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강아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집 안에서 키우는 건 더더욱 안 될 말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밍키라는 녀석을 데려다 키우면서, 틈만 나면 책임 전가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그 놈의 정이 뭔지 한 번 붙인 정을 떼기가 쉽지 않다. 해서, 가끔씩 멍청이라고 구박하는 재미로 죽을 때까지 돌봐주기로 작정한 터였다.

그날도 후텁지근한 집안 공기에 혀를 한 치나 내밀고 헥헥거리는 녀석에게 바람이나 쐬어줄 양으로 해반천으로 야간 산책을 나갔다. 사람이 많은 산책로에선 목줄을 해야 되지만 안쓰러운 마음에 살짝 목줄을 풀어주었더니 코를 땅에 박고 킁킁거리며 내 뒤를 졸졸 잘도 따라온다. 그렇게 얼마쯤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줌마, 거기 서 봐요. 거기 서 보라니까요"라는 성마른 목소리가 들렸다. 설마 나를 부르는 소리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계속 걸으려는데, 이번엔 쫓아와서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밍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 강아지 우리 초롱이 같은데 내가 아까 저기서 '초롱아' 하고 부르니까 분명히 돌아봤거든요. 정말 아줌마 강아지 맞아요?" 묻는다.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목소리가 과장되게 우렁찬 아주머니의 이야기에, 지나가던 사람도 흘깃 흘깃 쳐다보며 주변에 하나 둘 모여들었다. 내가 뭐라 대답할 틈도 없이, 아주머니는 밍키를 보며 "초롱아, 어디 갔었어? 엄마가 며칠 동안 찾았잖아"라며 졸지에 나를 개도둑 취급을 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 밍키가 아주머니 앞에서 꼬리라도 흔들었으면 영락없는 개도둑이 될 판이었지만, 그래도 이 녀석이 2년 가까이 먹여준 주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까, 아주머니를 경계하며 내 뒤로 숨는 제스처를 보였기에 민망한 변명까지는 필요가 없었다.

약간 화가 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멀찍이 지켜보는 구경꾼들에게 '내가 진짜 주인이에요, 저 개도둑 아니에요'라고 큰소리로 변명이라도 해야 하나 생각하는 사이에 '초롱이 실종사건'을 듣게 되었다. 처음엔 불쾌한 마음에 얼른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깁스에 목발까지 짚고 서서 초롱이 걱정에 1주일째 해반천을 헤매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오히려 위로를 하는 형편이 되었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에도 운동화 끈을 물었다 놓았다 장난치는 밍키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며 초롱이와 꼭 닮았다는 말을 반복하는 아주머니를 위로하면서 초롱이를 떠올려 보았다. 아주머니의 반려견으로 사랑을 주고받았을 녀석을 상상하며, 밍키가 우리 가족에게 보여준 사랑에 대한 보답이 너무 야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똥 오줌도 못 가리고 연필이란 연필은 죄다 물어뜯는 천덕꾸러기이긴 하지만, 우리 집에서 나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인정하는 유일한 녀석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야단맞을 때면 꼼짝 않고 같이 쭈그리고 앉아 아이들을 지켜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의리 있는 녀석이기도 하다. 이제는 애물단지 애완견이 아니라 초롱이급의 반려견으로 그 자리를 인정해줘야 할 때라고 느꼈다. 밍키가 우리의 소유물이 아니라 또 다른 이름의 가족이라는 깨달음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면서, 어서 빨리 초롱이가 아주머니 곁에 돌아오길 간절하게 바라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정주(김해분성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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