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공무원] (46) 진주 문화관광과 강병주 전문위원

강병주(50·진주시 문화관광과) 전문위원은 문화재 업무뿐 아니라 직접 무형문화재 이수자로 활동하고 있다.

강 위원은 도 지정 문화재와 지자체에서 향토 문화재로서 관리할만한 지역 유산을 지정하고 지역 문화유산으로 전승발전시켜 나가자는 차원에서 구성된 진주시 향토문화재보호위원회의 전문위원으로 문화재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문화재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문화재의 이수자가 된 데는 사연이 있다. 강 위원은 1996년 지역 예술인들의 모임에서 경남무형문화재 10호 장도장인 임차출(2006년 작고) 씨를 만났다.

시사편찬위원회에 근무할 당시 관련 업무 때문에 공방에 드나들자 임 씨가 "저녁에 아르바이트하는 것보다는 벌이가 나을 것"이라며 배우기를 청했다. 대부분 찾아가서 배우겠다고 하는 게 정상적인데, 임 씨는 먼저 강 위원에게 배우기를 권한 것이다. 평소 공예에 관심이 많았던 강 위원은 선뜻 동의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방에서 은장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 3년 동안은 3분의 1을 공방에서 숙식을 해결할 정도였다. 신혼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임 씨와 아들 임장식(현 기능보유자 후보) 씨와 동고동락하면서 은장도 만들기에 열중했고, 방황할 때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힘든 세월을 이겨냈다. 유명한 무형문화재에는 이수자가 수십 명이 넘지만, 은장도는 임장식 씨와 이수자인 강 위원 단 2명이 지키고 있다.

   

그래도 은장도를 만드는 장도장전수교육관은 다른 문화재 공방과 비교할 때 활동이 활발하다.

강 위원은 "전국적으로 볼 때 공예 부문 중에서 벌이(?)가 괜찮은 것을 제외하고 우리 전수관의 수강생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정기적으로 화·수·목요일 수강생 수업이 있고, 매년 10주 단기반이 운영되면서 매일 공방이 북적거리고 있다"고 밝혔다.

강 위원은 중간에 시청 공무원으로서 문화재 전문위원이 됐지만 공방에서 배우기를 그치지 않았다.

강 위원은 전수관에서 닦은 실력으로 올해 잇따라 상도 받았다. 제26회 진주시 공예품 경진대회에서 '장석-가구를 떠나다'라는 작품으로 금상을, 제1회 문화관광기념품 경진대회에서는 '진주성 퍼즐'이라는 작품으로 동상을 각각 받았다.

"경상도 지역 반닫이에서 가장 특징적인 문양이 매미 장석이다. 그 문양을 가져와서 타이슬링이나 목걸이, 귀걸이 등 액세서리에 도입했다. 소재도 백통 대신 은으로 바꾸었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강 위원은 전했다.

강 위원은 "금속공예라면 어느 분야든 만드는 재미가 있다. 기계를 이용하지 않는 수작업은 집중을 하지 않으면 틀어진다. 금속은 줄어든 것은 늘릴 수 있는데 늘어난 것은 줄일 수 없다. 그걸 맞춰 내는 과정에 재미가 숨어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조상이 만든 도구(공구)는 모두가 직접 스스로 만든 것이다. 내가 필요한 도구를 금방 직접 만든다는 것, 수작업의 매력이 그곳에 숨어 있다. 똑같지 않은 도구에, 도구 자체를 내가 만드는 것, 수학으로 치면 내가 공식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라고 비교했다.

강 위원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6, 7년 전 지역 케이블 방송에서 문화재 탐방 소개를 하면서였다. 당시 식당에 가면 사인을 해달라고 할 정도였고 지금도 'TV에 나오는 아저씨'로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 1년 동안 진주시에 있는 유명 문화재 50여 건을 소개했다.

구수한 말솜씨와 애드리브로 문화재를 알기 쉽게 소개하면서 진주시에 문화재 전문위원이 있다는 것과 진주시가 문화재 보호에 힘을 쏟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례가 됐다.

몇 년 전부터 강 위원은 지역 자료를 수집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그래서 작은 컨테이너에 자료를 쌓고 있다.

"일단 자료가 될만한 것은 쌓아둔다. 해석은 나중 일이다. 지역의 많은 자료가 없어지고 있어 안타깝다. 자료 수집은 예산이 수반되는 일이라 혼자서는 벅차다. 훗날 진주시에 박물관이 만들어졌을 때 그곳에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건물은 돈으로 되지만 그곳을 채울 자료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