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공감] 폭염 속 도심 5일장

도심 시장 골목을 끼고 5일장이 열렸다. 가게 앞에 가게가 열리는 셈이니 시장 상인 마음이 편할 리 없다. 하지만, 5일장이 또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도 사실이다. 절반은 경쟁하고 절반은 공생하며 시장과 5일장은 섞인다.

더운 기운이 위에서 내리찍고 아래서 받아친다. 상인들이 흘리는 땀과 마시다 흘린 물은 바닥에서 곧 말랐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조금도 바닥 열기를 날리지 못한다. 물만 들이켜는 한 상인은 표정을 잔뜩 찡그린다. 손님이 없어서인지 더워서인지는 알 수 없다. 두 가지 모두일 수도 있다.

5일장 판매대는 골목 가운데서 나란히 줄을 맞춰 펼쳐졌다. 알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규칙, 아니면 서열이 있는 듯하다. 길 따라 늘어선 판매대는 시장을 거니는 사람들 동선과 겹친다. 아무래도 유리한 자리일 수밖에 없다.

   

판매대 위에 파라솔을 펴고 물건을 가지런히 놓으면 가게 하나가 차려진다. 빨리 펴고 거둬들일 수 있어야 하며, 그렇다 해도 부실해서는 안 된다. 5일 만에 같은 장소에서 판을 벌인 것치고는 상인들은 차분하다. 애써 손님을 불러들이지 않으며 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더운 날 섣부른 호객은 서로 부담이다.

골목 가운데 자리를 마련하지 못한 상인도 있다. 이들은 골목 양쪽으로 늘어선 가게 사이에 자리를 폈다. 굳이 골목 가운데에 판을 펼 정도로 물건이 많지도 않다. 붉은색 큰 고무 대야 한두 개에 갖가지 채소를 담아놓은 정도다. 길이 조금 좁아졌지만 서로 거추장스러운 정도는 아니다.

시장 골목에 끼어들지 못한 5일장 상인은 시장 입구 도로 쪽에 자리를 폈다. 시장 안쪽보다 볕이 많이 드는 만큼 식품보다 공산품이 자리를 차지하는 게 무난하다. 입구 한쪽에는 신발 수선 가게가 있다. 물건을 팔러 온 이들 중에는 신발을 고치는 소비자도 있다. 최소한 신발 수선 가게 사장은 5일장이 전혀 거북하지 않다.

시장 입구 맞은편에는 개천이 흐른다. 개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한쪽에는 짐차가 늘어섰다. 과일·채소 등이 대부분이지만 한쪽에 옷을 파는 판매대도 있다. 5일장 상인들은 능숙하게 차 앞에 자리를 펴 멀리서 가져온 과일을 진열한다. 토마토, 사과, 참외, 키위, 포도가 끼리끼리 자리를 꿰찼다. 상인들은 차 앞유리에 두꺼운 골판지 한 장 덮어두는 것을 잊지 않는다. 뙤약볕 아래 몇 시간 차를 두려면 그 정도 처신은 해야 한다.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은 과일을 사지 않더라도 애써 눈길까지 피하지 않는다. 그 눈길을 그냥 보내지 않는 게 장사하는 이들에게는 요령이다. 다리 역시 그렇게 목이 나쁜 곳은 아니었다.

"어무이 맛이나 한 번 보고 가이소!"

"맛있나? 한 번 무 볼까. 얼마고?"

토마토 한 조각을 씹으면서 눈대중으로 판매대를 훑던 아주머니는 바구니 하나를 가리킨다. 잽싸게 비닐봉지에 한 바구니를 담고 옆 바구니에서 다시 두세 개를 덜어 담는 것 역시 요령이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밝은 표정으로 헤어진다.

다시 시장 골목에 들어서니 무릎 아래서 뭔가 지나간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밝은 색 조끼를 입고 앉은 채 지나간다. 플라스틱 바구니를 얹은 작은 앰프에는 바퀴가 달렸다. 빵모자에 긴소매 옷, 그 위에 조끼 그리고 하반신과 왼손에 고무 튜브를 씌운 그는 오른손으로 앰프를 밀고 왼손으로 땅을 밀면서 조금씩 앞으로 간다. 더위도 무섭지만 바닥에서 끓어오르는 열은 맨살로 견딜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를 지나치던 아주머니 한 분이 뭔가 갑자기 생각난 듯 걸음을 멈춘다. 짧은 한숨을 뱉은 그는 지갑에서 주섬주섬 1000원짜리 한 장을 꺼낸다. 아주머니는 반대 방향으로 앰프를 밀고 가는 그를 금방 따라잡는다. 플라스틱 바구니에 돈을 쑤셔넣고 종종걸음으로 돌아온다. 아주머니가 잠시 길 가운데 세워 둔 수레는 주인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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