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석전동 헌책방 영록서점 박희찬 대표

41년째 헌책방을 운영하는 영록서점(창원시 마산회원구 석전동) 대표 박희찬(58) 씨를 만났다. 역전시장 상가 2층에 제대로 된 간판도 없이 서점이 있다.
“잠깐만요. 이거 하나만 더 올리고 얘기합시다.”
박 씨는 보유한 책을 인터넷 서점(www.younglock.com)에 등록하고 있었다.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서점 내부를 훑었다. 넓은 공간이 갑갑하게 느껴질 만큼 책과 책장은 성을 쌓았고 좁다란 미로를 만들었다.
“책이 어마어마하네요.”
“책방인데 책이 많아야죠. 허허.”
등록 작업을 마친 박 씨가 자리로 안내했다. 책더미에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41년 한 길 120만 권 헌책
19만 8500권 데이터베이스


헌책방 영록서점 내부 모습/강해중 기자
박 씨가 헌책을 팔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를 중퇴한 16살 때다. 길을 걷다가 책을 깔아놓고 파는 좌판을 보고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 길로 고물수집상에서 헌책을 사다가 손수레에 싣고 길에서 팔았다.

2년이 지난 후 부산 동궁극장 근처에 반 평짜리 공간을 얻어 가게를 열었다. ‘바보서점’. 당시 극장에 내걸린 ‘살살이 서영춘과 바보 배삼룡’의 부산 공연 간판을 보고 이름을 땄다. 이름 덕인지 서점은 꽤 잘 됐고 유명해졌다. 입대를 하고 훈련소에서 조교가 “바보서점 아저씨가 여기에 웬일입니까”라며 알은체를 하기도 했단다.

제대를 한 후 부산 서면에 ‘비실비실서점’이란 간판을 걸고 두 번째 가게를 열었고 2·3년이 흐른 뒤 공간을 넓혀 ‘유림서점’을 냈다. 서점이 잘나가는 동안 결혼을 했지만 1년 만에 이혼을 했다.

박 씨는 상처를 안고 아버지 고향 마산으로 왔다. 십수 년을 해온 일이 헌책방이었기에 1987년 2월에 팔룡교육단지에서 ‘사고 팔고 주문 받는 서점’을 차렸다.

몇 년 지나 성안백화점(현 신세계 마산점) 앞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영록서점’으로 간판을 바꿨고 그 이름을 지금 자리로 옮겨와서도 지키고 있다.

“부산에 있을 때 식당에서 만난 스님이 그림자 영(影) 푸를 록(綠)자를 써서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책이 나무로 만들어지잖아요. 나무가 크게 자라 오래 되면 고목이 되고 그 그림자 밑에서 쉬어가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책방이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헌책방 영록서점 대표 박희찬 씨/강해중 기자

그래서인지 박 씨는 지난 달 23일 인도음악을 하는 사람의 요청으로 ‘치유음악회’를 열었다. 사람들은 책더미에 앉거나 책장에 기대 음악을 들으며 바쁜 삶 속에서 쉼표를 찍는 시간을 누렸다.

“사람들 반응이 좋아서 올 가을에도 ‘영록치유음악회’를 열 생각입니다. 가수 고 배호 선생의 추모 음악회도 열어보고 싶고요.”

영록서점이 보유하고 있는 책은 총 120만 권. 박 씨는 책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을 매일 하고 있다. 신규서적 60~70권, 재고서적 100~150권씩 영록서점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는데 이 일이 오래 걸린단다.

헌책방 영록서점 대표 박희찬 씨/강해중 기자

“표지 스캔하고 제목만 달아서 올리면 수백 권씩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 책이 몇 년에 발간됐는지, 초판인지 재판인지 몇 쇄인지, 또 책 설명문까지 달아서 올리기 때문에 작업이 더뎌요.”

헌책방 영록서점 대표 박희찬 씨/강해중 기자
그래서일까. 10여 년 전 시작한 작업이 장서의 6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찾아간 날에는 19만 8500권째 책을 사이트에 올리고 있었다.

“10만 권째 작업 마쳤을 땐 온 몸에 전율이 일었어요. 5년 만에 또 20만 권에 이를 듯합니다. 그땐 수고했다는 의미로 소주 한 잔 할 생각입니다.”

박 씨의 목표는 50만 권을 채우는 것이다.

120만 권이나 되는 책들은 얼핏 보면 질서 없이 어지럽게 꽂혀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박 씨 나름대로의 분류법에 따라 정리되어 있다. 그래서 손님이 필요한 책 70~80%는 몇 분 안에 금방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박 씨는 인생을 마무리할 때가 되면 이 많은 책들을 어떻게 처리할 생각일까.

“죽을 때 다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라 20년쯤 지나면 그만할 생각입니다. 그 때 서점을 운영해줄 수 있을 만한 시민사회단체에 기증할 겁니다.”

“음식, 패션은 복고 유행이 되는데 책은 왜 안되는지… 안타깝다”는 박 씨의 마지막 한 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책 100권을 그냥 들면 무겁지만 한 번 읽으면 가벼워지고, 세 번 읽으면 들고 뛰어다닐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합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