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그대로 혹은 뛰어넘는 마임이스트 고재경

“서두르지 말고! 급하잖아. 더 천천히 하라니까!”

어둠 속에서 누군가 냅다 후려치는 목소리다.

소리는 곧장 직선으로 달려 조명을 뚫고 그대로 배우들의 등짝에, 종아리에 가서 달라붙었다. 순간, 배우들의 허리는 더욱 굽어지고 발이 허공에서 바닥까지 내려오는 속도는 낯선 구경꾼에게조차도 근육의 긴장감이 느껴질 정도다.

“그건 느린 거잖아. 천천히가 아니잖아. 네 마음에 지금 고양이가 없잖아!”

에어컨과 선풍기가 쉴 새 없이 돌고 있었다. 그런데도 배우들은 온통 젖어 있었다. ‘뿌왕뿌왕 할머니와 꼬방 고양이’ 공연을 앞둔 ‘극단 현장’ 총연습 현장이었다. 실내는 뜨거웠고 또 어둡고 끈끈했다.
한국 마임계의 버팀목인 마임이스트 고재경(43) 씨. 그가 연습실 어둠 속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20년 넘게 마임이스트로 살고 있다.

일상이 된 무대…마임 공연 20년 600여 회 공연

   
 

지난 12일 진주 ‘극단 현장’에 액팅 코치로 10여 일 동안 내려와 있는 고재경 씨를 만났다.

“진주엔 자주 오는 데요?”

“몇 년 전부터 정기적으로 내려올 기회가 생기네요. 이젠 극단 현장과는 가족 같은 데요, 하하.”

그가 아이처럼 웃었다. 진주에 자주 오는 건 ‘극단 현장’ 배우들과의 작업이 진심으로 즐겁기 때문이란다. 얼핏 보기에도 그래보였다.

고재경 씨. 더러는 그를 가리켜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나는 배우’라 하고, 더러는 그의 공연은 ‘마임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한다. 무대극 생활 5년, 마임 생활은 20년 이상. 그가 지금까지 한 무대공연은 1000회 정도. 그 중에서 1992년 처음으로 솔로 마임 공연을 한 후 지금까지 영국, 중국, 일본, 태국 등 국외를 비롯해 무대에 올린 마임 공연만 600회 정도. 현재 그는 마임공작소 ‘판’의 대표이다.

마임, 이제 대중들에게 그리 낯설지는 않지만 그리 가깝지도 않다.

여전히 한국 마임 공연의 현실은 불모지이다. 한국마임협의회는 전국 각 지역을 통틀어 50명이 채 안 되는 회원이 있을 뿐이다. 그 속에서 재경 씨는 20대, 30대 청춘의 나날을 오롯이 마임에 바쳤고, 40대의 그는 ‘한국 마임계의 독보적인 배우’로 거듭났다.

“마임은 스토리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한테 받아들이기 힘든 어려운 것이기도 하고 또 단순히 웃긴 희극일 수 있다. 기승전결 서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사가 없으니 그렇다. 특별히 눈요기 될 수 있는 무대미술이나 소품을 이용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무대 위에서 배우가 몸짓으로 그려내는 것이 전부다.”

계기는 없다…본능에 끌렸다

   
 

“정말 우연히 시작됐다. 남들에게 얘기 할 만큼 극적이거나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무슨 생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극단을 찾아갔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연극으로 뭘 해야지 하는 꿈이라는 것, 목표도 없었다. 나도 모르겠다.”

아이고, 김 빠졌다. ‘한국 최고의 마임이스트’라 불리는 그에게서 좀 더 극적인 대답을 원했나보다.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끝장을 보듯이’ 가는 사람은 ‘뭔가’ 있을 것이다는 어설픈 선입견에 그는 초반부터 쐐기를 박아주었다. 그에게 남들과는 다른, 평범하지 않은 운명적인 스토리는 없었다.

“굳이 돌이켜본다면 당시 생활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으니 ‘일탈’일까? 그것도 돌이켜 보니 그런 것이지 당시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지금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온다.”

