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역사기행] (5) 밀양 표충사~호박소~영남루

6월 23일 아침 8시 30분 밀양 명소 탐방단 일행이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 경남도민일보 앞에 모였다. 날씨가 그다지 맑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 표정은 밝았다. 흐리면 흐린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즐길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여행이기 때문이리라. 표충사와 얼음골 케이블카와 호박소 그리고 영남루를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먼저 10시 즈음 표충사 들머리 주차장에 가 닿았다. 표충사는 알려진대로 밀양을 대표하는 으뜸 절간이고 나아가 여기에 담겨 있는 역사·문화적 의미도 작지 않다. 물론 이날 탐방은 초점이 거기에 있지 않았고, 표충사와 표충사가 끼고 있는 자연을 누리고 즐기는 데 있었다.

주차장에서 나와 자동차를 위한 아스팔트길을 버리고 오른쪽 숲 속으로 나 있는 산책로로 접어든다. 긴 길은 아니지만 아름드리 소나무가 길 따라 줄줄이 우거져 있어 그윽한 느낌이 있다. 여러 차례 오기는 했지만 여기로는 드나들 생각조차 못한 이들도 있는 모양이어서 "여기에 이런 길이 다 있었네!" 탄식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절간은 붐비지 않았다. 수충루를 통해 들어간 절간 마당에는 아침 나절 스님이 울력으로 쓸어놓은 비질 자국이 곱게 남아 있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비질 자국에다 자기 발자국을 얹으면서 이리저리 한가롭게 거닐었다.

대광전을 비롯한 전각을 둘러보거나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 있는 골짜기를 둘러보는 발길도 적지 않다. 그러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우화루(雨花樓)로 모여들었다. 표충사 으뜸 전각인 대광전과 마주보는 우화루는 여름철에 특히 돋보인다. 우화루는 창문이 없이 툭 트인 공간이다. 여기에 들면 대광전을 비롯해 여러 전각이 한 눈에 들어온다. 당연히 시원한 그늘이 있고 불어오는 바람조차 상큼하다. 뒤쪽 골짜기에서는 흘러가는 물소리가 거침없이 울려온다.

   

 

우화(雨花)는 꽃비다. 꽃비는 묘법연화경에 나온다. 더없이 높고 반듯한 깨달음을 얻겠노라고 석가모니 부처께서 다짐하니 범천왕이 감응해 고운 꽃을 향기로운 바람에 실어 내려보냈다는 얘기다. 그러거나 말거나 속인(俗人)들은 여기서 느긋함을 즐길 따름이다.

1시간 30분가량 즐기다 주차장 옆에 있는 안동 민속촌으로 돌아와 동동주와 산나물전과 비빔밥을 먹고는 얼음골 케이블카 시승을 위해 버스를 타고 도래재를 넘었다. 밀양 출신 이재금(1941~97) 시인이 "……일흔일곱 굽이굽이/ 소쩍새 울어// 실안개 피는 자락/ 눈물 맺힌다// 돌아서서 가신 님/ 돌아오는 고개"라 읊었던 그 고개를 버스로 주파했다.

얼음골 케이블카는 아직 준공이 되지 않았지만 안전 검사는 치렀으며 그래서 시승이 가능하다고 했다. 산내면 남명리 호박소 들머리에 있는 승강 시설에서 탈 수 있었다. 걸으면 몇 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와 높이지만 케이블카는 1734m에 이르는 삭도에 매달려 10분 남짓 만에 올라가 진참골 남쪽 정상이라는 데에 사람들을 내렸다.

올라가는 케이블카 안에서 사람들은 둘레 풍광을 나름 내려다보거나 쳐다보거나 하면서 서로에게 이런저런 평가를 했다. 어쨌거나 이렇게 공중에서 얼음골 둘레 사방 산세를 내려다보게 해주는 맛이 있다.

내린 사람들은 오른쪽으로 내어놓은 데크를 따라 다시 10분 정도 올라갔다. 전망대가 나왔는데, 날씨가 흐려서 골짜기와 맞은편 산세나 풍경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구름 또는 안개가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처럼 산과 산 사이에 구름이나 안개가 떠다니는 풍경을 좋아하는 이도 없지는 않았다.

건너편 백운산에 박혀 있는 하얀 바위 덩어리가 전망대에서는 백호(白虎)처럼 생겼다는데, 날씨 때문에 흐릿하게 보이는 모습으로도 대충 짐작은 됐다. 사진 찍기를 즐기는 어떤 이는 "다른 것은 몰라도 가을철 단풍 들 때 카메라 들고 오면 아주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도로 내려온 일행은 500m가량 떨어져 있는 호박소로 곧장 발길을 옮겼다. 호박소가 예전에는 사람들 찾기 어려운 골짜기였으나 지금은 길이 뚫려 아주 찾아가기 쉬운 곳이 됐다. 주차장에서 시작되는 걷는 길 또한 전혀 가파르지 않아 사람들은 편한 마음으로 찾아와 흐르는 골짝 물에 서슴없이 손발을 담근다.

일행도 그랬다. 커다란 너럭바위 이곳저곳에 몸을 풀고는 바로 물 속으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들어간다. 서로 물을 끼얹기도 하고 농담을 스스럼없이 주고받기도 하며 짧으나마 시원한 한때를 즐긴다.

   

마지막 일정은 영남루다. 밀양강의 영남루는 진주 남강의 촉석루 그리고 지금은 가보기 어려운 평양 대동강의 부벽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꼽힌다. 영남루에는 얽힌 이야기와 자랑거리도 많단다. 그래서 이날 처음부터 함께했던 문화관광해설사 최해화 씨가 여기서는 더더욱 쉴 틈이 없었고, 일행은 그 해설에 거듭거듭 감탄했다.

영남루 이쪽저쪽 걸려 있는 현판들과 딸려 있는 건물들, 여기 와 시문을 읊었던 이름 높은 옛적 사람들, 영남루 마당에 피어나 있는 돌꽃, 단군에서부터 역대 개국 시조를 모신 천진궁, 바로 옆에 있는 작곡가 박시춘 생가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를 품고 있지 않은 것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밀양루가 다른 무엇보다 좋은 점은 시원하다는 데 있다. 여기에 들면 밀양강 강줄기가 시원하고, 툭 트인 채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시원하고. 막힘없이 불어대는 바람이 시원하다. 이런 시원함 가운데에서 사람들은 세상일을 잊고 삼매경에 빠진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렇게 빠져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저녁을 먹기 위해 밀양에서 알아주는 고깃집인 암새들로 향해 미리 주문해 놓은 돼지고기 생삼겹살을 맛있게 구워 먹었다. 이날 탐방은 밀양시가 후원했다. 엄용수 시장은 밀양시를 대표해 저녁 자리에서 인사말을 하고 끝까지 함께했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편이기는 하지만 올 여름 나들이는 밀양 명승지로 하면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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