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에선가 특정인이 쓴 모든 기록물에 빈번하게 사용된 단어를 뽑아보면 그 사람의 심리상태, 잠재된 욕망, 인생관 등을 분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하루는 키워드 검색을 통해 내 블로그에 쓴 글을 분석해 봤다. 전혀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문장 구성에 필요한 필수적인 단어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는 '디테일'이었다.

디테일의 중요성을 더러 강조하고, 또 그에 걸맞은 글을 쓰기 위해 자료와 통계를 꼼꼼히 살피는 편이기는 해도 이 정도로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예술에도, 건축에도, 제품 디자인에도 심지어는 기업경영에도 디테일이 강조되는 시대다. 똑같은 짚신을 만들었는데 잔털을 꼼꼼히 제거한 아버지의 짚신이 더 많이 팔렸다는 '짚신장수 부자' 이야기는 진작부터 디테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듭니다'라는 필립스의 광고 카피는 단 한 문장으로 디테일의 본질을 간파했다.

흔희들 일의 결과물이나 제품에 아주 조금 아쉬운 구석이 있을 때 '2% 부족하다'는 표현을 쓴다. 오래 전부터 사용된 말 같지만 실은 1997년 출시된 음료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동일한 소재와 디자인으로 만든 A,B,C 세 개의 제품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B의 완성도를 100%라고 하고, 그보다 조금 떨어지는 A를 99%, 완성도 이상의 가치를 실현한 C를 101%라고 한다면, A와 C의 차이는 고작 2%에 불과하다.

얼핏 사소해 보이는 이 차이를 소수로 환산하면 전혀 이야기가 달라진다. A, B, C를 소수로 환산하면 0.99, 1, 1.01이 된다. A와 C는 불과 0.02의 차이. 근데 각각의 소수를 계속 곱해나가면, 0.99는 제로에 수렴되고, 1은 여전히 1이고, 1.01은 무한대로 수렴된다. 이를 시장논리로 해석하면 A는 언젠가 시장에서 사라지고, B는 현상유지에 그치고, C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작은 차이'가 결국엔 '본질적인 차이'를 낳는 원인이 되는 셈이다. 바로 이것이 디테일의 힘이다.

부산의 한 일식당에서 내놓은 보리새우 초밥. 포를 떠 밥 위에 올리는 전형적 방법 대신 배를 갈라 그 사이에 밥을 채웠다. 눈과 입을 동시에 즐겁게 하는 디테일의 위력이다.

이를 두고 근대 건축의 대가 미스 반데어로에는 '신(神)은 디테일 속에 있다'는 명언을 남겼다. 아주 멋진 말이긴 한데 썩 와닿지는 않는다. 하나의 명제는 이미지로 구체화될 때 실행력을 가진다. 명제에 이미지를 부여하는 일이 곧 스토리텔링이다.

최근 부산의 모 특급호텔에서는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우리 안의 흰양말을 찾아라!'란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어떤 신사가 명품 양복과 드레스셔츠에 고급 수제화를 신었다 치자. 근데 그의 양말이 흰색이다? 이러면 그 신사의 패션감각은 빵점이다. '우리 안의 흰양말을 찾아라!'는 이처럼 호텔 시설과 서비스에 숨어 있는 흰양말을 찾아냄으로써 고객 만족도를 높이겠다는 의도다. 오늘도 그 호텔 임직원들은 흰양말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한다.

디테일은 모호한 개념인 데 반해 흰양말은 훨씬 구체적이다. 또한 흰양말은 우리 생활 곳곳에 숨어 있다. 따라서 이를 찾아 내고 개선하는 것은 곧 내 삶의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이다.

정치라고 별반 다를 건 없다. 대선 후보들의 잘 다듬어진 캐치프레이즈나 출마선언문에서도 흰양말은 존재한다. 이를 발견하는 것이 유권자의 몫이다.

/박상현(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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