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 농업-강소농을 찾아서] (7) 이강삼 슬로푸드 하동유통사업단 대표

"농사짓는 사람이라면 일본으로 선진지 견학을 가듯, 농식품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 하동으로 배우러 올 수 있도록 농식품의 허브가 되고 싶습니다. 하동을 세계 식품 산업의 메카로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

야심 찬 포부를 밝히는 이는 이강삼(41) 슬로푸드 하동유통사업단 대표이다.

슬로푸드 하동유통사업단은 하동에서 생산되는 녹차·전통 차류·매실·대봉감·재첩 등으로 만든 100여 종 상품을 취급한다. 벤처 농가 등 26개 업체가 뜻을 함께하고 있다.

"단순히 판매 중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곳에서 하는 일은 연구·기획·생산기술까지 총망라 돼 있습니다. 지역 농민들을 위해 품질 규격·특허 신청 등 무료 컨설팅도 합니다. 일종의 유통 비즈니스 센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획을 통해 판매 유통망을 뚫어가는 거죠. 하동의 어떤 제품이 경쟁력이 있는지 조사·기획하고, 포장 등 제품 특성에 맞는 판매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이 대표는 소포장 녹차와 던져도 깨지지 않는 포장을 한 매실 진액을 예로 들며 보여줬다.

"녹차는 보통 둥근 지관 통(종이통)에 넣어 비교적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어떤 녹차를 좋아하는지 잘 모르는 일반 소비자가 녹차 맛을 보고자 보통 10만 원 안팎의 녹차 한 통을 선뜻 구매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전·세작·발효차·세작 삼각티백 4종을 소포장한 세트 상품을 만들어 여러 가지 차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매실 진액은 택배를 위해 포장을 개선했다.

"간장병 같은 플라스틱병에 담긴 것은 선물용으로 선호하지 않습니다. 예쁜 유리병 포장으로 고급스러움을 더해 선물용 제품으로 만들었는데, 문제는 운송이죠. 그래서 병을 에어 팩으로 감싸서 택배 과정에서 던지고 떨어뜨려도 병이 깨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이강삼 슬로푸드 하동유통사업단 대표가 제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전남대 수산해양대학을 졸업한 이 대표는 수산회사에 다니다 '부모님과 함께 하고 싶어' 1999년 귀농했다. 녹차와 단감을 생산하는 '햇차원' 대표인 부친의 일을 도우며 본격적으로 영농에 뛰어들었다. 식품 가공에 관심을 둔 이 대표는 2000년 경상대학교 식품가공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고품질 농식품을 연구·개발하기 시작했다.

성과는 곧 나타났다. 2001년 정부의 농업인 애로기술 개발사업에 '녹차와 감을 이용한 가공식품 개발'이 선정돼 사업을 수행, 감과 녹차를 이용한 고추장 개발을 했으며, 2005년 특허를 받았다. 또 2009년에는 수출 건조 취나물이 색이 변하고 맛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차 덖음 방법을 활용한 참취의 가공 기술 개발'로 해외 바이어들의 관심을 받았다.

이 대표가 슬로푸드 하동유통사업단 영농조합법인을 만든 것은 지난 2010년 8월. 농민들의 공동 마케팅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 것이 이유였다.

"좋은 제품을 생산해도 개인이 바이어 등을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요즘은 원스톱 쇼핑이 추세인데, 우리 농촌은 그러한 체계가 안 돼 있죠. 우리나라 농민들은 자기가 다 세계 최고라고 하는데, 최고가 맞습니다. 하지만, 한자리에 모여 규격화되는 시스템이 최고가 아닙니다. 혼자 일할 때는 우수한 상품을 가지고도 바이어 한번 만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서울 등지를 여러 번 뛰어다녀도 만나기 어려웠죠. 지금은 이곳에서 하동의 우수한 농식품을 모두 볼 수 있으니 바이어가 이곳으로 찾아옵니다. 이것이 바로 유통 마케팅에서 중요한 제조업의 물량 경쟁력이죠."

현재 이 대표의 슬로푸드 하동유통사업단을 통해 매실 진액과 차, 나물류가 미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일본 시장 개척을 위해 2개월 전 초도 물량이 수출됐으며, 동남아·중국 시장 진출도 추진 중이다.

"나라마다 소비자 성향이 다릅니다. 선호하는 규격이나 가격대가 있습니다. 거기에 맞춰서 용기 등을 개발, 판매에 최적의 조건으로 상품을 맞추는 작업을 이곳에서 합니다. 예를 들어 2만 원을 비싸다고 생각하는 나라에는 1만 원짜리로 소포장해 소비자들의 지갑이 쉽게 열리도록 하는 거죠."

이강삼 슬로푸드 하동유통사업단 대표.

슬로푸드 하동유통사업단은 하동군이 유통활성화를 위해 지은 건물을 임차해 '하동 명품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이 대표의 사업단에서 품질 등을 엄선한 100여 종의 지역 농식품을 만날 수 있다. 2010년 직원 2명으로 시작한 사업단은 현재 8명의 직원을 둘 정도로 사업 규모가 확대됐다. 내년쯤 손익 분기점을 넘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기술력이 우수한 나랍니다. 농식품이 세계 톱 반열에 충분히 오를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적으로 발효식품에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우리나라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식품 탄생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경쟁력을 가지게 되면 전 세계에서 하동으로 견학을 올 겁니다. 우리와 같이 농민들이 공동 대응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 각 지자체에 꼭 필요합니다."

'햇차원'의 차류를 자랑해 달라는 요청에 이 대표는 "햇차원보다 하동을 강조해 달라"고 말했다.

"'하동 녹차'라는 브랜드가 알려져야 개별 브랜드를 잘 알릴 수 있습니다. 하동은 우수한 녹차로 잘 알려진 지역이었는데, 88올림픽을 거치며 보성이 관광 활성화와 맞물려 이름이 알려지게 되면서 오늘날의 '보성 녹차'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하동 녹차가 대중화에서 밀려난 거죠. 보성은 '보성 녹차'라는 하나의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하동 녹차는 개별 기업이 각각의 브랜드로 판매합니다. 자부심만으로는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없습니다. 개별 업체 중심의 마케팅을 벗어나 공동 브랜드·공동 마케팅으로 '하동 녹차'를 알려야 합니다."

하동을 세계 농식품 산업의 메카로 만들려는 이 대표의 꿈은 회사 상징마크에도 담겨 있다.

"세계적으로 '슬로푸드'의 마크는 이탈리아에서 만든 '달팽이' 마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달팽이 대신 거북이를 마크로 정했습니다. 하동이 전 세계 푸드를 상징하는 날까지 거북이처럼 장수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걸어갈 겁니다. 거북이가 결국은 토끼를 이기지 않습니까?"

 

<추천 이유>

△윤승철 하동군농업기술센터 교육인력담당 = 이강삼 대표는 하동농특산물 가공업체들의 우수한 제품만을 엄선해서 공동비즈니스 마케팅을 펼쳐가는 슬로푸드하동유통사업단 영농조합법인을 결성해 공동연구, 제품개발, 생산기계라인 공유, 회원사들 간의 공동마케팅 등 많은 협력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 111번째로 선정된 슬로시티 하동에서 세계적인 슬로푸드 박람회를 개최하려는 꿈을 가지고 세계 슬로푸드의 메카로 성장해 하동농업을 세계 농식품 가공산업의 선두주자로 성장시키고자 하는 당당한 포부를 가진 CEO입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