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수 창원명지여자고등학교 교장

학창시절 최고의 핵 물리학자를 꿈꿨던 소년은 과학자가 아니라 선생님이 됐다. 소년은 그 시절 안전제일주의로 교사의 길을 택했다고 했다. 40여 년 후 소년은 누구보다 학생들과 소통하고 아주 친근한교장선생님이 됐다.

창원명지여자고등학교 김종수(62) 교장을 만났다. ‘카카오톡으로 학생들과 채팅하고 점심때마다 아이스크림 내기를 하는 선생님이었다. 항상 문이 굳게 닫혀있던 교장실. 학생들은 마음 졸이며 까치발로 그 앞을 지나다녀야 했던 교장실. 이러한 낡은 편견을 과감히 없애주는 교장 선생님이었다.
 
물리학자 꿈꿨지만 담임교사 조언으로 사범대 진학
 
김종수 창원명지여자고등학교 교장./김구연 기자

지난 4월 초등학교 졸업 동기생들과 환갑기념 여행을 했다. 산청에서 나고 자랐는데 그 시절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단 두 명밖에 없다. 또 지리산 자락 오지 출신들은 상급학교인 중학교에 간다는 것도 정말 어려웠다. 너무 가난해서 또는 여자여서 중학교 입학시험 제도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는 때였지. 그 몇 안 되는 도회지 유학생 중에 내가 한 명이 된 것은 정말 행운이다. 누구보다 열성적이고 훌륭하신 부모님 덕분이다.”
김종수 교장은 학창시절 과학자를 꿈꿨다. 우리나라 미래의 최고 핵 물리학자가 되고자 공부만 했던 학생이었다고 회상했다.

김 교장은 중학교 시절 지역 명문이라고 불리는 진주고등학교에 합격하고자 정말 공부만 했다. 그때 합격하지 못하면 취업전선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진주고등학교 합격자 발표 날, 부엌에 놓여있던 잡음이 심한 라디오로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기쁨에 겨워 동네를 여러 바퀴 돌았다고 했다. 김 교장은 고등학교 진학 후에도 공부만 했다. 물리학자가 되기 위해 잠도 아꼈고 친구들과 실컷 놀아보지도 못했다.

그러던 중 탈이 났다.

지나치면 탈이 나는 법. 건강상에 문제가 생겼다. 감기로 예사롭게 여겼는데 급성 고열 장티푸스에 걸리고 말았다. 휴학을 해야만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고 1년간 학교를 쉬게 됐지. 한번 잃은 건강은 모든 일에 자신감을 잃게 만들었어. 대학에 떨어지면 군에 입대를 할 만큼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더 그랬지. 그때 담임선생님 조언이 컸어. 도전하기보다 안전하게 성적대로 진학하자. 그래서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지.”
 
통영, 의령, 고성잊을 수 없는 발령지들
 
김종수 창원명지여자고등학교 교장./김구연 기자

지난 19782월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그해 3월 통영 산양읍에 있는 산양중학교에 부임했다. 첫 발령지다. 김 교장은 학생과 함께하는 즐거움이 무엇보다 중요하구나를 깨달았다고 한다.

선생님 대부분이 하숙하거나 자취생활하면서 근무를 했다. 나도 그랬고.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에 곤리섬에서 학생과 낚싯배를 타고 온종일 낚시를 하던 게 아직도 생생해. 노 젓는 법을 몰라 학생들이 직접 가르쳐줬지. 또 한 달간 장기 결석한 학생이 갈치를 새끼줄에 주렁주렁 꿰매어 들고 와 용서를 빌던 일도 기억에 남아. 하루는 학급유리창이 깨졌는데 직접 학생들과 갈아 끼우기도 했어. 그때는 교사와 학생이 가까이 지냈던 것 같아. 언제나 학생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었어.”

김 교장은 교사-교감-교장을 거쳐 오면서 학생을 위해 쓰러져가는 시골학교를 살리는 데도 고군분투했다. 그는 창원명지여고에 오기 전 의령군 부림면에 소재한 실업고인 신반정보고등학교에 교장으로 부임했다. 20079월이었다.

