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통 3대째 잇는 경남 고성읍장터 은하식당

“그 집 석쇠구이 염소불고기, 한 마디로 맛이 죽입니다.”

“에이, 무슨 말씀. 국밥이 그야말로 진국이지. 한 그릇 먹고 나면 금방 몸이 더워진다니까.”

경남 고성 은하식당 염소요리들을 두고 한 자리에 모인 여러 사람들이 너도 나도 한 마디 씩 거든 말이다. 솔깃해졌다. 여러 말 들을 것 없이 일단 눈으로 확인하고 입으로 맛보면 되지 않은가.

그래서 무턱대고 나선 걸음이었다. 마침 아침부터 낮게 깔렸던 하늘이 빗방울을 흩뿌리고 있어 뜨끈뜨끈한 국물에 소주 한 잔이 ‘딱’이었다.

장터 식당답게 착한(?) 가격

60년 전통 3대째 잇는 경남 고성읍장터 은하식당/권영란 기자
고성 은하식당은 고성읍 시장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고성군의 ‘전통시장 시설현대화’에 힘입어 시장 앞에는 넓은 무료주차장이 있고, 가게 간판들은 깨끗이 정비돼 있었다. 은하식당은 그 가게들 사이 한가운데 있었다. 입구를 쳐다보는데 유리문에 적혀있는 ‘60년 전통’이라는 문구가 먼저 눈에 확 들어왔다.
‘60년이라니, 반세기가 훌쩍 넘었다고….’

그 세월만을 꼽아보더라도 보기 드문 식당이란 생각을 얼핏 했다. 밖에서 보기에는 그리 넓지는 않을 것 같았는데 실내는 생각보다 넓었다. 아직 이른 점심시간이라 식탁을 차지한 사람들은 비교적 적었다.
우리 일행은 왁자지껄 식탁을 차지하고 앉아 주문을 하기 위해 벽에 붙은 차림표를 훑었다.

메뉴는 단출했다. 석쇠불고기 한 접시 2만원, 국밥 7천원, 술국 6천원 그리고 술 종류였다. 염소고기가 꽤 비싼 음식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이 집의 가격은 요즘 말로 ‘착했다’.

“석쇠 불고기가 제법 비쌀 줄 알았는데, 저 정도면 싼 거 아냐?”

“그렇죠. 근데 아무래도 양은 많지 않아요. 5사람이 한 접시 시키면 입에 기별이 안 가지요. 두 접시는 시켜야 할 것 같네요.”

석쇠 불고기 두 접시와 소주 한 병을 먼저 시키고 먹고 난 뒤에 국밥을 먹기로 했다.

주방은 식탁에 앉아서도 손님들이 일하는 걸 다 볼 수 있게끔 열려 있었다. 다만 석쇠구이는 연탄불에 굽기 때문에 주방 쪽 실외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소주 한 잔에 불고기 한 점, 염소에 얽힌 추억담을 풀다

   

먼저 밑반찬이 나오는데 무 간장절임, 김치, 물김치 등 담백하고 간단한 것들이었다. 밑반찬보다는 주 요리에 승부를 건다는 것으로 여겨졌다.

잠시 후에 석쇠불고기가 나왔다. 접시 아래 작은 초에 불을 켜두어 먹는 동안 고기가 식지 않도록 되어 있었다.

“양념이 강하지 않고 불고기 특유의 달콤한 맛도 은근한데. 고기도 굉장히 부드럽고.”

“염소 고기가 개고기보다 훨씬 맛도 좋고 몸에도 좋다고 하잖아요.”

석쇠 염소불고기/권영란 기자

일행 중 누군가는 ‘이 요리를 한 사람은 염소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야. 아니면 이런 맛이 나기 힘들어.’, ‘고기 한 점을 먹으니 염소 한 마리를 다 먹은 듯해.’ 등등 너스레를 떨었다.

순간 어머니를 생각했다. 생전에 ‘나이 마흔 되기 전에 여자는 염소 세 마리는 먹어둬야 한다’며 마흔이 다 되어서도 결혼하지 않은 딸에게 ‘염소목장에다 얘기해놓았으니 중탕으로도 먹고 고기를 재워도 먹자”며 성화셨다. 당시 나는 왜 먹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도 못했고, 더욱이 비위가 약한 내겐 ‘고기중탕’이란 말에서 벌써부터 누린내와 약간의 역겨움을 가졌던 듯싶다. 끝내 말을 듣지 않았었다. 이미 수년 전의 일이다.

3대째 가업 잇는 둘째 아들 임재권 씨/권영란 기자
잠시 혼자 생각하는 동안 일행들은 제각각 ‘염소’에 대한 추억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염소는 물똥을 싸지 않는대요. 그래서 당치 않은 말을 하면 ‘염소 물똥 싸는 소리 한다’고 하잖아요.”

