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초짜 애식가의 음식이야기 3

여름이 되면 마산 어시장 앞 장어골목 식당들은 길가에 천막과 평상을 펼치고 장어구이를 판다. 인산인해, 마산이 예전 같지 않다지만 적어도 이 풍경에선 마산은 활력 넘치는 도시이다.

하지만 함께 간 사람 또는 옆 자리에서 장어를 굽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늘 가슴이 조마조마해진다. 바싹 타들어가거나 말거나 ‘세월아 네월아’ 장어를 불판에 방치하는 ‘만행’이 자주 눈에 띄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가장 만만한 외식메뉴이자 사랑받는 술안주인 고기도 마찬가지다. 식당에서든 집에서든 남녀노소 누구나 손쉽게 불판에 고기를 얹어 ‘맛있게’(?) 구워서 먹는데, 제대로 굽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고기 따위 굽는 데 뭐 그리 복잡하냐고? 하지만 같은 고기라도 어떻게 굽느냐, 어떻게 먹느냐, 좀 더 세분화하면 고기 두께·크기를 어느 정도로 하느냐, 어떤 불(참숯, 프로판가스 등)을 쓰느냐, 불의 세기는 어떻게 하느냐, 얼마 동안 굽느냐에 따라 고기는 천상의 맛에서 지옥의 맛 사이를 왔다갔다 할 수 있다. 이는 바다장어 등 해산물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두르거나 방치하거나

   
  소고기는 사진처럼 덩어리가 크고 두툼해야 부드럽고 촉촉한 맛을 즐기기에 용이하다.  

먼저 고기부터 이야기를 해보자. 가장 흔히 보게 되는 풍경은 앞서 장어를 예로 들어 말한 무한정 고기를 불판에 올려놓거나, 불판이 채 달궈지기도 전에 고기를 올리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된다. 고기는 수분이 완전 증발돼 말라 비틀어지고, 딱딱하고 질긴 돌덩이 같은 고기가 되고 만다.

불판에 서둘러 올리는 것도 피해야 한다. 이러면 고기 겉면의 바삭한 질감(클러스트)을 즐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굽는 도중 육즙이 다 흘러나와 고소함과 촉촉함이 크게 저하된다. 1인당 2~3만 원이 훌쩍 넘는 최고급 한우이면 뭐하나. ‘순간의 방심’이 수만 원짜리를 수백 원짜리로 만들어버리는데.

고깃집들은 또 부위를 막론하고 고기를 너무 얇고 작게 썰어 내어준다. 아마도 손님들 한 입에 먹기 좋으라고? 글쎄, 필자가 볼 때는 중간중간 고기를 잘라주러 오는 ‘귀찮음’을 피하려는 꼼수이다. 이는 명백히 주인장의 ‘양식’ 문제이다.

이렇게 얇고 작게 썰린 고기는 샤브샤브 먹듯 센 불에 살짝 구우면 몰라도, 조금만 지체하면 퍽퍽하게 마르기 십상이다. 어느 정도 두툼한 두께·크기이어야 깊은 육향과 부드러운 질감, 촉촉한 육즙이 모두 살아 있는 고기를 먹기에 용이하다.

굽기 전 미리 소금간이 현명

바다장어 역시 마찬가지다. 태우지 않고 바삭한 질감과 부드러운 속살을 함께 즐기려면 흔히 하듯 너무 작게 썰어 구우면 안 된다. 되도록 큰 살덩어리를 불판에 굽다가, 중간에 가위질을 해주는 게 현명하다.

기름이 많이 오른 장어는 복사열이 강한 스토브 등으로 초벌구이를 한 다음 불판에 구워 먹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 주로 민물장어를 이런 방식으로 굽는데, 이는 과도한 기름이 장어 그 자체의 맛을 죽이기 때문이다. 초벌구이를 한 민물장어와 잡자마자 바로 숯불 등에 구운 민물장어, 직접 먹어보면 확연한 맛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물론 같은 질의 장어라는 전제 아래.

다음은 고기나 장어 공히 해당되는 이야기인데, 굽기 전 미리 소금 간을 살짝 해서 불판에 올리는 게 좋다. 보통 소금·참기름이나 초고추장(바다장어)에 많이 찍어 먹는데, 둘 모두 재료의 본맛을 즐기는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다.

   
  마산 어시장 앞 장어골목 한 식당에서. 바로 먹을 양만큼만 조금씩 조금씩 불판에 올리는 게 좋다.  

고기를 구울 때 반드시 유의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공정’은 대충 익었다고 가위를 들이대지 않는 것이다. 센 불에 익힌 고기는 육즙이 가운데 몰려 있어, 갑자기 자르면 육즙이 새어나오고 맛의 전체적 균형이 깨진다. 약한 불 위나 접시에 최소 5분 이상 그대로 두어야 육즙이 고루 퍼지고 오랫동안 촉촉함이 유지된다. 접시 위에 덩어리째 서빙되는 서양식 스테이크를 떠올리면 이해가 한결 빠를 것이다.

고기만 잘 구워도 대접이 달라진다

그러나 좀 허탈하겠지만, 위의 모든 과정은 고기 맛을 결정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다. 모든 걸 완벽히 한다 해도 도저히 맛이 나려야 날 수 없는 경우가 있으니 그건 바로 고기 질 자체가 형편없을 때다. 오랜 기간 냉동한 고기, 숙성이 덜 된 고기, 부적합한 사료를 먹인 고기, 나이 든 소의 고기, 도축·보관 환경이 부실한 고기는 아무리 금강불괴 내공의 조리사가 굽는다 해도 맛이 있을 수 없다.

보통 우리는 ‘갓 잡은’ ‘신선한’ 식재료를 최고로 치지만 소의 경우 그 반대에 가깝다. 도축한 직후의 소는 근육이 잔뜩 움츠러드는 이른바 ‘사후경직’ 현상 때문에 매우 질길 수밖에 없다. 맛이 제대로 나기 위해선 ‘숙성’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짧게는 2~3일에서 길게는 80일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서늘한 온도와 적당한 습도에서 장기간 숙성시킨 소고기는, 고기가 더 치밀해지고 육질이 연해지면서 풍부한 맛을 낸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고기가 훨씬 더 맛이 좋으며, 심지어 숙성 기간은 ‘갈 데까지 가는 게 좋다’고까지 말한다.

장어 역시 잡은 뒤 바로 구워 먹는 것보다는 서너 시간 정도 숙성시켜 먹는 게 더 맛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는 민물장어를 예로 들어, “장어는 잡자마자 구우면 좋지 않다. 조직감이 딱딱해지고 기름 맛은 겉돌게 된다. 숙성시켜 맛이 차분해지길 기다려야 한다. 숙성되면 살과 껍질이 분리되지도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상의 내용은 주로 소고기와 장어에 국한해 정리한 것이지만, 큰 틀에서 돼지나 각종 생선 등 대부분에 적용되는 이야기라고 봐도 된다. 고기(생선) 하나만 잘 고르고 잘 구어도 주변 사람의 대접이, 인간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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