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박호성 마산미용학원 원장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졸업생들의 모습에서 당시 시대상황이 여실하게 드러난다. 고 박정희(맨 앞줄 오른쪽에서 4번째) 씨가 문을 연 도내 최초의 미용학원 졸업사진 중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사진이다. 지금은 눈만 돌려도 보일 넘쳐나는 미용실. 그 시작은 1959년 9월 15일 당시 마산시 추산동에서 시작한 ‘동양미용학원(현 마산미용학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호성 씨는 <경남도민일보> 2012년 5월 15일 자 6면 동네사람의 주인공 박진수 씨의 아버지다. ‘동네사람’에서 진수 씨와 아내, 아버지, 어머니가 미용사라고 했다. 그런데 이 가족, 알고 보니 온 가족이 ‘미용사’ 집안이었다. 진수 씨와 아버지 박호성 씨, 그리고 할머니까지. 게다가 진수 씨의 아버지·어머니뿐만 아니라 삼촌, 이모들까지 ‘가위’를 들었었다. 또 진수 씨의 할머니는 도내 최초로 ‘미용학원’ 문을 연 사람이란다.

이쯤 되면 박호성 원장, 도내 미용계의 산증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3대째 미용사 집안’.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진수 씨의 아버지 박호성 씨를 만났다.

56년 전통의 도내 최초 미용학원

박호성 마산미용학원 원장/김구연 기자
창원시 마산합포구 상남동에서 ‘마산미용전문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박호성 원장. 학원은 무려 56년 전통을 자랑한다. 시작은 박 씨의 어머니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 박정희 씨는 군인가족이었던 탓에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니면서 살았다고 한다. 서울에 거주하던 때 미용학원에서 기술을 배웠다. 이른바 한국 미용사 1세대이다.

진주가 고향이었던 박정희 씨는 가족을 따라 마산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1959년 9월 15일 당시 마산 추산동 근처 헌병대가 있던 곳에서 ‘동양미용학원’을 열었다. 도내 최초의 미용학원이다.

6·25전쟁이 끝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이다. 무슨 일자리가 있었으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고 박정희 씨는 마산에서 미용학원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당시 미용학원엔 하루에 200~300명의 수강생들로 넘쳐났단다. ‘기술’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56년 전통이다. 지난 세월 동안 이곳에서는 수많은 미용사를 배출했다. 현재 창원지역 미용실 중 40%는 이 학원 출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박 씨는 “지금은 불황이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미용학원이 엄청나게 잘됐었거든요. 어머니 때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정확하게는 산출이 안 되지만, 졸업생이 못해도 5만 명은 될 겁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마산에서 오래 살았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스왕미용실’도 이 학원 1회 졸업생이란다.

아내 형제들 모두 ‘미용 가족’

박호성 마산미용학원 원장/김구연 기자

물론 아들인 박호성 씨도 영향을 받았다. 그는 어머니에게 자연스럽게 미용을 배웠다. 뿐만 아니었다. 박 씨의 형제들도, 박 씨의 아내와 그 형제들도 미용을 배웠다. 한마디로 온 가족이 ‘미용사’였다. 현재 다른 형제들은 모두 미용을 그만뒀고, 박 씨의 동생은 함께 미용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박호성 씨는 1980년 12월 서울에서 자격증을 취득했다. 지금이야 남자미용사도 매우 흔하지만 당시엔 어땠을까.

박호성 마산미용학원 원장/김구연 기자
“당시엔 남자가 미용한다 하면 이상하게 쳐다봤어요. 어디 모자란 거 아닌가 하면서 시선이 곱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 결혼도 좀 늦은 편이었고요. 그렇다고 남자미용사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고요. 대부분 키도 크고 늘씬하고 곱상하게 생긴 남자들이었죠. 그런 미용사들이 여자 손님을 이끄는데 한 몫 한 것도 사실이니까요. 옛날엔 저 같은 얼굴로는 미용사 못했어요. 하하하.”

