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갯내음에 굽이굽이 돌아가는 해안끝 절경

사천만은 아무리 봐도 커다란 호수 같다. 바다 한가운데 무슨 양식을 위한 나무꼬챙이가 위로 삐죽 솟아 있고 고기잡이를 위한 조그만 등대가 있기도 하지만 늘 그런 느낌을 갖게 된다.
바람도 살랑거릴 뿐 거칠지 않고 물결도 바닷가 거니는 사람 발자국 찍는 소리보다 크지 않아 조용하다.
사천읍내를 에둘러 삼천포항이 가까워지면 오른쪽으로 바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무슨무슨 공단이라는 표지판이 서 있는 뒤쪽 너머로도 공장은 아니 보이고 바다만 길게 드러누워 있다. 머지 않아 개발되거나 매립될 지는 알 수 없지만, 초겨울 지는 햇빛을 되쏘는 바다는 아름다웠다.
사천 실안 바닷가로는 해안 일주 관광도로가 놓여 있다. 삼천포항 못 미쳐 남양동에서부터 시작된다. 동서동을 지나 실안마을이 나타나는데 바지락 양식장이어서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지만 곳곳에 낚시꾼들이 들어가 있어 말 그대로 지켜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바다 위에는 섬이 떠 있고 섬 저 너머로는 곤양이나 남해가 보인다. 산의 굴곡을 따라 해안선은 드나들고 어민들의 터전인 양식장과 등대가 둥둥 눈가로 떠밀려 온다. 대방진 굴항 조금 아래에는 남해 창선섬과 이어지는 연륙교 공사가 한창이다. 조개무지가 나온 늑도와 철새들이 쉬었다 가는 학섬을 지나는 다리 공사인 것이다. “올해 말 공사가 끝나면 둘레의 자연경관과 다리의 예술적 조형미가 어우러져 사천시의 관광명소가 될 것”이라는데 겉보기는 아직 ‘글쎄올시다’였다. 도로 오른쪽으로 군데군데 잔디를 입히고 정자를 세워 만든 쉼터가 자리잡고 있다. 초겨울에 접어들었지만 아직은 햇살이 고와서 그런지 식구들끼리 놀러나온 사람들이 잔디밭에 자리를 깔거나 의자에 앉아서 음식을 펼쳐놓고 있다. 때로는 나이 지긋한 이들이 한데 어울려 웃고 떠들며 고기 안주에다 소주병을 까는 모습도 보인다. 이번 주말이 지나면 이같이 느긋하게 사천 바다를 즐기려면 따뜻한 봄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방진굴항은 관광도로의 끄트머리에 매달려 있다. 모두 합쳐 500평 남직 될까 하는 넓이로 항구 안쪽에다 빙 돌아가며 돌을 쌓아 배를 댈 수 있도록 만든 바다 연못이다. 찾았을 때는 썰물로 물이 빠진 가운데 배 몇 척만 매여 있었는데 물이 차오르면 생각보다 훨씬 운치가 있을 듯 싶었다. 굴항 안쪽에서 바라보는 남해섬이나 바다쪽 풍경도 아름답다. 지는 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이들도 곧잘 보이는 곳이다.
고려시대부터 왜구를 막으려고 설치한 수군진영이 있었으며 83년 문화재 자료 93호로 지정된 이곳은 지금 색다른 풍경을 즐기고 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싱싱한 회를 맛보려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가 되고 말았다. 대방진굴항에서 인상적인 것은 고목들이다. 아름드리 활엽수 수십그루가 발치에다 고엽을 흩뿌린 채 둘러서 있다.
또 골목길에는 엄청나게 굵은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이 느티나무는 나무치고는 유별나게 정확한 나이가 알려져 있다. 725살인데, 고려시대 삼천포 꼭대기 각산에다 산성을 쌓을 적에 같이 심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볼만한 곳

