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보다는 시원한 휴식공간 된 이곳…다시 나갈게 걱정

한여름 땅밑은 일단 볕을 피하기 좋다. 폭 30m 정도 되는 도로를 건너고자 땅밑으로 한참 내려와 다시 그만큼 거슬러 올라가는 수고도 완전히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지하도 가운데에 있는 작은 분수와 앉을 자리는 누구에게나 너그러운 공간이다.

지하도 한쪽에 있는 매점에서는 간식과 시원한 음료수를 판다. 작은 분수를 등지고 시원한 커피를 마시는 할아버지는 나름 피서를 즐긴다. 그러고 보니 지하상가는 냉방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옷 가게 매장 점원 눈은 오랫동안 컴퓨터 모니터에 고정돼 있다. 드나드는 손님이 많지 않기에 몸에 밴 습관일 테다. 하지만, 잠시나마 쇼윈도에 진열된 옷에 눈을 고정하는 손님을 놓치는 것도 그 습관 탓이다.

   

신발 가게 쇼윈도에는 전 품목 10~50% 세일을 알리는 글귀가 붙어 있다. 50% 숫자에 견줘 10% 숫자는 매우 작다. 지극히 상식적인 상술이다. 지하도 입구 근처라 목이 좋아서인지 다른 가게보다 손님 출입이 잦다. 한 아주머니가 집어든 신발은 10~50% 할인 가운데 어디에 해당하는지 알 수 없다. 어쨌든 아주머니는 기필코 한 번 더 가격을 깎는 모습이고, 주인은 손님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는다. 그렇게 신발을 들고 간 소비자는 아주머니가 네 번째다.

분수대 한쪽에 자리를 정한 할아버지는 일정한 시간을 두며 자리를 옮긴다. 긴 타원 모양인 분수대 주변을 시계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며 10분 정도 걸터앉는다. 그리고 또 자리를 옮긴다. 한자리에 앉는 게 무안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지겨워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 제목은 알 수 없으나 귀에 익은 가요가 두 소절이 채 나오기 전에 할아버지는 전화를 받는다.

"어디여? 30분 넘게 기다리고 있잖어! 왔다고? 안 보이는데?"

두리번거리던 할아버지 표정이 더욱 일그러진다. 퉁명스러운 말투와 성난 표정으로 성큼성큼 반대쪽 입구를 향해 걸어간다. 지하도 입구와 입구 사이는 제법 멀다.

   

한 할머니가 분수를 등지고 앉으며 양산을 접는다. 잠시 쉬어가는 편안함보다 다시 밖으로 나갈 게 걱정이다. 맨손으로 연방 부채질을 하다가 매점에서 커피를 한 잔 산다. 지하도를 오가는 사람들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던 할머니는 커피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숨을 돌린 할머니는 출구 쪽으로 무거운 걸음을 옮긴다.

   

발랄한 여고생은 혼자일 때 새침하고, 둘일 때 마냥 즐거우며, 다섯이면 무서울 게 없는 목소리로 대화한다. 한 명일 때 존재감도 없었던 여고생은 친구들이 모이자 얼굴도 목소리도 환해진다. 교복과 편안 옷차림이 섞인 또래들은 우르르 현금인출기 앞으로 달려간다.

"더 뽑아라."

"안 된다. 나도 돈 없다."

현금 인출기 앞에서 나눈 딱 두 마디 대화에 발랄한 여고생들은 뒤집힌다며 웃는다. 그렇게 웃는 이유를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앞뒤로 엉키고 깔깔거리면서 한쪽으로 몰려가는 모습은 해석할 수 없지만 상당히 유쾌하다.

먼저 온 노인이 계속 앉아 있는 동안 뒤늦게 온 노인들이 분수대 주위에 앉는다. 그렇게 지하상가 분수대 주변은 노인들로 채워진다. 그 사이에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젊은이들이 섞여 있다. 안에 있기는 답답하고 밖은 너무 무더운 요즘 노인들에게 이곳은 또 그렇게 좋은 휴식처가 된다.

그렇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오가지만 정작 지하상가 매장 분위기는 들뜨지 않는다. 매장 입구가 나란히 붙은 옷가게 점원과 화장품 가게 점원은 입구 앞에서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다.

그나마 세일을 앞세운 신발 가게 점원은 9번째 손님을 성공적으로 배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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