1987년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시작한 연극이다. 그에게 대학은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가 아니라,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처음 시작은 ‘카스피르’에서 단역 출연이었다. 그때 맡은 역이 대사가 없는 역이었다. 마임이었다. 연습은 힘들지는 않았다. 시키는 건만 해서니까. 무슨 말인지도 이해 못했다. 무대 처음 서니까 어떤 감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기에 급급했다. 설렘도 없었다. 하나보다 싶었다.”

첫 무대에서 그는 역할을 잘못해낸 건 아니니 다만 그럭저럭 좋은 출발이었단다. 집안에서는 ‘막내가 또 엉뚱한 짓을 하는구나. 좀 하다가 그만두겠지’라고 여기는 정도였다.

그런데 집안에서 대수롭잖게 여긴 ‘좀 하다가’가 25년이 되었다.

“일반 직장생활을 한 적은 없다. 당연히 월급이란 걸 받아본 적이 없다. 군대는 몸무게 미달로 안 갈 수도 있었다. 근데 마임 출신 선배들이 문선대에 가면 배우고 싶은 걸 마음껏 배우고 나올 수 있다더라. 그래서 살찌워 입대했다. 강원도에 있는 훈련소로 갔는데 때마침 문선대가 왔다. 엄청 기대했다. 근데 전경으로 차출됐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 일이란 뜻대로 되지 않다는 걸 알았다. 너무 억울했고 눈물이 났다.”

그렇게 억지로 시작한 군대생활에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걸 알았고 틈나는 대로 부대 안을 자신의 공연으로 채웠다. 그는 동료들을 앞에 두고 쉴 새 없이 마임을 했다.

“오히려 군대서 더 많이 연습했다. 마임이 어느 때보다도 흥미로웠다. 본능에 끌렸다. 말이 없다는 것은 고민할 시간을 안 준다. 훈련 마치고 전경으로 서울에서 근무했는데 외박을 하는 날이면 인천 극단으로 왔다. 집에는 안 가도 극단엔 갔다.”

그는 자신이 무대서 공연하는 사람이 아니면 무얼 했을까를 생각해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마임은 정체감, 존재감을 나에게 주었다. 연극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고,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마임이 뭐지?…오, 상상!

   
 

그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니 아침이 되었다. 양치질을 하니 거울이 나타났고 세면대 수도꼭지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욕실이 나타났다. 그가 걸으니 집안 거실과 방이 나타났다.…그가 손끝을 움직이니 나비가 날아들었다. 그가 끙끙대며 온 힘을 다해 끌어당기니 손아귀에 밧줄이 딸려왔다. 그가 머리 위 손잡이를 잡고 흔들리자 지하철 안이 펼쳐졌다….

놀라웠다. 뭐지, 뭐지? 그가 무대 위에서 펼치는 것은 ‘상상’이었다. 어떤 소품도 사용치 않았고, 단지 그의 움직임을 통해 공간이 나타났고 사물이 나타났고 사건이 벌어졌다.

상상! 배우와 관객의 끈을 탱탱하게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가 보여주는 마임은 서로의 상상이 맞닿는 지점이었다.

“너, 이것 알겠어? 뭔지 알아맞혀 봐. 내가 보여줄 게. 잘 봐.”

배우가 삭삭삭, 스윽슥, 스윽, 삭삭 움직였다.

“으음, 좋아. 이번엔 내가 알아맞힐 수 있는 상상을 보여줘 봐.”
관객이 그에게 말했다.

그가 보여주는 마임은 때로는 수수께끼를 내는 아이들의 장난, 상상놀이와도 같았다.

“무엇을 봐도 그냥 바라보지 않았다. 그 힘이 상상력으로 이어진다. 일상을 관찰하고 들여다보는 것이 나의 작업이다. 나는 평범한 일상을 무대로 많이 가져온다.”

그는 마임은 말의 에너지를 움직임을 통해 증폭시킨다고 말했다.

“마임은 메시지가 강하다. 표면적인 스토리를 갖고 있지는 않다. 말의 대체표현이 아니다. 그냥 몸짓 자체이다. 특성이나 성향을 철저히 분석해서 몸짓으로 그린다. 말은 불필요하다. 말이 없다는 것은 규정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을 배제한 몸짓 표현이 마임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임은 말이 되지 않은 소리마저도 철저히 배제하고 있었다. 그는 그저 ‘움직이는 그림’이었다. 그는 일어나고 걷고 앉고 뒤돌아 걷고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그는 마치 발끝이 땅에 닿지 않은 듯 움직임이 가벼웠다. 그에게는 발소리조차 없었다.

