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여름, 그리고그림

구름 한 점 없는 뙤약볕이 너무 뜨겁다. 바다는 더위에 지쳤는지 잠잠하다. 산에 달이 비치면 대머리처럼 보일 정도로 나무 한 그루도 없다. 저 멀리 수평선을 배경으로 나뭇가지가 솟은 책상이 보이고 거기에 회중시계가 걸려 있다. 회중시계도 더위에 지쳤는지 카망베르 치즈처럼 녹아내렸다. 이 작품은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1931년 작)으로 여름만 되면 꼭 생각나는 그림이다.

이밖에 '여름' 하면 떠오르는 그림으론 어떤 것이 있을까. '여름'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 작품을 찾아, 그 의미와 배경을 가상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해봤다. 작가의 답변 내용은 모두 사실에 기반한 것임을 알려둔다.

1.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여름꽃 중 가장 오래, 가장 화려하게 피는 꽃이 수련이다. 어떻게 수련을 그리게 됐나.

"경제적인 이유와 그림 때문에 여러 지역을 전전하다가 마침내 프랑스 지베르니(Giverny)에 정착을 하게 됐다. 그곳에서 정원을 가꾸게 됐는데 물과 반사광이 어우러진 연못 풍경이 나를 사로잡았다. 1899년쯤부터 수련을 그리기 시작했다."

-정원 가꾸기와 그림밖에 그릴 줄 몰랐다고 하던데.

"연못에 핀 수련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자 물로 수련을 매일 씻었다. 연못을 크게 늘릴수록 작품 크기도 커졌다. 물을 워낙 좋아해 배 위에서 죽고 싶을 정도였는데 실제 배에 화실을 마련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림을 그렸다."

-녹내장에 걸려 사물을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수련을 그렸다.

"그래서 내가 그린 수련은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흐릿하다. 윤곽선 없이 수많은 색채가 뒤섞이도록 색을 칠했고 원근법도 무시했다. 추상에 좀 더 가깝다. 눈이 나빠지고 있음을 알고 난 후인 1916년부터 1926년까지 10년에 걸쳐 '수련'을 완성하기도 했다."

클로드 모네 작 '수련'.

2.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1889년 여름, 병원에서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릴 때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고 들었다.

"너무나도 좋아하는 친구인 고갱과 다투고 내 귀를 자르고 나서, 생레미의 생폴 드 모솔 요양원에 있을 때 그린 것이다."

-'별이 빛나는 밤'은 당신 작품 중 복제품이 가장 많이 떠다닐 정도로 대중적이다.

"어디에서 본 듯한 작품이 많이 돌아다니긴 하더라.(웃음) 뉴욕 출신의 한 밴드가 나의 작품을 보고 '빈센트(Vincent)'란 곡을 만들기도 했고 빌보드차트에도 올랐으니 대중적이긴 한가 보다. 원본은 뉴욕 현대미술관에 있으니, 뉴욕에 갈 일이 있으면 꼭 한번 들러라."

-작품 설명 좀 해 달라.

"동생 테오에게도 말했지만 그때 당시 나는 오랫동안 정신병원에 있었기 때문에 주제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었다. 해가 뜨기 한참 전, 우연히 창문 밖 시골 정경을 바라보았는데 거기에는 커다란 샛별만 있었다.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빈센트 반 고흐 작 '별이 빛나는 밤'.

3. 올라퍼 엘리아슨의 '날씨 프로젝트'

-지난 2003년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200여 개의 전구로 이뤄진 초대형 인공태양을 띄워 관람객이 그곳에서 여유롭게 일광욕을 즐겼다.

"덴마크에서 태어나 아이슬란드에서 자랐다. 북유럽의 신비로운 자연풍광에서 영감을 얻어 자연과 물리적, 정서적 교감을 시도한 작업을 펼쳐왔다. 과학과 예술을 융합한 작업에 관심이 많다."

올라퍼 엘리아슨 작 '날씨 프로젝트'

-과학과 예술, 정치와 사회를 넘나드는 작업을 많이 한다. 왜 예술가가 됐나.

"예술가여서 역사가, 정치가, 미술관 관계자들을 모두 만나 얘기할 수 있다. 정치가보다 예술가가 낫지 않나? 미술가가 안됐으면 지금쯤 물리학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후에도 뉴욕 이스트리버에 33.5m 높이의 인공폭포를 만들었다. 지금은 어떤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가.

"'작은 태양(little sun)' 프로젝트다.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시아 등 지역에 작은 크기의 꽃 모양 태양열 전지를 보급하는 사업이다. "

4. 혜원 신윤복의 '단오풍정'

-에로티시즘하면 혜원 신윤복이 떠오른다.

"알다시피 난 18세기 조선 미술계의 이단아였다. 아버지 신한평은 꽤 유명한 화원이었고 나도 화원 생활을 좀 했다. 화원 시절 남녀의 색정적인 장면들을 담은 그림을 많이 그려 쫓겨났지만….(웃음) 조선 화단의 제도와 윤리에 얽매이지 않고 연애 감정을 자연스럽게 그렸다."

-단오풍정은 어떤 그림인가.

"단오의 정취를 담았다. 단오는 여름을 맞이하기 직전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시기다. 속살의 여인을 직접 보여주기보다는 훔쳐보는 인물을 통해 상황을 재구성했다."

-감상의 키포인트는?

"여인의 나체가 그림에 등장한 최초의 사례다. 겉으로는 점잔을 빼면서도 본심은 욕정에 불타는 남성들을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혜원 신윤복 작 '단오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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