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역사기행] (6) 전남 담양…빼어난 풍경 전국서 몰려들어…국수거리도 명물

경남도람사르환경재단이 후원하고 경남풀뿌리환경교육센터와 경남도민일보가 함께 주관하는 '2012 경남도민 생태·역사기행'이 7월에는 경남을 넘어 전남의 담양으로 나들이를 했다. 더운 여름날, 나무가 우거져 숲은 이룬 데를 찾다 보니 그리 됐다.

담양은 죽물(竹物)로 예전부터 이름이 높았다. 이번에 가서 보니 그것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죽물은 중국산 베트남산 따위에 밀려 한물가고 말았다. 대신 숲이 나무가 사람에게 주는 이로움을 일러주는 현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7월 20일 아침 9시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2동 경남도민일보 앞을 떠난 버스는 2시간 30분 남짓 달린 끝에 전남 담양군·읍 향교리 죽녹원(竹綠園)에 닿았다. 죽녹원은 예부터 있던 정원은 아니고 담양군이 2003년 들어 동네 동산 하나를 통째로 들여 부러 만든 대나무 숲이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담양의 또다른 명물 '국수거리'는 예서 다리 하나 건너 오른편으로 이어진다. 여기 한 식당에 들러 국수를 말아 먹었다. 갖은 약재와 함께 달여 삶아냈다는 약달걀도 곁들이고 담양산 막걸리와 파전도 밥상에 올렸다.

이윽고 담양천을 건너 죽녹원에 오른다(입장료 2000원). 왕대나 오죽(烏竹) 따위 일부러 가꾼 티가 곳곳에서 나지만 그렇다고 천박하지는 않다. 대도 좋고 길도 그럴 듯하다. 날이 맑아 대나무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면서 가늘게 쪼개지는 품이 아주 멋지다. 더러는 꿈결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길은 좁지 않고 자가용 자동차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너르지만 양옆으로 높이 자라 우거져 있는 대들 덕분에 휑한 느낌은 전혀 없다. 다만 곳곳에 만들어져 있는, 댓잎을 먹고 산다는 중국 판더 모양이 좀 성가시다. 그래도 참을만은 하다. 운수대통길·사랑이 변치 않는 길 같은 이름이 붙은 여덟 개 길을 거닐면 꽤나 시간이 들게 생겼다.

죽물 파는 전시장에도 들른다. 인간문화재들이 만든 물건들은 매우 비쌌다. 중국산 죽부인은 대형 유통점 같은 데서 5000원이면 살 수 있지만 여기서는 5만 원이다. 어떤 삿갓은 150만 원이나 한다. 잘 갈라낸 대를 겹으로 대어 햇살이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잘 만든 제품이라 한다. 이런 물건에는 그냥 손만 한 번 대 볼 뿐 살 엄두는 내지 못한다. 일행은 1만 원짜리 죽비, 8000원짜리 쥘부채, 2만 원 하는 대바구니를 하나씩 집어들었다. 인간문화재는 아니고 그저 담양산대로 만든 물건이라 한다. 죽비로 두드리니 어깨와 배와 가슴이 무척 시원하다고 했다.

   

담양에서 숲은 끊어지지 않는다. 죽녹원을 벗어나면 곧바로 관방제림이 이어진다. 대숲의 청신함을 누린 바로 뒤에 어버이처럼 감싸주는 활엽수 숲을 걸을 수 있다. 그 숲이 끝나면 빛나는 청춘처럼 기운이 씩씩한 메타세쿼이아 숲이 다시 이어진다. 관방제림(官防堤林). 담양천을 다시 건너 국수거리 맞은편으로 넘어가면서 이어지는 둑에 있는 숲이다. 관(官)에서 물길을 막아(防) 만든 둑(堤)이다. 여기 숲(林)은 조선 인조 때인 1648년에 먼저 만들어졌고 철종 연간인 1854년에 한 번 더 만들어졌다. 느티나무 푸조나무 팽나무 벚나무를 비롯해 열다섯 가지 나무 320그루 남짓이 아름드리 자라나 있다.