신반정보고는 전국 시골학교가 그렇듯 인구 감소로 학생 수도 줄어들고 있었다. 학년 당 2학급에 불과했다. 학생 수는 90명 남짓이었다. 김 교장은 학생 복지에 신경을 썼다. 멀리서 통학하기 어려운 학생들을 위하여 학교 근처 동네 마을회관을 임대해 임시기숙사를 운영했다. 군청과 도교육청 담당자를 찾아다니며 필요한 것들을 도와 달라고 간청하기도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었던지 다음해에 약 40 침상의 남녀공용 기숙사를 짓게 되었고, 학교 환경도 개선돼 학생 수가 120여 명으로 늘었단다.

김 교장은 개인적으로 가슴 뿌듯한 일이었다. 교육자로서 부끄럽지 않다고 스스로 위안했었다고 말한다.

교감으로 부임했던 고성중앙고등학교도 잊을 수 없다. 당시 고성중앙고는 군 소재지 일반계 고등학교인데 정원을 간신히 채우고자 이웃 지역 중학교 학생들을 죄다 모은 학교였다고 한다. 김 교장은 근무하는 4년 동안 학교를 살려보려고 일요일에도 3학년 담임선생님과 근무했고, 신입생 유치를 위해 조를 편성해 밤늦게까지 시골길을 돌아다녔다. 학원에 다니는 학생을 만나고자 읍내 학원 입구에서 기다렸고 선생들을 피해 도망 다니는 학부형을 만나고자 수소문하고 다녔단다. 4년 후 고성중앙고 입학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했다. 도내 일류고등학교로 발돋움하는 데 밑거름이 된 것이다. 김 교장은 같이 고생했던 교사들을 잊지 못하며 가슴에 사무친다고 했다.
 
공립학교 위상 위해 교과교실제A형 적극 도입
 
김종수 창원명지여자고등학교 교장./김구연 기자

2010
3월 김 교장은 창원명지여고에 부임해서는 공립일반계고등의 위상을 되찾자고 마음먹었다.
부임 첫날 조례에서 선생님들에게 공립학교 자존심을 회복하자고 강조했다. 옛날에는 공립과 사립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공립이 우위였던 게 사실이다. 학부모와 학생 모두가 공립을 선호했기 때문에. 하지만 지금은 전세가 완전히 역전됐지. 그 여파로 공립에 근무하는 선생님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고. 안타까워.”

김 교장은 교사들의 잠재된 교육 능력을 끄집어내고자 교과교실제를 공모했다. 교과교실제는 우리에게 익숙한 학급교실제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학생주도적 학습방식이다.

김 교장은 명지여고가 2010년 교과교실제 A형 시범학교가 된 후 정부로부터 18억 원을 지원을 받았다. 각 교실에 전자칠판을 설치하고 전자 교탁을 갖췄다. 골마루와 홈베이스등 모든 시설이 학생 위주의 시설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창원명지여고에는 학생들이 교실에 있는 경우가 드물다. 국어, 영어, 수학 등 교과목마다 구분된 교과전용교실(50여 개)에서 수업을 받고 논다. 복도마다 벤치가 있고 사물함이 있다. 홈베이스라고 해서 학생들이 공연하고 쉴 수 있는 공간도 곳곳에 있다. ‘미드(미국드라마)’에 나오는 고등학교 모습과 비슷하다.
교과교실제는 각 교과에 알맞게 수업환경을 잘 구성한 교과교실로 학생들이 이동해서 수업을 받는데 수준별 이동수업으로 학생들은 학원 등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아도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됐다. 김 교장은 수요에 맞는 수업교실로 사교육절감형 창의경영학교 운영도 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교과교실제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지난해부터 모든 학생들이 매시간 자신의 수업교실로 이동하면서 수업태도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적극적으로 변하면서 학교 전체 분위기가 역동적이었다. 교사도 마찬가지였다. 학습방법에 대한 연구 논의가 활발해 졌고, 같은 교과목 선생님들은 교과관련 동아리도 만들어 수업자료를 개발했다. 이에 지난 2011학년도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에서 명지여고는 창원시 공립학교에서 2위를 차지했다.

