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 있습니다] 지금 밀양은 폭염에 집에 머무는 것도 사치

바드리마을, 오동나무가 많아서 '오동나무 꽃밭'이라는 뜻을 지녔다는 동화전마을…. 이름만 들어도 산자락 아래 소담스레 들어앉은 마을 정경이 떠오른다. 용회·아불·여수·고답마을, 그리고 부북면 위양 마을! 주민들은 마을 이름 대신 송전탑 100번부지, 127번부지… 몇 번 송전탑부지로 부른다.

전력대란이 우려되는 2012년 여름, 밀양 주민들은 논밭을 버려두고 지붕 아래 그늘도 마다한 채 철탑부지에서 하루를 보낸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찬 밥 한 통 들고 집을 나선다. 나무가 베어져 휑한 철탑부지, 헬기로 굴착기와 공사 자재를 실어와 쌓아둔 송전탑부지 길목에서 한전의 젊은 용역업체 인부들과 맞짱을 뜬다. 길이 9만535km, 철탑 162기가 세워지는 '765kV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 사업', 국책사업을 막고 있는 밀양시 단장·상동·산외·부북면 주민들의 일상이다.

2011년 11월부터 공사현장에서 농성 중인 노인들. /김은경

◇위양리 자연부락별 주민설명회, 한전은 오직 일방통행이다 = 7월 18일. 부북면 위양리 집집마다 한전에서 보낸 공문이 꽂혔다. '자연부락별 주민설명회 협조 요청'이다. 22~25일 4개 자연부락별로 오후 1시 설명회를 하겠으니 원만히 될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한다고 적혀 있다.

경찰 40여 명이 우선 설명회가 열리는 마을회관을 에워싸고 한전 직원 5명 정도가 도착했다. 한전은 설명회를 열면서도 주민들과 사전에 논의한 바가 없다. 그저 일방적으로 날짜를 정하고, 일방적으로 설명할 테니 듣고 가라는 식이다. 주민 의견을 경청한다고는 하지만 주민 의견이 필요 없는 곳이 또한 한전이다. 그들에게는 무소불위의 '전원개발촉진법'이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모든 설명회는 무산되었다. 주민들과 대화했다는 한전의 기록만 한 줄 더해질 뿐인 이따위 설명회를 용납할 만큼 순진한(?) 주민은 이제 없다.

◇한전이 요구하면 내놓아야 하는 '내 땅' = 전원개발촉진법에는 사유지라도 전원개발을 위해 필요하면 토지를 수용할 수 있고, 사업에 필요하면 타인의 토지에 출입하는 행위, 타인의 토지를 일시 사용하는 행위, 나무·흙·돌이나 그밖의 장애물을 변경·제거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한전은 이 법을 빌미로 남의 논 한가운데 철탑을 세우고도 딱 철탑 부지만큼만 보상해주겠단다. 산외면 희곡리 이상우 씨는 이 때문에 많은 것을 잃었다. 평생 장만한 논 2000평 중 300평이 102호 송전탑 부지로 지정되고, 선하지(線下地)를 제외한 부지의 보상금 6000만 원이 나왔다. 이를 거부하자 한전은 강제수용하고 공사를 강행했다. 한전 보상 기준인 평당 20만 원으로도 4억 원이다. 지켜보던 이상우 씨의 형 고(故) 이치우 님이 결국 지난 1월 분신을 하였다.

◇담보대출? 어림없다. 빌려간 대출금도 조속히 상환할 것 = '담보물은 765kV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토지로 현재 상황으로는 담보 대출을 반려합니다.' - 이 씨 논에 대한 농협 감정평가표에 적힌 메모다. 송전탑이 세워지고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일대 부지는 더 이상 재산 가치가 없다.

주민들도 처음부터 이렇게 극렬하게 반대하지는 않았다. '나라에서 하는 일인데… 마음에 들지는 않아도 받아들여야지…' 하는 심정이 대다수였다. 다만 마을이나 논밭에서 가급적 멀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오직 그것만 요구했고, 한전도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한전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농사란 매달 월급이 들어오는 일이 아니어서 자식 대학 보내고, 농자금도 마련하려면 땅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야 되는데 송전탑 때문에 더 이상 가치가 없단다. 팔고 떠나고 싶어도 살 사람이 없고, 계약 직전에 파기되는 일도 허다했다.

◇수도권에 전기 공급할 핵발전소 때문에… = 발단은 핵발전소 신고리 5·6호기. 2020년 준공 예정인 신고리 핵발전소 생산 전력을 중부권·수도권에 공급하기 위해 멀리 기장·울주서부터 송전탑을 세우고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초고압 765kV짜리 송전선로를 깔겠다는 것이다.

평생 농사밖에 모르던 주민들은, 한전과 지식경제부가 알려주지 않으니 스스로 공부하고 자료를 보면서 전력 정책의 악랄함과 핵발전소의 위험천만함을 알게 되었고,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국책사업의 희생양이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주민들은 많은 대안을 내놓고 있다. 최선은 백지화지만, 어렵다면 대안노선을 검토하고, 이도 안 된다면 기존 송전선로에 전선만 교체하면 된다니 그렇게 하고, 그마저 안 된다면 미국 수출까지 하는 우리 기술력으로 초전도체 지중화를 요구하고 있다. 핵발전소에 쏟아붓는 돈을 생각하면 이 비용은 얼마 되지 않는다.

◇'송전탑 69기 = 69군데 전쟁터!' = 밀양에는 송전탑이 69기 들어설 계획이다. 지금은 일부에만 용역업체가 들어가 주민들과 충돌을 빚지만 언제 이 모든 부지가 한전 용역업체와 주민들의 전쟁터로 돌변할지 모른다. 주민들은 이치우님의 분신으로 한동안 싸움이 중단됐던 일을 기억한다.

주민들은 말한다. 내가 죽으면 또 한동안 이 싸움이, 공사가 중단될 것이라고. 매일같이 송전탑 공사현장을 오르면서 유서를 가슴에 품고, 몸에 끼얹어 버릴 기름을 지고 집을 나선다.

◇용역 말고, 한전과 지식경제부가 나와라 = 한전은 이곳에 없다. 대신 하청업체 젊은 인부들이 있다. 이들은 공사만 하면 되기에 주민들 고통은 보지 않는다.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산비탈 공사현장을 70~80대 어르신들이 기어서 올라가고, 미끄러지면서 내려온다. 한전은 모르쇠다. 용역업체에서 하는 일이므로.

주민들 현수막에는 한전으로부터 10억원 손해배상소송, 매일 100만 원의 가처분 신청을 당한 주민 이름이 적혀 있다. 더 잃을 것도 없는데 소송이 뭐가 두렵겠냐 한다. 내 땅, 내 고향을 지키려는 일이라 오히려 자랑스럽다고 한다. 용역 말고 한전이, 전력정책을 책임지는 지식경제부가 주민들을 만나야 한다.

전원개발촉진법, 군사독재시절에나 가능했을 강제수용이 지금도 살아서 이토록 주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전에게는 주민들 반대가 '허다한 일' '어디서나 겪는 일'쯤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한 사람이 목숨을 던졌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목숨을 던지겠다고 한다.

한전에 경고한다. 모든 공사 현장에 일시에 용역업체를 투입하면 혼란스러워 주민들도 어쩌지 못할 것이라고 여긴다면 당장 접어라. 어떤 결과든 그 책임은 한전과 정부가 고스란히 져야 함을 명심하라.

/김은경(핵발전소 확산반대 경남시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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