메타쉐쿼이아 숲길 아래 시원한 그늘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

관방제림은, 사람이 나무를 가꾸고 숲을 이뤄주면 그 나무와 숲이 사람에게 무엇을 어떻게 갚음을 하는지를 일러주는 살아 있는 교과서 구실을 한다. 시원한 그늘도 주고 바람도 막아주고 홍수 같은 재앙도 막아주고 한 것은 여느 숲 공통의 공적이겠다.

그런데 읍내에 바짝 붙어 들어선 이 숲은 이런저런 역사를 개인 맞춤형으로 만들어줬겠다 싶다. 담양읍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낸 남녀들 치고, 이 숲에서 설익은 데이트라도 한 번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짐작을 해 보는 것이다.

   

이에 더해 이제는 전국 각지에서 담양으로 사람을 끌어모으는 구실까지 톡톡히 하고 있는 바, 그것이 담양 경제에 작지 않게 이바지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쩌면 명물인 국수거리조차 이렇게 사람이 모여들지 않는다면 이런 규모로 유지되지는 못했겠지 싶다.

2km남짓 이어지는 관방제림은, 높게 솟았거나 넓게 퍼져 있는 이파리가 무리지어 만들어주는 그늘도 무척 멋지다. 그늘에서는 동네 사람들 일상도 이어지고 있다. 꾸미지 않은 원래 그대로 있는 집들을 아래쪽에 배경으로 깔았다. 일하다 지쳐 담배 하나 물고 들어와 앉은 중년도 있고, 부채를 들고 평상이나 긴의자에 앉아 잡담을 주고받는 노년도 있다. 관광용 2인용 발수레나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청춘도 있다.

그 끄트머리에서 널찍한 아스팔트를 건너면 왼쪽으로 메타세쿼이아 숲길이 이어진다.(입장료 1000원) 사람이 나무 또는 숲을 제대로 가꾸면 그 나무와 숲이 인간에게 어떻게 갚음 하는지 일러주기는 관방제림과 마찬가지다. 관방제림이 370년 묵은 교과서라면,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30년남짓밖에 안 된 교과서라는 차이밖에 없다. 1970년대, 여기는 국도였고 사람들은 국도를 따라 가로수로 메타세쿼이아를 심었다. 30년 뒤에 울창해지면 거기서 무엇이 생기리라는 기대 따위는 없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들어 잘 자란 여기 이 숲이 아름다움과 즐거움으로 알려지면서 빼어난 관광 상품이 되고 말았다. 담양군은 여기 1.8km 정도 되는 거리에서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흙길을 만들었다.

여기 흙길 메타세쿼이아는 걷는 내내 향기를 내뿜고 그늘을 만들고 바람을 일렁였다. 오가는 이들은 이런저런 몸짓과 행동으로 그 풍경을 새롭게 했다. 자동차를 다니지 못하게 한 때문에 길이라는 느낌은 적잖게 가셨지만 누리는 공간으로는 매우 훌룡했다.

물론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더 많이 이어진다. 흙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전북 순창으로 이어지는 아스팔트길이 그렇다. 양쪽으로 메타세쿼이아를 거느린 품이 얼핏 봐도 대단하다. 흙길 메타세쿼이아숲에서 얻을 수 있는 보람을 넘어 더 큰 만족을 얻으려면 여기 이 길까지 내처 걸어도 좋겠다.

일행들의 걷기는 오후 3시 30분 즈음 흙길에서 멈췄다. 돌아오는 길이 빠듯했기 때문이다. 대신 흙길 끝머리에서 순창까지 이어지는 7km 정도 되는 메타세쿼이아 아스팔트길을 버스를 타고 오가며 둘러보는 데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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