“시골길 가다보면 염소를 풀밭에 매어놓은 것 보면 굉장히 평화로워 보이잖아요. 근데 염소라는 놈은 성질이 워낙 급하대요. 뭐 약한 동물이 생태계에서 살아남으려니 늘 부위를 살피고 조바심을 내는 건지 모르겠지만. 근데 체질은 엄청 강하대요. 좀처럼 병에 걸리지 않는대요.”

석쇠에 구운 염소불고기 두 접시를 두고 두서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펄펄 끓는 국밥이 나왔다. 한 그릇에 밥과 국이 담긴 것이 아니라 ‘밥 따로 국 따로’ 였다. 식성대로 간을 맞출 수 있는 다대기양념도 곁들여 나왔다. 약간 뿌연 국에는 콩나물과 무, 미나리 등과 고기가 듬뿍 들어있었다. 한 숟갈을 떠먹으니 구수함이 느껴졌다.

“지난 번에 여기서 이것 한 그릇 먹고 나니 금방 몸에서 열이 펄펄 나고 뜨듯해지던데. 진짜 몸에 기운이 돋는 것 같더라니까.”

일행 중 누군가가 또 무용담처럼 너스레를 떨었다.

3대째 가업 잇는 둘째 아들 임재근·조정하 부부

비가 와서 식당 처마에 바짝 붙인 탄불 앞에서 누군가가 허리를 숙였다 폈다 일을 하고 있었다. 탄불에 얹은 석쇠를 뒤집으며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젊었다. 잠시 당혹스러웠다. ‘60년 전통’이라는 말에서 은근 나이든 어르신을 뵙게 되리라는 생각을 했었다.

임재근(36) 씨. 차분한 인상에 나이보다 더 젊어보였다.

“사장님이세요? 의왼데요.”

“아, 저는 이 집 아들이에요. 아버지가 계시는데 잠시 나가셨네요.”

인터뷰를 청하니 재근 씨는 평생 일하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며 자신이 하는 게 쑥스럽다고 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부모님 하는 일을 지켜봐왔고, 지금도 이 일을 이어가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이 있을 거라며 재차 권하니 그제서야 응한다.

“60년 전통이라면 언제부터 했다는 말씀인지?”

은하식당 2대 임강백 황분연 부부/권영란 기자

“할아버지 때부터 하신 일이니까 제가 3대 째지요. 할아버지가 십 수 년, 저희 부모님이 40여 년 넘게 하셨고, 저는 대학 졸업 후 다른 직장을 구하지 않고 부모님이 하시는 일을 10년 가까이 거들다가 지난 1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둘째 아들인데, 아버지와 제가 여기 본점을 맡아하고 어머니와 형은 6개월 전에 고성 배둔에 은하가든이라는 이름으로 분점을 내어 지금 그곳 경영에 애쓰고 계시지요. 은하가든은 여기보다 훨씬 넓고 규모가 크지요. 단체손님 예약이 많아요.”

“집안이 정말 대를 이어가는 군요. 웬만하면 재근 씨 같이 젊은 사람들은 다른 직장을 구하고 안 하려 할 것 같은데, 대단하네요.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계기라고 할 건 없고 원래 부모님 하는 일을 어렸을 때부터 거들다보니 요리하는 걸 좋아하게 됐어요. 만들어놓고 제 나름대로 이런저런 맛을 찾아가는 것도 좋고요. 또 결혼하고 나니 아내가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어 저희대로 레시피를 정리하고 연구도 하게 되더라구요. 저희 식당은 사실 40년 넘게 일을 하신 ‘어머니의 손맛’이에요. 모든 음식 맛은 어머니가 내고 있으니까요. 어머니 건강하실 때 그 맛을 제대로 익히고 저희대로 발전시켜나가고 싶어요. 가령 어머니는 ‘손이 저울이다’며 손대중으로 ‘이만큼’이라 하시는 걸 우리는 그 양을 저울이나 계량컵을 이용해 ‘이때 이만큼은 얼마나인지’를 수치로 정리해보고 어머니가 ‘간간하다’라 말씀하면 그 맛이 어느 정도인지 또 정확히 풀어보려고 하는 거죠. 이 자료는 저희 부부 둘만의 ‘비밀노트’로 작성해놓고 있어요.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지요.”

“하하, 재미있네요. 신혼부부의 비밀노트가 요리비법서라니? 근데 어머님이 새댁 시절부터 식당을 도맡아 하셨군요?”

염소국밥/권영란 기자

“23살에 시집와 줄곧 하셨으니까, 고생도 많이 하셨지만 어머니 평생의 음식 맛이 있는 거지요. 사람들이 고기나 국밥을 먹으면 그걸 아나 봐요. 저희 집은 시장 안에 있어 1일, 6일 고성 장날이면 사람들이 알아서 합석을 하고 그래도 자리가 없어 줄을 잇기도 하지만, 인근 진주 마산 등에서 많이 찾아와요.”

