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많이 나와서 이제는 좀 '자제했으면' 하는 책 포맷이 있다. 이른바 우리 시대 멘토라 불리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등장하는 '이렇게 살아라'류의 책들이 그것이다.

예의 우리에게 익숙한 조국 서울대 교수, '나는 꼼수다' 김어준 같은 사람이 주축을 이루는데, 최근 몇 년 새 필자 또는 인터뷰이, 강연자 형식으로 가장 자주 이름을 보이는 이는 배우 김여진 씨다. 김 씨는 지난해부터 <배운 녀자>, <내가 걸은 만큼만 내 인생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공부>, <소셜테이너>, <통하면 아프지 않다> 등에 이런 식으로 이름을 올렸다. 사회자·진행자 신분으로 등장한 것까지 치면 더 많고, 또 지난 5월에는 <연애>라는 단독 에세이집까지 펴냈다.

뭐가 문제냐, 그만큼 사랑받는다는 증거 아니냐 따져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문제는 책 내용이다. 대부분이 연예인으로서 사회문제에 자각한 계기와 그 과정에서 깨달음 등으로 채워져 있으니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식상하게 다가오는 건 어쩔 수 없다.

5월 출간된 배우 김여진의 〈연애〉.

물론, 또 다른 '희망버스 스토리'를 기다리기보다 어떻게든 '뜨는 필자'를 빼먹으려 하는 출판사와 언론사도 반성해야 마땅하다. 이들이 주도하는 '소진'(燒盡)의 결과는 비단 동어반복, 식상함에 그치지 않는다. 멘토들에겐 자기 역량 이상의 '잘못된 신호'를 끊임없이 주입시킬 가능성이 높고, 이는 필연적으로 뭔가 쏟아내야 한다는 강박과 조급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 부작용은 자명하다. 이를테면 작가 공지영 씨는 트위터상에서 허위 사실이나 정제되지 않은 주장을 퍼뜨린 일로 자주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고 있다. 강남 투표율, 국민일보 사장 발언, 여수 엑스포 돌고래 쇼, 김연아·인순이 비판 등 한두 건이 아니었다. 공 씨는 "내가 신문사냐?"고 항변하지만, 직접 확인하지 않은 불확실한 문제에 대한 '표현 수위' 조절은 작가로서도 기본에 속하는 일이다. 더구나 대중과 언론으로부터 멘토로 존중받고 있는 공인 아닌가.

"이게 사실일까?" 글을 읽을 때마다 조마조마한 마음이 앞서는 멘토 중엔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도 있다. 우 교수 역시 각종 저서·칼럼 등 '다작'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또한 공지영 씨와 유사한 문제로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적지 않다.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에 즈음한, 새누리당 나경원 전 의원의 장애인 딸, 김수현 전 희망서울정책자문위원장 등과 관련된 사실과 다르거나 확인되지 않은 주장이 대표적이다.

지난 2007년 <88만원 세대> 성공 이후 줄기차게 펴내고 있는 책들도 아쉬울 때가 많다. 특히 <88만원 세대> 2탄격인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는 개인적으로 '함량미달'이라 평가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졸작이었다. 예컨대 "20대의 90% 이상이 이명박을 반대하고 있다"고 하는데 도무지 구체적인 근거를 알 수가 없다. 책의 대부분이 자기 지식 '과시'일 뿐, 본주제인 20대와 관련된 깊이 있는 탐구나 사유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찌 보면 '멘토'라는 지위는 그 자체로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지혜와 경험을 조언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 그럼 멘토는 누가 멘토링을 해야 한단 말인가? 멘토들끼리? 치열하고 객관적인 자기 진단 없이 언론과 대중의 욕구 부응에만 급급해 한다면, 강준만 교수가 표현한 '멘토의 시대'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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