박 씨는 내심 외아들인 진수 씨에게 학원을 물려주고 싶었다. 아들 진수 씨가 미용의 길을 걷게 된 것도 박 씨의 영향이 컸다.

“아들놈이 공부를 하지 않아서(웃음). 꼭 시키려 한 것은 아닌데, 아들이 미용사를 하겠다고 하니 고맙더라고요. 사실, 미용사라는 직업이 정말 괜찮았거든요. 수입도 꽤 높은 편이었고요. 조그마한 동네 미용실도 한 달에 300만 원은 그냥 벌었으니까요. 게다가 정년도 없고.”

박 씨는 지금도 마산 최고의 땅값을 자랑하는 창동사거리에서 ‘쉬즈헤어’, ‘마샬미용실’ 등 총 4차례 미용실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아들을 보면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든단다. 미용계가 너무 불황이기 때문이다.

과잉공급에 고개만 돌리면 미용실

미용학원 옛 졸업식 모습

미용계 부흥기는 80년대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이었단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씨가 미용학원을 수료하고 한때 미용실을 직접 경영했다는 사실이 매스컴에 자주 노출되었다. 그런 이유로 ‘미용’이 두드러지게 발전했던 시절이다. 또 마산에서는 1970년부터 생겨난 자유무역지역에 따라 여성들의 사회활동과 경제적 여유도 도내 미용계의 급성장을 부추겼다.

그래서일까. 미용실은 우후죽순 늘어났고 지금은 상황이 심각(?)해졌다. 누구나 고개만 돌리면 미용실 하나쯤은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만큼 해마다 수많은 미용사가 배출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용학원이 ‘대박’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란다.

1986년 4월 경상남도 기능경기대회 참가 사진.
“현재 대학마다 미용학과가 생겼고, 또 도내에는 미용고등학교도 있다. 더 재밌는 사실은 미용고, 대학 미용학과 졸업생들이 과잉 공급(?)되고 있는 것도 모자라 펌과 염색 등 기술을 다 배웠기 때문에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매우 손쉽게’ 시술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손님이 갈 수 있는 미용실이, 미용사가 너무 많아서 돈 벌기 어려운 상황이란다.

박 씨도 미용학원을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했다.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건 미친 짓일지도 모르죠. 사실 학원에 3년 가까이 수익이 없어요. 하지만 그만둘 수 없는 건 물려주신 어머니와, 적은 수일지라도 나를 찾아오는 수강생들 때문이죠.”
그런 탓에 아들 진수 씨에게 이민을 권한 적도 있다. 외국에서 미용사는 의사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는다. 사람의 머리카락을 다루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턴가 서비스직이라는 인식이 생겨버렸지만, 외국에선 여전히 ‘전문기술직’이다. 우리나라 미용기술은 세계에서 인정받는 수준급 실력이란다. 진수 씨 정도의 실력이면 외국에서 충분히 인기와 여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민을 권했던 것이다.

손녀가 ‘미용한다’ 해도 OK

박호성 마산미용학원 원장/김구연 기자
박호성 씨는 아들 진수 씨 못지않게 미용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다만 유행이라든지 새로운 기술들은 더는 아들 진수 씨를 따라갈 수가 없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옷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꿀 수 있지만, 머리는 어떡하겠어요? 계속 짧게 또 짧게 자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어디를 가도 당당하게 고개 들고 다니지 못해요. 고개만 푹 숙이고 다니게 되죠. ‘헤어스타일’이란 것은 사람에게 자신감과 활력을 주는 것입니다. 그만큼 미용사의 책임감과 실력의 중요성은 당연하죠.”

박 씨는 지금 불황이라고 해서 가위를 놓을 생각은 없다. 언젠가 다시 부흥기를 맞을 때가 오리라 믿기 때문이다.

또 박 씨는 역시 아들 진수 씨처럼 손녀 다은 양이 미용사를 한다 해도 적극 찬성이라 했다. 20년쯤 후 어쩌면 도내에서 미용계 역사를 4대째 아우르는 ‘미용사 집안’이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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