잠시 후, 주방에 있던 새댁이 재근 씨 옆으로 와서 앉았다. 재근 씨의 부인 조정하(32) 씨였다. 야무진 ‘똑순이’ 인상이었다. 이들은 결혼 한 지 1년, 5개월 된 아들이 있다고 했다. 정하 씨는 원래 식당에 나와 일을 하지 않는데 일이 많거나 주방 일 하는 아주머니가 사정이 생기면 일을 거든다고 했다.

“소문으로는 염소 목장을 직접 운영하면서 식당을 한다던데?”

3대째 가업 잇는 둘째 며느리 조정하 씨/권영란 기자

“하하, 그건 잘못된 소문이네요. 저희는 지리산 염소목장 여러 곳에서 직접 고기를 가져와요. 염소는 한 마리당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1곳만 하다가는 물량을 다 공급받지 못해요. 그래서 여러 목장에 줄을 놓고 있지요.”

“염소요리는 누릿한, 냄새와 맛을 잡는 게 관건이라던데 냄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고 깔끔하던데요. 비법이 있나요?”

“저희 식당만의 비법도 있지만 다 공개할 수는 없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암염소’만 쓴다는 거지요. 숫염소는 육질이 질기고 염소 특유의 누릿한 냄새가 워낙 강해요. 냄새를 잡는 건 무엇보다 좋은 고기를 쓰는 게 먼저지요. 국밥같은 경우는 뼈는 뼈대로 고기는 고기대로, 뼛국과 고깃국을 따로 끓여요. 다 끓인 후에 비율 맞추어서 섞어내는 거지요.”

“국밥도 말아나올 줄 알았는데 밥과 국이 따로 나와서 좋았어요. 또 내장과 고기가 듬뿍 들어있고 국물이 오히려 담백하고 구수하던데요.”

“밥과 국도 따로 드리는 건 말아서 내면 밥알이 퍼지면서 국맛을 제대로 느끼지를 못해요. 국의 진한 맛을 먼저 느껴보고 취향대로 말아드시는 게 좋지요. 다대기양념을 곁들여 내는 것도 말았을 때 간을 적당히 맞춰 드시라는 거지요.”

“불고기와 국밥에 들어가는 고기는 다른 고기들처럼 다르게 쓰이나요?”

“불고기는 등심과 뒷다리 살을 사용하고 나머지 다른 부위와 내장은 국으로 끓이는 데 사용하지요.”

“아무래도 염소고기는 겨울철에 손님이 더 많을 것 같은데? 저희 어머님세대를 보면 몸을 보한다면서 겨울철에 많이 드셨잖아요?”

“요즘은 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염소의 주 먹이가 풀일 때는 아무래도 가을까지 잘 먹여 키운 후 겨울에 잡아먹는다는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목초와 함께 사료를 많이 쓰니까 사계절 내내 많이 좋은 고기를 먹을 수 있어 계절 상관없이 찾으시는 것 같아요.”

3대째 가업 잇는 둘째 아들 임재근 씨/권영란 기자

본격적인 점심시간이 되는지 하나 둘 손님들이 들어왔다. 아들임 직한 젊은 사람이 시골 노인부부를 모시고 들어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장터에 일 보러 나오신 듯한 동네 아주머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혼자 들어와 뜨근한 국밥 한 그릇 시켜놓고 소주 한 병 주문하는 어르신도 있었다. 은하식당에는 밥내나는 사람살이가 있었고 국밥처럼 펄펄 끓는 인정스러움이 있었다.

“고기 손질은 누가 하나요?”

“염소는 소나 돼지와는 달리 잡아서 가죽만 벗기고 그대로 오기 때문에 고기 손질은 아버지와 제가 다 해야 해요. 부위별로 다 잘 분리해야지요.”

“시장 안에 있어서 다른 음식 재료들은 싱싱한 걸로 손쉽게 구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럼요. 매일 아침 어머니가 양쪽 식당에 필요한 걸 사러 시장에 나오시는데, 꼭꼭 본점에 들러 국맛이나 양념 맛을 점검하고 가시지요. 새로 시작한 배둔에 있는 은하가든을 집중적으로 관리하지만 본점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게 또 어머니 생각이지요.”

그랬다. 은하식당 염소 고기에는 재근 씨의 할아버지, 아버지 임강백(70) 씨의 희노애락이 고기를 다루고 손질하는 칼끝에 배어있었다. 또 국밥에는 40년 여 동안 자식들 뒷바라지하며 식당 일을 꾸려왔던 어머니 황분연(65) 씨의 끈끈한 삶이 펄펄 끓어 진한 국물로 우러나오고 있었다. 그 맛은 다시 큰아들 내외와 둘째 아들내외로 이어지고 있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