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쓰레기도 깨끗해지고 싶은 거 아세요?"

늘 밝고 활발한 성격은 타고난 것이었다. 또래들을 이끄는 수완도 있었다. 운동도 곧잘 했다. 날쌘 아이는 학교 대표 배구 선수였다. 선생님은 그런 아이를 어여삐 보고 학급 일을 맡기곤 했다. 아이는 늘 자신감이 넘쳤고 학교 다니는 게 즐거웠다. 하지만, 그는 2남 7녀 중 여섯째딸이었다. 부모는 딸들을 공부시킬 생각도 없었고 형편도 넉넉하지 않았다. 여섯째는 기어이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며 꿈을 키웠지만 거기까지였다.

“저는 정말 공부가 하고 싶었어요. 대학도 계속 다니고 싶었지요. 그런데 저에게까지 기회가 오지 않더라고요.”

창원 상남동 길벗 유치원 김문자 원장/박일호 기자

창원시 상남동 길벗 유치원 김문자 원장(54)이 아쉬웠던 어린 시절을 잠시 돌이켰다. 진주가 고향인 그가 부산에서 학원을 차려 원장이 됐을 때 나이가 28살. 33살이던 1991년부터 김해에서 유치원을 시작해 창원으로 온 게 4년 전이니 꽤 오래 한 길을 걸은 셈이다. 그것도 제법 이른 나이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도 포기했는데….

“직장 다니면서 식구들 뒷바라지를 했지요. 그런데 정말 일이 적성에 맞지 않더라고요. 어떻게든 공부를 더 했으면 좋겠는데,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 그런 생각을 했지요.”

군대에서 찾은 길

창원 상남동 길벗 유치원 김문자 원장/박일호 기자
직장 다니면서 가족 뒷바라지만 하기에는 꿈이 많았다. 어떻게든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23살이 될 때까지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생각은 많았으나 일상은 늘 반복됐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여군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오빠가 없어서 군대가 어떤 곳인지 잘 몰랐어요. 그냥 군인은 나라 밖 아주 먼 곳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요. 제가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애국심은 있었어요. 나라를 위해 무슨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그는 군에 지원한다. 무엇보다 일상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군대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군에서 무엇을 하는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군에 들어가니까 제복도 주고, 침대도 주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지요. 군 생활이 저에게 새로운 희망을 줬습니다.”

김문자 원장은 23살을 정신적으로 다시 태어난 해로 기억한다. 주변 환경이 바뀌었고 만나는 사람이 달라졌다. 하는 일마다 새로웠고 자기 존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잊을 뻔했지만 잊을 수 없었던 꿈, 배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러던 중 종교 시간에 들었던 강연이 그에게 새로운 영감을 준다.

“군에 들어가면 종교 선택을 하는데 불교를 선택했습니다. 다른 종교보다 익숙하기도 했고 막연하게 좋은 산을 많이 다닐 수 있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창원 상남동 길벗 유치원 김문자 원장/박일호 기자

김문자 원장이 감동을 받은 강연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주제로 한 설법이었다.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 원효대사 일화로 더 유명한 그 내용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마음을 바꾸고 일상을 바꾸고 삶을 바꿔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하루에 잠은 3~4시간만 자며 책을 늘 끼고 살았다. 좋은 글귀에는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며 스크랩도 했다. 그리고 김문자 원장은 그토록 꿈꿨던 대학 진학을 하게 된다. 대구 계명대 유아교육과에 입학한 그는 업무가 끝나는 밤이면 학교로 향했다.

“당시 군에 있으면서 학교생활을 병행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제가 처음이었을 걸요. 옆에서 보기에는 좀 밉기도 했을 거예요. 그래서 늘 웃는 얼굴로 일을 찾아서 했지요. 함께 일하던 군인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그는 입대하고 3년 동안 대학 세 곳을 다녔다고 말하곤 한다. 그 대학 세 곳은 계명대, 군대, 불교대를 일컫는다. 제대하는 날도 잊고 하루 더 출근했을 정도로 열심히, 즐겁게 생활했다. 그런 그에게 군대는 군무원 자리를 하나 마련해준다.

다시 보게 된 쓰레기

창원 상남동 길벗 유치원 김문자 원장/박일호 기자
광주에서 2년 동안 군무원으로 근무한 김문자 원장은 부산으로 온다. 그리고 학업을 더 이어나간다. 그는 불교 공부를 통해 세 가지 깨우침을 얻었다고 했다. 공부, 봉사, 즐거움이다.

“평생 공부하는 것은 당연하고요. 일은 늘 즐겁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평생 봉사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됐죠.”

봉사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늘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일, 습관처럼 할 수 있는 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말고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고민하다 보니 눈이 간 곳은 환경이었다.

“땅이 우리에게 주는 게 얼마나 많습니까. 땅이 품은 힘은 또 얼마나 대단하고요. 그런데 그런 땅에 쓰레기를 매립하지요. 그것도 썩지 않는 쓰레기를. 이거 그대로 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쓰레기 아주머니’, ‘재활용 아주머니’, ‘분리수거 왕’. 김문자 원장 이름 앞에 붙는 별명은 이때 고민에서 비롯한다. 분리수거 개념이 뚜렷하지 않았던 30년 전부터 김문자 원장은 쓰레기 나누기를 시작한다.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이었다. 꼭 필요한 일이고 남이 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마음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생활 속 봉사’ 개념에 딱 들어맞는 일이었다.

