, 가격을 잊지 못해 문턱이 닳도록 이 집을 들락날락했다.

“김용준 전 대법원장이 미진대복에 오면 다섯 번 놀란다고 했어요. 찾아오기 어려운 굽이진 골목길, 곧 꺼질 듯한 가로등과 덜컹거리는 하수구통, 저렴한 가격, 음식 맛, 친절 등이요.”

복어회 손질/김구연 기자

정말 맞았다. ‘이런 곳에 맛집이 있을까? 가르쳐줘도 모르겠네!’라고 느낄 정도로 굽이진 곳에 있었다. 취재하는 당일에도 길을 몰라 몇 번이고 헤맸고 끝내는 정 사장에게 전화를 해 무사히(?) 미진대복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솔직히 예전만큼 장사가 잘되진 않는다. 단골손님의 소문을 통해 찾아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유명한 분들이 많이 오고 갔다”는 정 사장 말에 손님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 들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정 사장은 손사래를 치며 “접대 손님이 많았는데…. 그런 건 말하면 안 돼요”라고 말을 아낀다. 손님과 약속이라 했다.

복어회 손질/김구연 기자

미진대복은 참복(자주복)만을 쓴다. 복어 맛은 참복이 가장 좋다고 하지만 가격이 비싸다. 그런데 웬걸. 가격표를 보니 복어회가 3만 5000원이다. “장사가 돼요?”라고 묻자 정 사장은 허허 웃어넘겼다.

“지금은 저와 마누라, 아들이 해요. 종업원이 없으니 인건비가 안 들잖아요. 아들도 몇 년 전 조리사 자격증을 땄고 마누라는 원체 손맛이 좋았죠. 예전에 요리사라 하면 못 배운 사람들이 하는 걸로 생각했는데 요즘은 아니잖아요. 몇십 년이 지나도 맛있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면 자부심을 느낍니다.”

복어회/김구연 기자

복어고시라고 불릴 만큼 복어요리 전문가를 찾기 어려운 요즘. 복어회 손질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살집이 가득 차 있는 참복 한 마리를 도마에 툭 하니 올리더니 순식간에 스르륵 껍질을 벗겨 낸다. 그러고는 날 선 칼이 미끄러지듯 복어침을 제거한다. 하얀 속살처럼 보드라워 보였다.

“이 기술은 일식집서 최소 6년은 일해야 할 수 있어요. 아무나 못해. 침을 제거하기는커녕 껍질이 찢어지고 말지.” 정 사장은 숙련된 기술을 뽐내며 순간 알몸이 된 참복을 얇게 아주 얇게 썰어 하얀 접시에 담아냈다. 참복과 접시는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아있었다.

복어회를 손질하는 정승일 사장/김구연 기자
복어회 살로 미나리와 복어 껍질을 싸서 폰즈에 찍어 천천히 음미했다. 분명히 처음 복어회를 먹었을 때는 투명한 맛이었다. 하지만, 쌉쌀한 맛이 맛봉오리를 자극하기 시작하자 쫄깃쫄깃함이 살아있는 참복회를 왜 으뜸으로 치는지 알게 됐다.

“이 맛이군요. 근데 말로 표현 못 하겠어요.”

허허 웃는 정 사장. 그는 죽을 때까지 미진대복의 주방을 책임질 것이라고 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수십 년간 이곳(창동, 상남동)을 맴돌았어요. 다른 분들은 장사가 잘되는 창원으로 옮기라고 말하지만 참복이 나는 양도 한정돼 있고 이 값으로는 감당이 안 돼요. 전 이곳이 좋습니다.”

미진대복은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하얀 접시는 도화지고, 정 사장의 칼은 붓이요, 그의 손길에서 태어난 참복은 하얀 접시를 순식간에 물들게 했다.

<메뉴 및 위치>

◇메뉴: △복어회 3만 5000원 △복튀김 1만 7000원 △복불고기 1만 7000원 △복매운탕 1만 7000원 △복 지리 1만 7000원 △복샤부샤부 1만 7000원.

◇위치: 창원시 마산합포구 상남동 230-15. 055-223-3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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