“모든 움직임은 중력에서 나온다”

“배우의 몸짓은 중력에서 나온다. 어떻게 걷고 어떻게 서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래야만 중력을 느끼고 움직임을 만들 수 있다. 50:50의 평평한 힘이 있어야 제대로 서고 걸을 수 있다. 중력의 힘 때문에 움직임이 나온다. 그게 기본이고, 기본이 최고다.”
중력! 생뚱맞았다.

   
 

‘연극을, 마임을 이야기 하는데 중력이라니…. 왜 중력이냐구?’

그를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그랬다. 지난 3월 초 그는 극단 현장이 경남연극제에 내놓을 ‘백제고시원’ 액팅 코치로 내려와 있었다. 선술집에서 마주한 그는 다소 낯가림이 있었고 짐짓 어색함을 숨기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는 목소리가 커졌고 말수가 많아졌다.

“연기의 기본은 움직임이고, 움직임은 중력을 알아야 한다.”

그는 의자를 옆으로 젖히고 벌떡 일어나 바로 서는 동작 그리고 다리를 드는 동작을 직접 해보였다. 다음 순간 두 다리를 모으고 뛰고 있었다. 공이 바닥을 치고 높이 튕겨오르 듯. 어느 새 그는 바닥에 누웠고 몸을 굴리고 있었다. 몇몇 취객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지만 그는 아랑곳없는 듯했다. 당혹스러웠다. 그의 거침없음이 당혹스럽고, 한 사람에게 마임을 이해시키기 위해 선술집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이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그에겐 이내 좁은 선술집은 무대가 되었고, 나를 포함한 몇 명의 취객은 관객일 뿐이었다.

그때도 그는 ‘중력’을 이야기했다. 서고 걷고 하는 모든 움직임이 자신의 의지라고 여기는 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것, 모든 움직임은 중력에서 비롯된다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호흡이 달라야 관객이 봐준다. 포스가 달라야 한다. 배우는 행동하는 사람이다. 관객들과는 일상이 달라야 한다. 철학은 있되 행동에 ‘왜’는 붙이지 마라. 고양이가 네 발로 걷는 것에 ‘왜’라고 하기보다 네 발로 먼저 걷는 거다. 나무가 ‘왜 흔들리는가’보다 나무의 움직임을 봐라. 기분학적으로 의미학적으로는 아니다. 떨어진다, ‘움직인다’는 중력 때문에 생긴 말이다. 세계와 사물을 들여다보면 움직임의 원리가 보인다. 육중할수록 움직임이 크다.”

누군가 그의 움직임은 ‘정확히 계산된 속도와 리듬에 기초한다’고 말했던가.

다시 그를 찾아 간 것은 지난 6월 16일 늦은 밤이었다. 텅 빈 무대에서 그가 혼자서 마임 연습을 하고 있었다. 6월 27일부터 7월 15일까지 대학로 정보소극장에서 공연할 ‘고재경의 마임 콘서트’를 준비 중이었다.

“몇 년 만에 하는 거다. 5개로 이뤄져 있는데, 이 중 ‘기다리는 마음’은 내가 나에게 보내는 마임이다. 20년 동안 해왔는데 왜 급히 갈라고 하냐, ‘때’가 올 거다. 항상 때를 맞을 준비는 해야 한다는.”

이번 공연은 그가 2006년부터 지금까지 해온 것 중에서 고른 작품들이라고 했다.

“지금도, 마임이 무엇인지 알기위해 하고 있는 것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지금까지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또 인정받기 위해 했다면 이제는 좀 더 확장하여 자연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물론 사람도 자연이다.”

무대 위에서 그가 서서히 움직이자, 그 속도로 음악이 들려왔고 시가 들어왔고 그림이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그가 움직이자 서서히 한 세계가 펼쳐졌다. 그곳으로 가는 무임승차 없었다. 관객은 끊임없이 상상놀이를 즐겨야 그가 이끄는 세계로 가 닿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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