“요즘 분리수거를 한다고 해도 자세히 보면 제대로 하는 사람은 드물어요. 소주병 그대로 버리죠? 뚜껑 따로 병 따로 버려야 해요. 요구르트 병 그대로 버리잖아요. 껍질은 떼서 쓰레기로 버리고 병은 재활용으로 분리해야지요.”

창원 상남동 길벗 유치원 김문자 원장/박일호 기자
쓰레기 분리 이야기를 시작하자 김문자 원장 말이 더욱 빨라졌다. 일상에서 지나치는 분리 아닌 분리수거에 대한 지적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쓰레기를 분리하는 김문자 원장 손은 사방으로 뻗쳤다. 이웃들이 버리는 쓰레기, 어디 놀러 갔을 때 나오는 쓰레기, 식당에 있는 쓰레기까지 손을 댔다. 쓰레기를 잘못 나누는 사람들에게는 조곤조곤 설명도 곁들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환경운동인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옆에서 보기에는 극성스러웠고 유별났다. 아무리 친절하게 설명한다 해도 퉁명스럽게 받아치는 사람도 많았다. 별 간섭을 다한다는 반응이었다. 그럴 때마다 김문자 원장은 웃었다. ‘귀찮으실 텐데 제가 별 간섭을 다 하지요’라며 오히려 사과도 했다. 화를 냈던 사람들은 무안해했다.

“우리 남편도 많이 싫어했어요. 밖에 쓰레기까지 분리한다며 들고 오고 하니 누가 좋아하겠어요. 그래도 지금은 그러려니 해요.”

창원 상남동 길벗 유치원 김문자 원장/박일호 기자

어디 놀러 갈 때나 유치원 아이들과 소풍을 갈 때도 분리수거 열정은 이어진다. 김문자 원장 방식대로 쓰레기를 나누면 100리터 봉투에 들어 있던 쓰레기도 10리터면 처리된다. 90리터만큼 쓰레기가 자원으로 활용되고 90리터만큼 지구도 깨끗해지는 셈이다.

쓰레기도 길이 있고, 깨끗하고 싶다

“요즘 이 스마트폰이 참 좋아요.”

김문자 원장이 활짝 웃으며 스마트폰을 꺼낸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은 모두 쓰레기, 아니 쓰레기가
될 뻔한 자원이었다. 야외, 식당, 집, 골목 등 제대로 분리되지 않은 쓰레기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는 과정이 휴대전화에 담겼다. 김문자 원장은 가끔 분리수거 과정을 동영상에 담기도 한다. 스마트폰은 확실하게 환경운동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

“분리수거 하면서 제일 무서운 말이 뭔지 아세요? 알아서 하겠다, 나중에 하겠다 같은 말이에요. 결국 하지 않겠다는 말이거든요. 지금 바로 실천해야지요.”

창원 상남동 길벗 유치원 김문자 원장/박일호 기자

김문자 원장은 쓰레기를 버린다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쓰레기에게 길을 찾아준다는 표현을 더 마음에 들어 했다. 무조건 쓰레기봉투에 담으면 버리는 게 맞다. 하지만 비닐, 플라스틱, 페트병, 깡통이 제대로 분리되면 그 쓰레기들, 아니 재활용 자원들은 제 길을 찾아가는 게 맞다. 듣고 보니 버린다는 표현보다 길을 찾아준다는 표현이 훨씬 그럴 듯했다. 여기에 김문자 원장은 한마디 덧붙인다.

“쓰레기도 깨끗하고 싶어요. 생각해 보세요. 재활용할 수 있는 쓰레기에 얼마나 못쓸 쓰레기를 섞어서 많이 버립니까. 깨끗하면 나누기도 쉬운데, 빈병에 다른 쓰레기를 버리고 하면 분리하고 싶겠어요? 게다가 더러워진 쓰레기는 재활용해도 품질이 좋지 않다더라고요.”

쓰레기 길 찾아주기에 깨끗한 쓰레기…. 낯선 개념이 김문자 원장이 정리하니 명쾌해진다. 그는 얼마 전부터 혼자 하는 환경운동을 조직적으로 키우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봉사라는 게 남들이 알게 나서서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분리수거는 많은 사람이 참여하면 참여할수록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문자 원장은 일정을 기록하는 다이어리와 함께 ‘환경 다이어리’를 하나 더 만들어 들고 다닌다. 거기에는 쓰레기 분리수거와 관련한 일정, 기록만 따로 정리해두고 있다.

“제 계획에 호응하는 사람도 많아요. 뭐 당연한 일 하자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무슨 단체를 만들고 이름을 내걸고 하는 쪽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실천가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형식만 좇는 사람과는 할 일이 아니지요.”

주변 사람들에게 가끔 타박받기도 하지만 김문자 원장은 늘 즐겁게 쓰레기 길을 찾아준다. 그리고 선생님보다 더 쓰레기를 잘 분리하는 아이들 애교를 볼 때마다 즐겁다. 이 아이들이 더 깨끗한 환경에서 사는 데 작은 보탬이 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기에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건강관리요? 자주 놀러 다니고 항상 일하고 늘 봉사하고 공부하고 즐겁게 사니까 건강하던데요. 제가 파이팅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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