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렇게 결혼했어요] 박수민·이종민 부부…갤러리 카페 준비 중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산티아고 순례길). 스페인에 있는 가톨릭 성지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다. 세계 도보 여행자들에게 사랑받는 길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12월, 이 길을 걷던 여행자들 사이에 한 부부가 작은 화제가 된다. 신혼여행을 산티아고 순례길 도보로 선택한 박수민(37)·이종민(37) 씨 부부. 1000㎞ 순례길, 어쩌면 고행길을 부부는 묵묵히 걸었다. 많은 여행자가 36살 동갑내기 부부에게 응원을 보냈다. 한 명이 이끌어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둘이 함께해야만 갈 수 있는 먼 길을 부부는 걷고 또 걸었다.

"2009년 10월에 처음 만났네요. 진주에서 '골목길 아트 페스티벌'을 할 때였어요. 그리고 이 축제를 주최하는 곳이 찻집인 '다원'이었지요. 축제 첫날 개막식 비슷한 자리를 마련했어요. 그때 5~6명 정도 한 테이블에 앉았는데 그 자리에 종민 씨가 있었지요."

말이 없던 종민 씨는 그렇게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었다. 주변에 유쾌한 사람들이 대화를 이끌었고, 수민 씨는 유쾌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가 진행됐다. 그 주제 가운데 여행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중학교 다닐 때부터 여행을 많이 다닌 수민 씨에게는 할 이야기가 많은 분야였다.

   

"와인 이야기가 어쩌다 나왔어요. 그러다가 이스라엘 와인인 '야르덴' 이야기까지 닿았지요. 이스라엘 와인 자체가 흔하지 않잖아요. 마침 저에게 그 와인이 있었어요. 다른 자리를 마련하면 맛을 보여주겠다고 했지요."

우연히 만난 사람들은 그렇게 의기투합했다. 말 없던 종민 씨는 그 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다음 자리를 약속하게 됐다. 며칠 뒤 다시 만난 사람들은 와인을 마시면서 그때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세대도, 사는 방식도 다양했던 사람들은 이런 모임을 정기적으로 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제안을 했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뭉쳤다. 모임 이름은 '야르덴'이 됐다.

"종민 씨는 순수 사진작가라고 했어요. 제가 다른 예술 분야 사람들은 좀 만나 봤는데 사진작가를 만난 것은 처음이었어요. 말이 없고 그냥 가난한 작가 정도 느낌이었지요."

'야르덴'으로 묶인 사람들 가운데 종민 씨와 수민 씨는 동갑내기 막내가 됐다. 자연스럽게 편하게 어울렸다. 사실 따로 사귄다는 느낌 같은 것은 없었다.

"특별히 결혼까지 생각했던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데 결혼이라는 게 사람만 좋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결혼을 해야 할 시기에 마침 그 사람이 있었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인 것 같아요."

수민 씨 어머니는 다섯째 딸을 어떻게든 결혼시키고 싶었다. 나름 정해놓은 마지노선이 2011년이었다. 그해를 넘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고 딸을 압박했다. 그런데 마침 수민 씨 옆에 종민 씨가 있었다. 양가 부모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바로 만남을 추진했고 일사천리로 결혼 날짜까지 정했다. '양가가 만나면 한 달 안에 결혼 날짜를 정한다' 수민 씨 어머니 원칙은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란 결혼은 그렇게 진행됐다.

"결혼 전까지 남편에게 특별한 감정은 없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이 저를 좋아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요. 친구로 잘해주는 것과 여자로 잘해 주는 것은 느낌이 오지 않나요?"

수민·종민 씨 부부는 신혼여행을 3개월 동안 떠난다. 그 기간 가운데 절반이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이었다. 한 명이 가자 해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둘이 마음이 맞았고 그렇게 1000㎞를 걸었다.

"길을 걸으면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지요. 사진을 찍는 종민 씨는 갤러리 카페를 여는 게 꿈이었어요. 저도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그런 공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신혼여행을 하고 오자마자 그런 공간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이 부부가 정성스럽게 가꾼 공간은 곧 문을 연다. 진주 칠암동에 있는 카페 이름은 '까미노(CAMINO·길)'이다. 이들에게는 가장 어울리고 당연한 이름일 듯하다. 부부는 자전거를 즐겨 타는 사람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가꿀 계획이다. 사진 찍기만큼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종민 씨 뜻이 반영된 것이다.

"남편에게 나보다 큰 나무가 돼 달라고 얘기해요. 똑같은 나무가 함께 잘 자라기는 어렵잖아요. 서로 크기가 다른 나무가 함께 자라면 서로 의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큰 나무가 되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결혼 기사를 매주 월요일 6면에 게재하고 있습니다.

사연을 알리고 싶은 분은 이승환 기자(010 3593 5214)에게 연락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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