아이들과 함께라면 바닷가에서 조개나 소라.게 등을 잡는 게 아무래도 즐겁다.
실안 바닷가에는 그렇게 한 때를 보낼만한 데가 곳곳에 있다. 일주관광도로를 따라 달리다 5분도 채 못돼 나오는 횟집 ‘노을’ 옆에 있는 바다도 그 가운데 하나다.
진흙이 질펀한 개펄도 아니고 고운 모래가 깔려 있는 곳도 아니다. 고만고만한 자갈 크기 돌들이 깔려 있는데, 동네 할머니들은 물 빠질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삼삼오오 몰려나와 바지락인지를 캐느라 여념이 없다.
이들 할머니와 떨어진 한쪽에서는 놀러나온 사람들이 한 무더기 어울려 돌에 붙은 굴도 캐고 바위를 뒤져 게를 잡거나 조개.소라 따위를 주워 담는다. 한 아이는 바위를 뒤집었다가 틈새에서 알을 품고 있는 장어를 발견했다.
“우와!” 신기해하더니 바위를 원래대로 되돌려놓았다. 왜 잡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바위를 들어 냈는데도 알을 품었다고 꼼짝도 하지 않는 걸 어떻게 잡아요. 불쌍하잖아요” 한다. 사람이 배우려 들면 바닷가 어린아이에게서도 측은지심(惻隱之心)의 본바탕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온 식구가 달라붙어 비닐 봉지를 채울라치면 1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과 어울리는 1시간은 즐겁기만 하다. 게다가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삶은 고둥을 빼먹는 재미까지 누릴 수 있으니 그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고’가 아니겠는가.
리 숙여 바위를 뒤집다가 고개를 들면 오른쪽으로 사천시내 건물들이 조그맣게 쪼그라든 채 햇살에 빛난다.
왼쪽엔 때로 무심한 구름이 둥실 떠 있는 아래로 섬들, 섬들 너머로 맞은 편 바닷가 마을들이 보인다. 바다는 그냥저냥 아이들 함성 소리에 파묻힌 채 눈앞에서 조용하게 출렁일 뿐이다.
햇살이 바른데다 바람까지 없다고 얇은 옷차림으로 나왔다간 곧 후회하게 된다. 바람 불지 않는 바닷가는 없는데다 해가 떠 있다고는 하나 엄연한 초겨울이기 때문이다.
충고 하나. 마을 근처 바닷가에는 절대 가지 말 것. 갔다가는 크게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 생활하수나 축산폐수 때문에 돌들까지 시커멓게 더럽혀져 있는 경우도 있고 냄새 또한 만만찮게 괴롭힐 때도 없지 않다.

▶찾아가는 길

마산합성동시외버스터미널에 가면 오전 6시 20분부터 오후 8시 35분까지 30~40분 간격으로 준비된 차편을 이용할 수 있다. 걸리는 시간은 삼천포까지 1시간 40분 남짓. 삼천포에서 내린 다음 대방진굴항까지는 어슬렁어슬렁 걸어도 된다.
반면 진주에서 사천.삼천포까지를 오가는 차편은 아주 많은 편이다.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 30분까지 8분 간격으로 이어지는데 진주~사천은 20분이면 되고 삼천포는 40분이 걸린다.
실안 바닷가를 한 바퀴 두르는 관광도로의 즐거움을 맛보려면 아무래도 자동차를 타고 가는 편이 낫겠다.
마산.창원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타도 되고 신마산 경남대학교를 지나 국도 14호선을 따라가다가 고성으로 빠지지 말고 진주 가는 국도 2호선으로 옮겨 타도 된다.
남해고속도로를 탈 때는 사천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곧바로 직진해 달리다 보면 왼쪽으로 와룡산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이 곳곳에 보인다. 용현면을 지나 15km쯤 왔음직할 때 나오는 남양네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들면 실안 가는 길이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들머리에 있는 모충공원에 잠시 들러도 좋다.
하지만 길 따라 가다가 눈길을 끌만한 바다 풍경이 펼쳐지는 곳에 차를 세우고 식구들과 자리 깔고 마련해 온 음식을 먹는 게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만약 낚시를 싫어하지 않는 집안이라면 농협 공판장이 나오는 지점에서 오른쪽 실안 마을로 접어들어 바다에 바짝 붙은 도로 난간에 걸터앉아 낚싯대를 던져보는 것도 좋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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