김종수 창원명지여자고등학교 교장./김구연 기자

김 교장은 “2012학년도 신입생 지원에서도 아주 좋은 결과가 있었다. 1차에서 이미 정원을 넘겼고, 중학교 내신 성적 10% 이내 학생 37명이 지원하는 등 명문 여고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앞으로 교육과정을 본교 실정에 맞게 자율화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좋은 선생님을 초빙하고 예산을 더 지원받는 자율형 공립고가 조만간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초식학생은 안 돼. 교육 스스로 학습 중시해야
 
창원명지여고는 학교폭력 없는 학교로도 이름이 나있는데 교내 자생 동아리 역할이 크다. 동아리를 통해 선·후배 간 유대감이 끈끈하고, 졸업한 선배들이 정기적으로 찾아와 격려한다. 학생들이 서로 소통하고 스스로 규율을 정해 행동하기 때문에 학교폭력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김 교장은 최근 심화하는 학교폭력에 대해 학교폭력 심각성에 인정한다. 거시적으로 본다면 정신문화와 물질문명에서 오는 불균형 때문이 아닐까. 우리 모두의 판단 기준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과거 우리는 생각을 행동에 옮기기 전 판단의 기준을 옳고 그름, 참과 거짓에 두었다. 그런데 요즘 대부분 학생은 개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판단 기준을 가지고 행동에 옮기는 것 같다. 학생들을 지도하며 왜 그랬는지 물어보면 기분이 나빠서 그랬다고 대답한다. 이는 학생들의 판단 기준이 좋고 나쁨, 좋음과 싫음, 마음에 들고 들지 않음이라 여겨진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정의적 영역인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교육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학교폭력 추방을 위한 학교 자체 노력이 다른 학교와 다르다고 했다. 일회성이나 타율적인 규율을 지양하고, 자발적이고 긍정적인 면을 이끌어내기 위한 문구를 활용한다. 이를테면 우리들은 천사들이잖아!’ 라는 문구를 캠페인에 활용하고 학생들을 천사라고 부른다. 김 교장은 천사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이는 그의 하루 일과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오전 720분 출근해 학교 전체를 순회한다. 장갑을 끼고 쓰레기를 주우며 학생들과 눈인사를 나눈다. 학교 식당 음식재료를 검사하고 공문 등을 처리한다. 점심때 학교 식당으로 향한다. 학생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어떻게 노는지 관찰하고 동참한다. 아이스크림을 학생들에게 얻어먹기도 하고 왕창 사주기도 한다. 개인 홈페이지와 블로그,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해 학생들과 대화한다. 김 교장은 천사들과 가까워지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학생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교육목표를 세울 수 있겠느냐.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학생이어야 한다.”

그의 교육철학이다.

김종수 창원명지여자고등학교 교장./김구연 기자

김 교장은 요즘 10대가 캥거루 베이비초식학생되고 있다며 우려한다.

김 교장은 학생들이 수동적이거나 의타적인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능동적이고 자기주도적으로 전환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교육과정이 이를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교사의 수업방식도 획일적인 주입식에서 탈피해 다양하고 창의성을 키우는 방법으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립심이 강한 학생이야말로 미래사회를 주도할 미래상이다고 설명했다.
 
미래의 학생을 위해 선생님과 더불어 솔선수범하는 교육자가 되자고 다짐하는 김 교장은 천사들과 함께하려면 건강을 유지해야 된다고 말한다.

그는 젊은 시절 건강을 잃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 한이 있다. 일과 후에는 매일 1~2시간은 운동을 꾸준히 한다. 주말에는 집사람과 함께 낮은 산이나 트레킹 코스를 다니고 있다. 딸을 보고도 일주일에 10km 달리기는 잊지 말라고 항상 충고한다. 건강해야 세상 살맛 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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