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함 일렁이는 '특별한 풍경' 운치, 한눈에 사람 셀 정도로 썰렁'

휴가 때 비가 내리는 게 운이 없는 것인지, 장마철에 휴가를 내는 게 운이 없는 것인지…. 해수욕장을 찾은 가족들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모래밭을 터벅터벅 걷는다. 들고 있는 우산은 바람 탓에 이리저리 휘청거린다. 그래도 아이들은 신난다. 바다로 점점 다가갔다가 파도가 밀려오면 소리를 꽥꽥 지르며 뒤로 물러선다. 물이 빠지면 다시 성큼성큼 바다 쪽으로 다가선다. 큰아이를 뒤쫓는 작은 아이는 바다로 향하는 속도도 느리고 빠져나오는 속도도 느리다. 먼저 들어간 큰아이들보다 파도 세례를 더 받는다. 그래도 깔깔거리는 웃음은 멈추지 않는다.

바람에 퍼덕이는 천막 아래에서 엄마는 아이와 함께 라면을 끓인다. 한쪽 손에 우산을 들었는데, 내리는 비를 막기보다 닥치는 바람을 막는 용도로 쓴다. 라면, 그릇, 쓰레기봉투 등을 모두 무거운 것으로 눌러놓았다. 그래도 우산까지 들고 있어 바람 다루기가 영 만만찮다.

   

해수욕장 한쪽, 바위가 넓게 퍼져있는 곳에는 낚시꾼 한 명이 자리를 폈다. 버티려면 못 버틸 정도는 아니겠지만 날씨가 낚시를 던져놓고 편하게 앉아 있을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아이스박스, 의자, 낚싯대를 주섬주섬 펴놓으며 위태로운 자리를 고집한다.

낚시를 던지고 한 손에 우산을 든 채 주변을 서성인다. 처음에는 2~3m 앞까지 어른거리던 파도가 점점 낚시꾼 쪽으로 다가온다. 밀려들수록 파도는 깊어지고 높아졌다. 바위에 부딪힌 파도가 물보라를 튀기며 낚시꾼 자리를 위협한다. 그래도 그는 우산으로 물보라를 막으며 버텨본다. 이번에는 제법 속도감 있게 밀려드는 파도가 제법 높은 물보라를 튀기며 낚시꾼을 덮친다. 이번에도 우산으로 막아보지만 물세례를 완전히 피하지는 못한다. 몇 걸음 뒤로 물러나 본다.

해만 떠 있다면 발 디딜 틈이 없을 게 분명한 바닷가는 모래밭에서 노는 사람을 세는 게 어렵지 않을 정도로 한적하다. 덕분에 모래밭 양쪽에 천막을 펴놓고 바다를 살피는 구조대원은 한가하다. 천막 아래 의자에 앉은 대원들은 굳이 바다에 눈을 고정해놓지 않는다. 저마다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래도 굳이 자리를 비우지 않는 이유는 비를 맞으면서도 흥이 넘치는 몇 안 되는 피서객 때문이다. 10명이 넘을 구조대원과 몇 안 되는 피서객 때문에 이 순간 바닷가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해수욕장이 된다.

   

해변에 접한 리조트 역시 한가하기는 마찬가지다. 모래밭에서 놀던 사람들이 들어올 때 몸에 묻은 모래를 털어내라고 설치한 '에어 건(air gun)'은 작동하지 않았다.

크지 않은 해수욕장 둘레는 치킨 가게가 여럿 있다. 가게 앞에 걸어놓은 '치킨과 함께 시원한 맥주를'이라는 광고는 뙤약볕 아래 헤엄치다 지친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을 글귀다. 가게 바깥에 펼쳐놓은 테이블에서는 어르신 3명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안주는 마른오징어다. 장마가 계속 이어진다면 성수기까지는 아직 멀다.

해수욕장 양쪽 끝에는 높은 탑이 서 있다. 왼쪽에 있는 탑이 훨씬 높은 곳에 있고 오른쪽에 있는 탑은 모래밭 위에 설치돼 있다. 탑과 탑 사이에는 케이블이 연결돼 있다. 케이블은 바다 위를 가로지른다. 케이블에 한 명이 탈 수 있는 그네 같은 것을 매달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갈 수 있도록 해놓았다. 탑승료가 어른 기준으로 9000원, 제법 비싸다.

주차장에서 내려 해변을 돌아 바위를 둘러보고 다시 나오기까지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규모로 따지면 작은 쪽에 들어가는 해수욕장이다.

갑자기 공중에서 비명과 환호가 섞인 고함이 길게 들린다. 왼쪽 높은 탑에서 오른쪽 탑까지 이어진 줄 아래로 한 사람이 미끄러져 내려온다. 날씨야 어떻든 휴가철이다. 바다를 찾은 피서객은 빗속에서도 나름대로 즐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