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동·오동동 이야기] 아침청소차의 마창고협이야기(1)

이 글은 고딩들의 팔뚝질이 연일 뉴스에 보이던 시절에 대한 소고(小考). 1990년대 초반 전국 학부모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전국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전고협)' 마산·창원·진해 '가지'인 '마창고협'(마산창원지역 고등학생 대표자협의회)과 이를 둘러싼 깨알 같은 졸자의 고교시절 에피소드를 써볼까 한다.

혹시 필자의 아버지처럼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시절의 우리지역 고교생들의 정서는 이랬었구나' 또는 '나는 평범한 고교생활을 했는데, 이런 깨춤 추는 선무당들도 있었구나'하는 재미로 이 글을 봐 주시길 바란다. 이 또한 당시 실제 해직된 선생님들과 학교에서 징계당해서 어리고 젊은 나이에 어둡고 힘든 경험들을 했던 학생들이 있기에 야사와 정사를 넘나들고, 경우에 따라 인물들의 가명과 본명을 교차 사용한다. 정확한 시점이 틀릴 수도 있음을 감안하기 바란다.

고3이었던 정찬(현재 모 정당 경남도당 사무처장) 군과 나는 똥조오~ 선생님(담임선생님이었던 고(故) 한효종 선생님. 선배 대(代)부터 내려온 선생님의 이름 발음을 유치하게 꺾어 발음한 것으로 '똥종이'의 경상도 발음이다)으로부터 며칠 전 뜬금없는 무학산 등산을 제안받았다.

화창한 1990년 어느 일요일. 웃으면서 말하지만 그 안에 강제가 깃든 선생님의 언중진의를 포착한 우리 둘은 약속장소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3학년인 우리를 불러낸 이유를 모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선생님과 우리 이렇게 세명은 짐짓 모른 척하며 산길을 걷는다. 학교에서 이미 고협 활동 학생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우리는 마창고협 제2기 출범식날 이렇게 특별관리를 받았다.

한 선생님과 우리 둘은 무학산 등산을 하면서 실로 많은 이야기(그날 정작 나눠야됐던 이야기는 쏙 빠진 채로)를 나눴다.

교무주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 나이 많은 선생님은 워낙 재담꾼이어서 우리는 크게 힘든 마음은 아니었지만, 친구들과 약속한 시간에 경남대 캠퍼스에 가지 못할 건 아닌가 걱정하면서 걸음을 옮기며 산바람을 맞았다. 무학산 정상을 올랐다가 내려오면서 한 선생님이 툭 찌르신다.

"아침청소차. 니는 몸도 골골하고, 아버님(다른 학교 선생님으로 일하셨다)도 걱정 많으시던데, 와 그리 담배를 피워쌌노? 쪼깬한 기, 뼈 삭는다. 그라고 니는 와 맨날 내한테만 걸리노? 니 담배친구들이 니가 '까마귀'라더라. 언 놈하고 같이 피우면 죽어도 안 걸려서 그런 놈은 '백로'라 하고, 니 같은 놈하고 같이 피우면 단박에 여지없이 걸리니까 까마귀."

유추하건대 이미 담임선생님과 아버지는 오랫동안 여러 번 내 학교 생활 전반적인 부분을 공유하고 계신 듯 했다.

1990년 당시 '마창고협'과 '부고협'의 소식지./인권오름 홈페이지(http://goo.gl/cUupI)

필자의 고교 신입생 시절은 1987년 6월 항쟁과 7·8·9월 노동자 대투쟁, 그리고 대선정국을 거쳐 올림픽과 노태우 대통령 취임의 1988년이었다.

많이들 알겠지만 그 시절 마산은 중학교 학생수에 비해 연합고사 적용 인문계 1차 고교의 수가 현격히 적었다.

이 때문에 전국에서 1, 2위를 다투던(다투던 지역은 항상 진주) 고교입학 연합고사 커트라인 상위 랭크 지역이었다. 중학생들은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엄격한 공장형 농장시스템으로 '사육' 받았었다.

다른 지역 고교생이면 아닐 것인데 마산에서 위와 같은 중학생 시절을 거쳐온 학생들 가운데 대부분은 고교입학과 동시에 대학에서나 맛봐야 할 낭만과 탈선, 객기를 누린 경우가 허다했다. 필자도 그런 우중(愚衆) 가운데 한 명이었다. 갓 알게된 친구들, 주로 서울과 부산, 대구 지역 대학에서 단과대 학생회장 이상의 경력은 지니고 있는 형, 누나를 둔 친구들에게서 추천과 권유를 받아 당시 대학생들이 읽던 책들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데 관심과 노력을 두고 있었다.

   
 

그러던 수 년이 지나고 3학년 우리반 반장이던 정찬 군을 만났을 때 나는 심각한 병을 겪어, 학년 초 아침마다 택시를 타고 등교하고, 택시에서 내리면 반장 정찬 군이 업어서 교실까지 데려다 주었다.생각이 비슷했던 우리는 친한 선배도 학생회 선배들(고교학생회장 직선제 쟁취 이후 1호 학생회 임원단이자 마창고협 1기 임원 멤버들이 대부분)로 같아서, 쉽게 의기투합하고, 나름 진한 동아리 의식이 있었다. 〈계속〉

/아침청소차(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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