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맛집] 창원 명서동 '수정 추어탕'

어릴 때는 추어탕이 싫었다. 뼈째 다진 생선이 보드라운 입에 닿는 것도, 미꾸라지같이 얄미운 친구 녀석이 생각나는 것도, 코끝을 찡하게 하는 산초가루도…. 국물만 몇 숟가락 떠먹는 척하고 맨밥만 먹었다. 그에 반해 어른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국물까지 남김없이 마셨다.

이제는 추어탕이 좋다. 입맛도 없고 몸이 찌뿌드드하거나 허하다 느껴지면 곧장 추어탕 집으로 간다. 뼈째 다진 생선은 씹을수록 고소하고, 미꾸라지같이 유들유들한 친구 녀석도 생각나고, 산초가루 좀 곁들이면 '이 맛을 보려고 먹는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나이가 들면 입맛이 변한다더니, 옛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다.

추어탕은 먹어본 이라면 한 번쯤은 '미꾸라지탕을 왜 추어탕이라고 할까'라는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이름 그대로 가을에 많이 잡히기도 할뿐더러 가을이 되면 가장 살이 도톰하게 올라 맛나다.

'수정추어탕'은 경상도 추어탕을 판다. 〈대한민국 식객요리〉에 따르면 경상도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삶은 후 살만 발라낸 것으로 국물이 맑고 깔끔하다. 전라도 추어탕은 된장을 풀어 구수한 맛과 산초 가루를 넣은 향긋한 맛이 나고 서울 추어탕은 사골·닭·곱창·소고기 등을 삶은 육수에 미꾸라지 간 것을 넣고 끓여 맛이 진하다.

전북 부안군에서 나고 자란 미꾸라지는 매일 경남 창원에 온다. 팔딱팔딱 요리조리 춤을 추는 미꾸라지도 화통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서기옥 사장 말이라면 그 자리에서 곧 얼음이 된다. 그는 하루 두세 번 전라도산 미꾸라지를 통째로 삶아 소쿠리에 몇 번이고 걸러내 경상도 추어탕을 만든다.

"재료를 좋은 것 쓴다 아닙니꺼. 타고난 손맛도 있지예."(웃음) 음식 잘한다는 자신감을 서 사장은 '손맛'과 '재료'로 표현했다. 웃을 때마다 입이 귀밑까지 찢어질 정도로 호탕하게 웃는 그. 큰 입만큼이나 '손맛'도 컸다.

배추, 고사리, 숙주나물, 다진 마늘, 고춧가루 등이 한 움큼 들어가 있는 추어탕. 그저 바라만 봐도 배가 부르다.

서 사장이 손으로 직접 으깨서 만든 미꾸라지 덩어리는, 잔잔한 뼈대가 씹기 좋고 살 또한 보드라워 입안에서 감도는 촉감이 좋다. /김구연 기자

맑은 국물에서 솜털 같은 것이 피어올랐는데 서 사장이 손으로 직접 으깨서 만든 미꾸라지 덩어리다. 잘 섞어서 국물을 떠먹으니 단백질 보충제를 먹은 것처럼 근육이 불끈불끈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미꾸라지의 잔잔한 뼈대가 씹기 좋았고 살 또한 보드라워 입안에서 감도는 촉감이 좋았다. 믹서와 서 사장의 '손맛'을 어떻게 비교하겠냐마는 역시 손맛이 최고다.

두 번째로 등장한 것은 아삭아삭 씹히는 배추. 숨이 죽어 있을 거라고 단정했건만 꿋꿋이 살아 있었다. "배추를 끓는 물에 데쳐가 선풍기 바람을 쐰다 아닙니꺼." 그래야 채소의 결이 살아 있다고 했다. 보드라움과 아삭함이 입안을 즐겁게 했다.

   
 

추어탕 집이면 으레 밑반찬은 고추나 깍두기, 김치 등밖에 없을 거로 생각하지만 '수정추어탕'은 밑반찬이라기엔 황송한 갈치조림이 나왔다. "추어탕 먹으러 왔다가 갈치 먹는 재미로 온다는 손님도 많지예. '수정추어탕'을 차린 지는 9개월밖에 안 됐지만 사실 제주도에서 갈치전문점을 했다 아닙니꺼. 맛집으로 소문이 나서 텔레비전에도 몇 번 나왔지예."(웃음)

저녁에만 되는 닭볶음탕도 별미다.

맑은 국물의 추어탕(좌), 얼큰한 닭볶음탕(우)./김구연 기자

혀끝 '후덜덜'하게 만드는 신맛 강한 묵은지가 통째로 담겼다. 묵은지는 서 사장과 그 어머니의 합작품으로 중독성이 강하다. 묵은지를 쫙쫙 잘라 닭고기와 함께 밥에 얹어 먹으면…. "인생 뭐 있수! 먹는 게 남는 거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달짝지근한 국물은 설탕을 넣은 것이 아니라 양파의 단맛이 나온 것이니 마음껏 먹어도 된다. 7월 18일 초복이 얼마 남지 않은 요즘. 어떤 먹을거리보다 불끈 힘 솟게 하는 추어탕 한 그릇으로 미리 땀을 흘려보는 건 어떨까.

<메뉴 및 위치>

◇메뉴 : △추어탕 8000원 △닭볶음탕 중 2만 원, 대 3만 원.

◇위치 : 창원시 의창구 명서동 205-3번지 1층. 055-238-9203.

<추어탕의 기원과 효능> 

미꾸라지는 7월에서 11월까지가 제철로 이때가 가장 살이 찌고 맛이 좋아 가을철 시식으로 많이 이용한다.

추어탕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최초의 문헌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로서 "미꾸라지를 물이 담긴 항아리에 넣고 하루에 3회 물을 바꾸어 준다. 이렇게 5~6일 계속하면 진흙을 다 토해낸다. 솥에다 두부 몇 모와 물을 넣고 여기에 미꾸라지 50~60마리를 넣어서 불을 때면 미꾸라지는 뜨거워서 두부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더 뜨거워지면 두부의 미꾸라지는 약이 바싹 오르면서 죽어간다. 이것을 참기름으로 지져 탕을 끓이는데, 이 탕은 경성의 관노(官奴)들 사이에서 성행하는 음식으로 독특한 맛을 즐긴다"고 했다.

이처럼 19세기 중엽 추어탕은 상류 계층의 음식이라기보다는 중하류 계층의 음식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미꾸라지는 따뜻한 성질이다. 신장의 양기를 더해 주어 발기가 잘 되지 않는 것을 치료한다.

미꾸라지는 기력을 더해 주고 비·위장을 따뜻하게 하며 소화를 잘 되게 한다.

또한 습기를 없애주고 설사를 멎게 하며 소변을 잘 나오게 한다. 황달과 당뇨병에도 좋다.

/참고 정지천 저 〈우리집 음식 동의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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